[뉴스로 읽는 경제학] '환상형 순환출자 금지' 무엇이고 어떤 문제 있나요?
->한국경제신문 11월8일자 A2면


권오승 공정거래위원장은 "출자총액제한제도(출총제)를 유지하면서 적용 대상 기업을 현재 (14개 기업집단) 430개사에서 10개 내외로 대폭 줄일 수 있는 방안이 없을까 노력하고 있다"고 7일 밝혔다.

권 위원장은 이날 KTV '강지원의 정책데이트'에 출연,출총제 개편을 위한 정부 부처 간 협의와 관련해 이같이 말했다. 공정위는 당초 대규모 기업집단에 대해 출총제를 폐지하고 순환출자 규제를 도입할 예정이었다.

이에 업계와 정부 일부 부처에서 반대하자 계획을 바꿔 출총제 적용 대상을 자산 2조원 이상 기업으로 변경하는 방안(중핵기업 출총제)을 마련,다시 업계의 반발을 불러 일으켰다.

권 위원장은 또 환상형 순환출자 규제와 관련,"장래에 형성하는 것을 금지하는 데는 대체로 동의하는데 기존에 형성돼 있는 것에 대해선 합의가 안 되고 있다"며 "순환출자 규제를 제도적으로 강화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으나 기업들이 부담을 느끼고 있다는 현실을 고려해 중간선에서 만들려고 하는데 쉽지가 않다"고 덧붙였다.

송종현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scream@hankyung.com


공정거래위원회가 출자총액제한제도의 적용 대상을 줄이면서 환상형 순환출자 금지제도를 강행할 방침이다. 재벌 계열사 간에 A기업이 B기업에 출자하고,B기업은 C기업에,C기업은 다시 A기업에 출자하는 이른바 고리형 순환출자를 막겠다는 것이다.

'시장개혁 3개년 로드맵'의 결론을 내기 위한 자문조직으로 구성된 태스크포스팀에서 다양한 의견이 제시됐지만 공정위는 유독 순환출자를 금지하는 쪽에 집착하고 있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전국경제인연합회 등 재계는 출총제를 조건 없이 폐지할 것을 강력하게 주장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재정경제부와 산업자원부도 출총제 대안과 순환출자규제 방안을 놓고 공정위와 견해 차이를 드러내고 있으며,여당인 열린우리당에서도 출총제 폐지 의견이 우세한 실정이다.

이 때문에 환상형 순환출자 금지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환상형 순환출자 금지는 새로운 규제 아니다"

공정위 쪽에서는 환상형 순환출자 금지는 새로운 규제가 아니라 현행 공정거래법에 규정된 '상호출자 금지'의 취지를 제대로 이행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상호출자 금지는 가공자본을 통한 지배력 확장을 억제하는 최소한의 장치인데,그동안 이를 우회적으로 회피하는 환상형 순환출자가 크게 늘어나면서 유명무실해졌다는 것이다.

특히 환상형 순환출자 구조와 관련,재벌의 비합리적 지배구조와 소유연결 구조로 인해 시장 기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부분은 줄여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더욱이 삼성 현대차 등 일부 기업을 제외한 다른 대기업에는 직접적 피해가 없다고 설명한다.

일부 기업 때문에 지배구조 개선을 포기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공정위는 또 2003년 시장개혁 로드맵을 만들 때 3년 뒤 기업의 내·외부 견제 시스템이 효과적으로 작동하고 기업들의 소유구조가 개선되면 출총제를 없애기로 했지만 평가 결과 모두 미흡한 것으로 나온 만큼 대안 없이 출총제를 없앨 수는 없다고 설명한다.

○재계,"순환출자구조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수단"

이에 대해 재계에서는 순환출자 구조는 대주주의 사익 추구를 위한 것이 아니라 외환위기 후 정부의 부채비율 규제,구조조정 등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형성됐으며,실제 분석 결과 순환출자 기업이 경영 성과나 기업 지배구조 측면에서 더 뛰어난 것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한다.

특히 경영권 방어대책이 미약한 우리 실정에서 순환출자를 금지할 경우 우량 기업의 경영권이 위험상태에 노출될 수밖에 없는 만큼 순환출자 구조가 형성된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라고 강조한다.

게다가 대규모 투자를 위해서는 계열사 출자가 불가피한 현실에 비춰볼 때 신규 순환출자 금지는 투자를 하지 말라는 것과 마찬가지일 뿐더러 계열사의 출자를 위해 기존 순환출자의 고리를 끊는 것 또한 막대한 비용 문제로 인해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투자 활성화를 위해서는 출총제를 조건 없이 폐지해야 하며 이로 인한 경제력 집중이나 대주주 사익 추구 등 부작용은 기존의 감시·규제제도를 강화함으로써 대처해나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지배구조는 기업 자율에 맡기는 게 최선의 해법

공정위 측은 순환출자 금지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대기업그룹의 내부 지분율은 현재 40%에서 38.5% 수준으로 소폭 줄어들 뿐이라고 주장한다.

경영권이 위협받을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얘기다.

하지만 개별 기업 입장에서는 경영권이 뿌리째 흔들리는 위기를 맞을 수도 있다는 점에서 그 파장은 보통 심각한 게 아니다.

실제로 삼성은 물론 현대차 SK 등 국내 4대 그룹 중 LG를 제외한 그룹이 적대적 인수·합병(M&A)에 노출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와 있다.

기업 입장에서는 순환출자 금지가 출자총액제한제보다 훨씬 더 강력한 규제가 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사정이 이런데도 공정위가 세계에서 유례를 찾기 어려운 환상형 순환출자 금지를 도입하려는 것은 납득하기 어렵다.

기업의 경영권을 외국 자본에 고스란히 내주는 상황이 일어나서야 어디 말이나 될 법한가.

기업의 지배구조는 경영 효율을 극대화하고 투자를 활성화할 수 있도록 자율적 규제에 맡기는 게 최선의 방법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정부 당국은 순환출자 금지제도 도입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hankyung.com


■ 용어풀이

◆환상형 순환출자=A사가 B사를 지배하고 B사가 C사를 지배하고 C사는 다시 A사를 지배하는 고리 형태의 소유지배구조를 말한다.

예를 들면 삼성의 경우 에버랜드→삼성생명→삼성전자→삼성카드→에버랜드 순서로 돌아가며 출자가 이뤄져 있다.

흔히 순환출자라고 하면 환상형 순환출자를 말한다.

의미를 분명하게 하기 위해 환상형이라는 말을 앞에 붙이고 있다.

◆출자총액제한제도=어떤 기업이 회사 자금으로 다른 회사의 주식을 매입하여 보유할 수 있는 총액을 제한하는 제도다.

경제력 집중을 억제한다는 명목으로 도입됐으나 기업의 투자를 저해한다는 이유로 한때 폐지되기도 했다.

현재 자산 6조원 이상인 기업 집단(그룹) 내 회사의 경우 순자산의 25% 이상을 다른 회사에 출자하지 못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지주회사=다른 회사의 주식을 소유,사업활동을 지배하는 것을 주된 목적으로 하는 회사.자산총액이 1000억원 이상이면서 보유 자회사 주식이 전체 자산 총액의 50%가 넘는 회사로 규정돼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