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벌레로 변하다! 악몽과 같은 현대인의 삶

가족의 생계를 위해 부지런히 일하던 한 남자가 있다.

그는 출장가기로 한 날 아침에 일어나 자신이 벌레로 변한 것을 본다.

아무도 그가 왜 벌레로 변했는지 알 수 없지만,누구도 그 이유를 캐거나 그를 원래대로 돌아오도록 만들려 노력하지 않는다.

벌레로 변한 주인공도 그의 가족도 현실을 외면하고 숨기기에만 급급할 뿐이다.

오랫동안 가족과 직장을 위해서 일만 하던 남자는 처음으로 혼자서 시간을 보내는 법을 배운다.

인간의 언어를 상실한 주인공은 오직 행동으로 말할 수밖에 없지만,그의 행동을 이해해주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벌레로 변하기 전에도 그는 무자비한 사회 안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었고,생활의 무게에 눌린 개인으로서 현실은 악몽과 같았을 것이다.

이제 그것을 알게 되었을 뿐이다.

그는 가족에게 수치와 괴로움을 주지 않기 위해 벌레로서의 삶에 적응하려 노력한다.

얼마간은 적응하는 듯 보인다.

그러나 비록 벌레의 껍질을 쓰고 있지만 인간으로 지내던 시절의 기억을 고스란히 갖고 있고,가족과 소통하지 못함을 괴로워하기 시작한다.

결국 주인공은 여동생의 바이올린 연주에 감동해 가족에게 다가갔다가 파국을 맞는다.

변신 전 가장 가까웠던 여동생은 오히려 앞장서 그의 죽음을 재촉한다.

그는 세계와의 소통에 실패하고 가족의 몰이해 속에서 결국 무의미한 죽음을 맞는다.

2.벌레로 살다가 죽다

카프카의 '변신'에서 특이한 점은 주인공이 처음부터 이미 변신한 벌레의 모습으로 등장하여 내내 벌레의 몸으로 살다가 끝내 벌레의 존재로 숨을 거둔다는 것이다.

변신 전의 원래 모습은 회상을 통해 그의 기억 속에만 존재할 뿐이다.

어떻게 변신이 이루어졌는지는 알 수 없지만,주인공이 어느 날 갑자기 벌레로 변했다는 비현실적인 사실을 제외하고는 철저히 사실적인 공간과 현실적인 토대 위에서 이야기가 진행된다.

어떤 초월적인 힘이 개입된 것 같지 않다.

여기서 카프카 문학 특유의 부조리를 찾을 수 있다.

그의 작품을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섬뜩하고 불안한 느낌을 받는다.

현대인의 삶이 예측 불가능하고 언제라도 파국을 맞을 수 있음을 비유하는 것이기도 하다.

◆원문읽기

어느 날 아침 그레고르 잠자는 침대 속에서 한 마리의 흉측한 갑충으로 변해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그는 철갑처럼 단단한 등껍질을 등에 대고 누워 있었다.

머리를 약간 쳐들어 보니 불룩하게 솟은 갈색의 배가 보였고,그 배는 다시 활 모양으로 휜 각질의 칸들로 나뉘어 있었다.

이불은 금방이라도 주르륵 미끄러질 듯 둥그런 언덕 같은 배 위에 가까스로 덮여 있었다.

몸뚱이에 비해 형편없이 가느다란 수많은 다리들은 애처롭게 버둥거리며 그의 눈앞에서 어른거렸다.

'이게 대체 어찌된 일일까?' 그는 생각했다.

꿈은 아니었다.

3.의사소통 부재 시대의 현대인

그레고르 잠자는 인간의 언어와 시력을 상실한다.

괴상하고 불쾌한 소리를 내면서 침침해진 시야로 인간세계를 새삼스레 낯설게 관찰한다.

그의 벌레언어는 세상과 소통할 수 없는 자신만의 고독한 언어를 상징하는 것이다.

벌레의 몸이라는 새로운 실존적 상황에서 세계와 인간에 대해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하는 이야기 구조다.

◆원문읽기

그레고르는 오히려 훨씬 더 침착해졌다.

그 사이 귀에 익숙해진 때문인지 그에게는 자신의 말이 충분히 뚜렷하게,전보다 더 뚜렷하게 들린다고 생각되었지만,다른 사람들은 그의 말을 더 이상 알아듣지 못하는 것임에 분명했다.

(중략) 종종 그는 긴 밤이 새도록 가죽소파에 누워 한숨도 자지 않고 몇 시간 동안 가죽만 긁어댔다.

아니면 엄청난 수고를 감수하고 안락의자 하나를 창가로 밀고 가서는 창턱에 기어올라 몸을 의자에 지탱한 채 창문에 기댔다.

그것은 분명 예전에 창 밖을 내다보며 느꼈던 해방감에 대한 어렴풋한 기억 때문이었을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얼마 안 떨어진 거리의 사물들마저 점점 더 희미해지고 있었다.

4.노동에 얽매인 삶,알맹이를 뽑히고 껍데기만 남은 갑충

'변신'은 삶 전체가 위기에 처한 현대인의 상황을 벌레의 형상을 빌려 우화적으로 묘사한 작품으로도 볼 수 있다.

그때 벌레의 몸은 경제적 능력이라는 알맹이를 빼버리고 남은 껍데기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원문읽기

그 회사에 5년이나 근무하는 동안 그레고르는 아직 한번도 아파본 적이 없다.

사장은 틀림없이 의료보험조합에서 나온 의사를 대동하고 나타나 게으른 아들을 두었다고 부모님께 비난을 퍼부어댈 것이고 의사의 말을 빌려 어떤 이의도 묵살해버릴 것이다.

의사가 보기에는 건강하면서도 일하기 싫어 아픈 척하는 사람들이 세상에 너무나 많을 테니까.

5.가족은 구원인가,굴레인가

영업사원이라는 주인공 그레고르의 직업은 자본주의 사회의 단면을 보여준다.

늘 시간에 쫓겨야 하고 지속적인 인간관계를 맺을 수 없는 직업생활은 그를 돈 버는 기계로 만든다.

기꺼이 그런 생활을 감수할 수 있었던 까닭은 사업에 실패한 아버지를 대신해 가족의 생계를 꾸려야 한다는 책임감 때문이었다.

그러나 가족들은 곧 그것에 익숙해져 그를 돈벌어오는 존재로만 여길 뿐이다.

가족은 그가 가족을 위해 희생하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이에 무감각해진다.

직장과 가정에서 아무도 그에게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현실 속에서 인간으로서의 정체성은 이미 희미해지고 삶은 황폐해진다.

◆원문읽기

당시 그레고르의 유일한 관심사는 온 가족을 완전한 절망 속에 빠뜨린 그 불행을 식구들이 가능한 한 빨리 잊어버릴 수 있도록 있는 힘을 다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동료들보다 몇 배의 열성을 가지고 일을 시작하여 그야말로 하룻밤 사이에 말단 직원에서 출장 영업사원으로 승진했다.

출장 영업사원에게는 물론 완전히 다른 돈벌이의 수단이 주어졌는데,일에 성공하기만 하면 그 즉시 커미션의 형태로 현금이 수중에 들어왔던 것이다.

집에 돌아와 그 돈을 식탁 위에 올려놓으면 식구들은 행복해서 입이 벌어졌다.

정말 좋은 시절이었다.

나중에 그레고르는 온 가족의 생활비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로 많은 돈을 벌었지만 그후로 그런 시절은 다시는 오지 않았다.

▶해설=또한 이 작품에는 부자 갈등이라는 저자의 자전적 테마가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 변화에 대한 묘사를 통해 부분적으로 형상화되고 있다.

그레고르의 변신 전 아버지는 무기력한 노인이지만,아들이 벌레로 변한 후 그동안 대신 가장 역할을 해온 아들에 대해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고 폭력을 행사하기에 이른다.

아버지는 은행의 수위 자리를 얻고,어머니는 바느질을 시작한다.

이렇게 가장의 자리가 비자 가족들은 나름대로 제 몫을 하기 시작한다.

그가 누구보다도 아끼던 어린 여동생은 그레고르가 벌레로 변하자 가족을 대표해 그를 돌보고 생계를 위해 직장에 나간다.

그녀는 오빠의 그늘에서 벗어나 어른으로 성장한다.

그러면서 가족 안에서 발언권을 얻고 마침내 벌레의 처분을 선고하는 역할을 한다.

◆원문읽기

"아버지,엄마!" 여동생이 먼저 입을 열며 식탁을 내리쳤다.

"더이상 이렇게 살 순 없어요.

두 분은 어떠신지 모르겠지만 저는 깨달았어요.

저는 저런 괴물 앞에서 오빠의 이름을 입 밖에 내고 싶지 않아요.

그러니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오직 한 가지,우리가 저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거예요.

우리는 그동안 저것을 돌보고 참아내기 위해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은 다 해봤어요.

우리를 조금이라도 비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예요."

▶해설=가족을 위해 희생해왔던 그레고르 잠자는 이제 가족을 위해 생을 마치기로 결심한다.

어차피 자기만의 인생이라고 부를 것이 없었기에 그 결정과 실행은 단지 숨을 멈추는 것으로 묘사된다.

그러나 삶은 과연 그렇게 간단히 끝낼 수 있는 것일까? 여러분은 어떤가? 짧은 인생을 되돌아보면 이 악몽과 같은 현실 속에서,나를 옥죄는 의무와 규율 속에서,아무런 자유도 없이 벌레와 같이 살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그렇게 돌아볼 수 있으면 이미 당신의 삶은 벌레가 아니다.

◆원문읽기

'그럼 이제 어쩐다?' 그레고르는 스스로에게 물어보며 어둠 속에서 주위를 둘러보았다.

그리고 곧 자신이 이젠 전혀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이 이상하게 여겨지지는 않았다.

오히려 자신이 지금까지 이렇게 가는 다리로 돌아다닐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게 여겨졌다.

게다가 기분도 괜찮은 편이었다.

온몸에 통증이 느껴지기는 했지만,차차 약해져서 마침내는 완전히 사라져버릴 것만 같았다.

등에 박혀 썩어버린 사과와 그 주변의 염증 부위가 솜털 같은 먼지로 온통 뒤덮여 있었는데,이미 그런 것들도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가족에 대해 감동과 사랑의 마음으로 돌이켜 생각해 보았다.

그가 사라져야 한다는 생각은 아마 여동생보다 그 자신이 더욱 단호할 것이다.

탑시계가 새벽 3시를 칠 때까지 그는 이렇게 공허하고도 평화로운 생각에 빠져있었다.

창 밖의 세상이 훤하게 밝아오기 시작하는 것까지는 아직 알 수 있었다.

그러고는 그의 고개가 자신도 모르게 아래로 푹 떨어졌고,콧구멍에서는 마지막 숨이 힘없이 흘러나왔다.

임혜빈 S·논술 선임연구원 imhaebin@nonsul.com


▶프란츠 카프카(Frantz Kafka,1883~1924)

유대계 독일 작가.

체코 프라하에서 유대인 상인의 아들로 태어나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뒤 보험회사에 근무하면서 밤에는 글을 썼다.

병약하고 내성적이었던 그는 자신에게 부과되는 의무에 쫓기며 글을 쓰다가 4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떴다.

불확실한 세계상과 인간의 불안한 내면을 독창적인 상상력으로 그려낸 그의 작품은 작가의 타계 후,특히 2차대전 후 실존주의 작가들에 의해 재발견되어 전 세계에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