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로 읽는 경제학]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찬-반 논쟁
→한국경제신문 9월29일자 A1면

새 아파트의 고분양가 논란에서 촉발한 분양원가 공개 문제가 '공개 범위 확대' 쪽으로 가닥이 잡혔다.

노무현 대통령은 28일 방영된 'MBC 100분 토론'에 출연,"과거에는 원가 공개에 반대 의견을 표명했지만 지금은 국민들이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하기 바라는 등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이 됐다"며 원가 공개 확대방침을 밝혔다.

주무부처인 건설교통부도 이날 "공공택지는 물론 민간택지에 들어서는 아파트의 분양원가 공개 확대 방안을 구체적으로 검토하기 위해 가칭 '분양가 제도개선 위원회'를 만들어 공개 항목,원가 검증 방안 등을 마련할 방침"이라며 "공청회와 토론회 등을 거쳐 내년 3~5월께 시행에 들어갈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심기 한국경제신문 정치부 기자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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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 대통령이 TV 토론에서 "시민사회의 주장 때문에 더 이상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할 수 없다"고 밝혔다.

대통령은 또 주택공사 등 공공기관이 지은 아파트뿐 아니라 민간부문까지 되도록 많이 공개하는 쪽으로 하겠다고 덧붙였다.

원가 공개는 시장원리에 맞지 않아 반대했으나 더 이상 시민사회의 뜻을 거스르기 어렵다는 것이다.

건설교통부도 대통령 발언에 맞춰 분양원가 공개를 위한 '분양가제도 개선위원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이에 앞서 대통령은 2004년 6월 민주노동당 지도부와 가진 만찬에서도 "분양원가 공개는 장사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

장사는 10배 남기기도,10배 밑지기도 하면서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시장을 인정한다면 원가공개는 인정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랬던 대통령이 느닷없이 "지금은 원가공개를 반대할 수 없다"고 돌아섰다.

청와대의 분양원가 공개의사 표명을 계기로 이를 둘러싼 찬반논란이 확산되고 있다.

하지만 국민이 바란다는 이유만으로 정부의 중요 정책을 손바닥 뒤집듯해도 되는 것인지 의문이다.

무엇보다도 분양원가 공개를 통해 무엇을 얻을 수 있을지도 불투명한 실정이다.

○반대측 "분양원가 공개는 아파트 공급만 위축시켜"

건설업계를 중심으로 한 반대론자들은 원가공개가 시장경제 원리에 맞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공공기관이 짓는 주택의 원가공개는 정부 재량이지만,민간이 짓는 주택까지 원가를 공개토록 해 '적정이윤'만 남기라는 건 기업의 이윤추구 원리를 부인하는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들은 또 원가공개가 실제 분양값을 내리는 효과는 적을 것이며,오히려 민간주택 공급을 위축시켜 결과적으로 집값을 올리는 부작용을 낳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원가공개가 이뤄지면 시행사와 건설사가 손을 잡고 사업을 벌이는 민간택지에서는 큰 이익을 내기가 어려워져 주택 건설이 위축될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서울을 비롯 수도권 주택건설 물량이 2004년부터 연간 목표치를 계속 크게 밑돌고 있는 상황에서 내년부터 공공주택에 후분양제가 시행될 경우 주택 수급에 큰 차질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일부에서는 원가공개가 부득이 한 경우라 하더라도 민간부문은 건드리지 말고 공공택지에서 공공기관이 분양하는 아파트 정도로 그 대상을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찬성측 "집값 안정 등 긍정적 효과 가져올 것"

이에 대해 원가공개가 집값안정 등 긍정적 효과를 가져올 것이라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시민단체와 소비자들은 만성적인 수급 불균형과 선분양제도를 이용한 불합리한 분양가 책정 관행과 이로 인한 아파트값 상승의 고리를 끊기 위해선 분양원가 공개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한다.

분양원가 공개는 시장원리가 작동되지 않았던 부문을 정상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얘기다.

특히 현재도 원가공개 대상인 공공택지에서 민간업체가 적정수익을 내면서 주택을 공급하고 있는 만큼 원가공개가 주택사업을 못하도록 하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한다.

이들은 또 원가공개 확대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는 분양가를 묶어두는 데 한몫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민간 부문의 땅값과 세세한 건축비까지 공개되면 건설공사 과정에서 비자금 조성 관행이 사라지고 하도급 질서를 바로잡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뿐만 아니라 원가공개는 사업절차를 검증할 수 있어 행정기관의 인허가 기간이 단축되고 투명해지는 부수효과까지 거둘 수 있다는 것이다.

○시장원리에 따른 주택공급 확대가 해법

청와대가 분양가 공개를 전면적으로 추진하겠다는 '충격요법'을 들고 나왔다.

분양가를 떨어뜨려 부동산시장의 안정을 꾀하겠다는 취지임은 두말할 필요도 없다.

물론 원가를 공개하면 분양가를 일부 낮추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한 해에 공급되는 신규 아파트가 전체 주택 수의 3~4%에 불과한 실정을 감안할 때 분양가를 낮춘다고 전체 집값이 떨어지기는 쉽지 않다.

실제로 분양가를 철저히 규제하던 1970,1980년대에도 낮은 분양가가 주택가격을 끌어내리지는 못했으며,오히려 시세와의 차익을 노린 투기수요만 부추겼다.

더욱이 주택공급 축소가 곧바로 집값 상승으로 이어진 과거 경험에 비춰볼 때 원가를 공개하면 공급이 줄어들면서 집값 불안이 가중되기 십상이다.

뿐만 아니라 공개된 원가가 정확한지 어떻게 평가할 것이며,정확하지 않을 때는 어떻게 할 것인지 등을 둘러싼 논란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차기 대선의 주도권을 잡으려는 시도라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것도 이러한 연유에서다.

따라서 근본적인 해법은 시장원리에 따라 주택공급을 획기적으로 늘리는 것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한마디로 주택시장의 자유화가 더 시급하다는 것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hankyung.com


■ 용어풀이

◆분양원가공개제도=건설업체가 공동주택을 공급할 때 기업회계 및 회계처리 기준 등에 따라 작성한 공사원가를 공개하는 제도로, 현재는 공공택지 내에 공급되는 주택에 대해서만 적용되고 있다.

공공택지의 25.7평 이하의 경우 택지비 직접공사비 간접공사비 설계비 감리비 부대비용 가산비용 등 7개 항목이 공개되고 있다.

◆분양가 원가연동제=아파트 분양가격을 택지비와 건축비 등 원가 변동에 연동시켜 책정하는 분양가 산정법.토지개발비에다 정부의 표준건축비를 더한 것으로,분양가 상한제라고도 한다.

주택법 시행령 및 시행규칙 개정안이 시행에 들어가면서 한국토지공사나 대한주택공사,지방자치단체 등 공공기관이 개발하는 택지지구에서 공급되는 전용면적 25.7평 이하 공공 및 민간아파트에 적용된다.

◆후분양제도=일정 수준 이상 주택 건설공사가 진행된 뒤 소비자가 지어진 집을 직접 확인하고 분양을 받는 제도.시공 전에 계약금과 중도금을 받은 뒤 입주 때 잔금을 치르는 선분양제와 달리 건설업체의 부도위험으로부터 수요자를 보호할 수 있고 공사비를 비교적 정확하게 산출할 수 있어 분양가를 적정선에서 정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