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글생글은 주경철 서울대 교수(서양사학과)의 [문화로 읽는 세계사](사계절,2005년)를 연재합니다.



주 교수는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전공을 역사학으로 바꿔 프랑스 파리사회과학고등연구원에서 박사학위를 딴 독특한 경력을 갖고 있습니다.



경제와 역사를 넘나드는 폭넓은 글쓰기를 통해 [테이레시아스의 역사] [역사의 기억,역사의 상상] [네덜란드] 등의 저서로 많은 독자를 갖고 있습니다. 특히 고교생을 염두에 두고 쓴 [문화로 읽는 세계사]는 경제·문화사적 관점에서 세계사를 재구성해 통합논술에 대비한 글쓰기에 좋은 재료가 될 것입니다.



시계로 치면 선사시대 11시간59분17초 … 역사시대는 43초



◆ 원숭인가 사람인가



우리는 앞으로 '문화'라는 키워드로 역사를 보고자 한다. 그러나 먼저 문화가 발달하기 전의 '자연상태',그리고 역사가 기록되기 전의 '선사시대'에 대해 대충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다. 과거 어떻게 자연상태에서 문화가 싹틀수 있었을까?



역사시대와 선사시대를 구분하는 기준은 문자가 있는냐,없느냐이다. 사람들이 스스로의 행적과 생각을 남긴 기록이 있어야만 후대의 역사가들이 그 시대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최초의 문자가 등장한 시기는 대략 5000년 전쯤으로 추정한다. 그러므로 역사시대는 5000년 정도 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선사시대는 어느 정도나 되는 것일까? 이 물음은 곧 지구상에 '사람'이라고 부를 만한 존재가 언제 등장했느냐 하는 문제이다. 보통 가장 오래된 인류라고 여겨지는 것은 오스트랄로피테쿠스(austraro는 남방,pithecus는 원숭이를 뜻한다),곧 '남방 원숭이'이다. 20세기 초반에 이 화석이 아프리카 남부에서 처음 발견되었을 때,연구자들은 이것이 사람보다는 원숭이에 가깝다고 보았기 때문에 이런 이름을 붙인 것이다. 인류의 조상에다가 붙인 이름치고는 썩 잘된 작명은 아닌 것 같다.



그런데 이런 의문이 들 수 있다. 어느 정도면 사람이고 어느 정도면 원숭이인가? 사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뇌의 부피가 500cc밖에 되지 않아서 그리 현명한 존재는 아닌 것이 분명하다(나는 500cc 맥줏잔을 볼 때마다 '오스트랄로피테쿠스의 뇌 부피가 이거 하나로군'하고 생각한다. 현대인의 뇌 부피는 이것의 3배이다). 연구자들은 이들이 똑바로 서서 생활했다는 점,곧 '직립보행'을 원숭이와 구별되는 결정적인 요소로 본다. 유골의 구조를 보아도 이들이 직립했음을 알 수 있는 데다 똑바로 서서 두 발로 걸은 흔적이 있는 화석이 발견되어서,이제 이들의 직립은 명백한 사실로 확인되었다. 직립을 하면 등뼈가 똑바로 뇌를 받쳐주기 때문에 뇌가 크게 진화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두손이 자유로워져서 도구를 사용할 수 있다.



이들이 언제부터 지구상에 존재했는지에 대해서도 여러 수치들이 제기되지만,흔히 교과서에서 말하는 대로 500만년 전으로 잡아보자. 도대체 이것이 얼마만큼의 시간일까? 그리고 역사시대와 선사시대는 어느 정도의 비율일까? 알기 쉽게 머릿속에 그려 보기 위해 이렇게 생각해 보자. 인류의 출발점을 시계판에서 0시라 하고,시간이 흘러 시곗바늘이 제자리로 돌아온 12시를 현재라고 한다. 말하자면 500만년을 12시간으로 잡는 것이다. 그러면 앞에서 말한 대로 문자가 등장한 이후의 역사시대가 5000년이었으므로 '500만년:12시간=5000년:X'라는 식이 성립된다. 이를 계산해 보면 X=43.2초가 된다.



다시 말해,지구상에서 인간이 살아온 과거 가운데 11시간59분17초가 선사시대이고 고작 43.2초가 역사시대인 것이다! 그 40여초 동안 이집트의 파라오로부터 시작해서 함무라비,칭기즈칸,세종대왕,신사임당,김구… 등의 역사가 전개되었다. 물론 현재에 가까운 시대일수록 우리에게는 훨씬 더 중요하므로 시간의 길이만으로 비중을 가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 장구한 선사시대 내내 인류가 하나의 종으로서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곧,오스트랄로피테쿠스가 쭉 진화해서 오늘날의 현생인류가 되지는 않았다는 말이다. 하나의 종이 지구상에 한동안 살다가 멸종하고,그 뒤에 다른 종이 나타났다가 다시 멸종하는 일이 여러번 되풀이 되었다. 이 모든 계통을 완전히 설명할 만큼 화석이 많이 발견되지 않았기 때문에 다만 몇 종의 '사람들'(예를 들면 호모 에렉투스,호모 하빌리스 등)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을 뿐이다.



이 중 특히 주목할 만한 존재는 현생 인류의 먼 친척 정도로 생각되는 네안데르탈인이다.흥미로운 점은 이들이 10만년 전쯤부터 시체를 매장했다는 사실이다. 유명한 매장지의 하나가 이라크 자그로스산맥에 있는 샤니다르 동굴이다. 그 안에 30세 정도의 네안데르탈인 남자가 매장되어 있는데,돌로 터를 잘 잡고 그 위에 흙을 덮은 다음 많은 꽃을 덮어주었던 것으로 보인다. 동물들은 죽으면 그냥 그 자리에 버려지고 만다. 오직 인간만이 죽은 동료의 사체를 정성껏 묻어준다. 사체를 이렇게 정성스럽게 매장했다는 것은 이 시기의 사람들이 사후세계에 대한 관념을 가지기 시작했다는 증거이다. 그 투박한 '원시인'도 사실은 종교인이고 문화인이었던 것이다.



네안데르탈인도 우리의 직접 조상은 아니고 현생 인류 직전에 살았던 존재이다. 그런데 현생 인류와 네안데르탈인의 관계에 대한 설명이 최근에 바뀌었다. 얼마 전만 해도 네안데르탈인이 완전히 멸종하고 난 다음에 현생 인류가 등장했다고 보았는데,최근의 연구 결과 두 종이 2만년 정도 공존한 시기가 있었던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 사이에서 전쟁도 하고,심지어 성 관계를 통해 유전자도 교환되었으리라는 추정까지 하고 있다.



네안데르탈인은 지금의 우리보다 몸집이 훨씬 크고 뇌의 부피도 컸다. 이들은 뛰어난 사냥꾼이었다. 이들이 사냥하여 먹은 짐승은 코뿔소 맘모스 들소 말 사슴 멧돼지 따위로 아주 다양했다. 매장 관습이 있는 것으로 보아 지능도 꽤 높았을 것으로 보인다. 이 때문에 최근에는 여러 민족의 설화에 등장하는 거인이 그 옛날 인류가 마주친 네안데르탈인에 대한 기억의 산물이 아닐까 짐작해 보기도 한다. 심지어는 네안데르탈인이 아직도 일부 살아남아 있으며,가끔 신문과 주간지 1면을 장식하는 히말라야 설인(雪人)이 그들이라는 흥미진진하면서도 황당무계한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 문자의 기원



최초의 문자는 언제 어디에서 만들어진 것일까? 우리나라 한글은 역사상 가장 최근에 만들어졌고 만든 이들도 어느 정도 알려진,정말로 예외적인 경우다.



고대 마야의 상형문자는 250년경,중국의 한자는 기원전 1200년경,페니키아인의 알파벳은 기원전 1050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가장 오래된 문자는 기원전 3200년경에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수메르 문자라는 것이 정설이었다.



그러나 1999년 파키스탄의 인더스강 유역의 한 골짜기에서 이보다 적어도 100년 정도 이른 시기의 문자로 보이는 유물이 발견되어서 정설이 흔들리게 되었다.



고대 유적지에서 발견된 항아리 표면에 식물의 잎새 모양이나 삼지창 모양의 표시가 새겨져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이 표시들은 항아리 안에 담았던 물건에 대한 설명이거나 다른 종교적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게 아닐까 추정되지만,현재까지 정확하게 해독되지는 않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이집트의 한 무덤에서 기원전 3200~3300년 사이의 것으로 추정되는 문자의 흔적이 발견되어,이것도 최초의 문자 기록의 후보가 됨 직하다.



이 밖에 더 이른 시기의 문자가 또 발견될 가능성도 있음은 물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