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자크 루소(Rousseau, Jean-Jacques)

1712년 부모 없이 자라 정규교육을 받지 못하고 시계 견습공으로 어린 시절을 보냈다.

37세에 디종 아카데미의 현상 공모에 당선된 '학문과 예술론'을 출판하며 이름을 날렸고,뒤이어 '인간 불평등 기원론''정치경제론''사회계약론' 등으로 당시 유럽에서 가장 유명한 저술가 가운데 한 사람이 되었다.

프랑스 혁명을 주도한 로베스피에르가 당시의 전통과 기득권을 전면적으로 부정한 루소를 정신적 스승으로 존경했다는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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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간 사이의 불평등의 기원은 무엇이며, 불평등은 자연법에 의해 허용되는가?"

이 질문은 논술시험의 논제가 아니다.

18세기 디종 아카데미가 제시한 질문이다.

여러분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할 수 있을까? 루소는 이에 대해 '인간 불평등 기원론'이라는 논문을 통해서 나름대로 답변을 했다.

어릴 적부터 가난한 삶을 살 수밖에 없었던 루소는 디종 아카데미가 질문을 던지기 이전에 '인간이 왜 불평등한가'에 대한 나름의 고민을 했을 것이다.

가난 때문에 어려서부터 일을 해야만 했고,굶주려야 했던 루소가 자신의 가난과 사회적 불평등에 대해 민감한 감수성을 갖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그런데 루소는 특이하게도 이러한 불평등의 원인을 문명 그 자체로 보고 있다.

부자나,귀족 등 특정 계급을 지적한 것이 아니라 자연 상태에서 벗어난 인간의 문명 자체를 비판한다는 점에서 보수와 진보 양쪽 모두에게서 비난을 받았다.

당시의 전통과 기득권을 부정하는 것이기에 매우 진보적인 주장이었지만 '과거' 자연 상태로의 복귀를 꾀한다는 의미에서 '보수적 사상'이기도 했다.

특히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를 전제로 하는 계몽주의 사상과도 배치되는 것이기 때문에 백과사전파의 디드로와 철천지 원수가 되었고,그 진보성 때문에 파리대학 신학부의 고발로 어쩔 수 없이 프랑스 바깥으로 외유해야만 했던 고달픈 인생이 바로 루소의 삶이었다.

루소의 글은 달리 해석이 필요하지 않을 정도로 매우 평이하고, 직관적이기 때문에 상세한 주석이 필요할 것 같지는 않다.

2.인간은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났으나 도처에서 불평등에 시달리고 있다.

◆원문읽기

나는 인간에게 두 가지 불평등이 있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자연적 또는 신체적 불평등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이것은 자연에 의해 정해지는 것으로,나이·건강·체력의 차이와 정신이나 영혼의 자질 차이로 성립된다.

또 다른 불평등은 일종의 약속에 의해 좌우되고,사람들의 동의로 정해지거나 적어도 용납되는 것으로 도덕적 또는 정치적 불평등이라고 할 수 있다.

후자는 일부 몇몇 사람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손해를 끼쳐 누리는 갖가지 특권들,이를테면 다른 사람보다 더 부유하다거나 더 존경을 받는다거나 더 권력을 가지고 있다거나 또는 타인을 복종하게 만든다거나 하는 특권들에 의해 성립된다.

3.불평등의 기원에 대한 가설적 추론

◆원문읽기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추구할 수 있는 연구는 역사적인 진실이 아니라 다만 가설적이고 조건적인 추론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한 추론은 사물의 진정한 기원을 증명하기보다 사물의 본성을 해명하는 데 적합하며,우리의 자연과학자들이 세계의 생성에 대해 날마다 행하고 있는 추론과 유사하다.

종교가 믿으라고 명하는 바에 따르면 하느님 자신이 만물을 창조하신 직후에 인간을 자연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였으니,인간이 불평등한 것은 하느님께서 그렇게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라고 한다. 만일 인류가 홀로 버려져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문제에 대해 인간과 인간을 둘러싼 존재들의 본성만을 근거로 하여 추측하는 것은 종교도 금하고 있지 않다.

이것이야말로 내게 주어진 질문이며, 내가 이 논문에서 검토하고자 하는 것이다.

◆해석
=루소는 자신의 논문이 역사적 진실이 아니라 가설적이고 조건적인 추론이라고 밝히고 있다.

다음 글을 읽으면서 느끼겠지만 1부 내용 중 대부분은 사실 '소설'에 가깝다.

현실에는 존재하지 않는 가설적 추론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 생각해보면서 읽어보자.

4.원초적 자연상태의 인간

◆원문읽기

만일 누가 나를 어떤 나무에서 쫓아낸다면 다른 나무로 옮겨가면 그만이다.

어떤 장소에서 누가 나를 괴롭힌다면 다른 곳으로 옮겨가면 된다.

그것을 누가 방해하겠는가? 또 나보다 힘이 아주 센 데다가 상당히 타락하고 게으르며 사납기까지 한 사나이가 아무 일도 하지 않으면서 나에게 자기를 먹여 살리라고 강요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러면 그는 잠시도 나에게서 눈을 떼지 않고 자는 동안에도 주의를 게을리하지 않으며 나를 자기에게 꼼짝없이 매어두려고 결심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나는 도망치거나 그를 죽일지도 모른다.

따라서 그는 자기가 피하려고 하는 고통이나 그가 나에게 주는 고통보다 훨씬 더 큰 고통을 자진해서 받을 각오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렇게 하더라도 그의 경계가 잠시 소홀해지거나 뜻하지 않은 소리에 그가 고개를 돌리기라도 하면 나는 재빨리 숲속으로 이십 보쯤 달아날 수 있다.

그리하여 나를 얽어맨 사슬은 끊어지고 그는 두 번 다시 나를 볼 수 없게 될 것이다.

◆해석
=계몽 사상가들의 이야기 중 빠지지 않는 것이 사회계약론이다.

홉스나 루소 모두 자연 상태와 사회계약에 기초한 가설적 이야기 구조를 갖는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그런데 도대체 자연 상태를 정의하는 사회계약론자의 생각이 너무 순진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까? 자연 상태를 만인의 만인에 대한 투쟁,혹은 목가적인 분위기로 가정하는 것은 복잡한 상황을 너무 단순화시키는 오류 같다는 이야기다.

위의 글에서 루소가 자연 상태에서 인간이 자유롭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의 경우 현실적으로 인간도 자신의 활동영역을 갖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숲속으로 도망가면 모든 게 해결되는 것일까? 지나치게 인간의 삶을 단순화했기 때문에 어쩌면 루소가 말하는 자연 상태의 인간은 존재하지 않는 허상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강자의 법칙은 자연 상태에서 무용지물이라는 주장을 도출해내기 위해 루소가 전개해나가는 논리 구조는 참고할 만한 내용이 많다.

5.인간 불평등의 원시적 기원들

◆원문읽기

여러 가지 개념과 감정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정신과 마음이 훈련됨에 따라 인류는 점차 유순해지고 관계가 확립되고 유대가 강화되었다.

사람들은 오두막 앞이나 큰 나무 주위에 자주 모이게 되었다.

연애와 여가의 진정한 소산이라 할 수 있는 노래와 춤이 모여든 한가한 남녀들의 심심풀이라기보다는 매일의 일과가 되었다.

그리하여 저마다 남을 주목하고 자신도 남에게 주목받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남들에게 인정받는 것이 하나의 가치를 지니게 되었다.

노래를 가장 잘 부르고 춤을 가장 잘 추는 사람,얼굴이 잘 생기거나 힘이 센 사람,재주가 가장 뛰어나거나 언변이 가장 좋은 사람은 존경을 받았다.

이것이 불평등을 향한,그리고 동시에 악덕을 향한 첫걸음이었다.

이러한 최초의 선호(選好)에서 한편으로는 허영심과 경멸이 태어났고, 다른 한편으로는 수치심과 부러움이 생겨났다.

그리고 이러한 새로운 효모에서 생긴 효소가 마침내 행복과 무구에 치명적인 화합물을 생성시켰다.

◆해석
=결국 사람과 사람간의 관계 속에서 불평등의 기초가 되는 감정과 선호(選好)가 시작되었다는 이야기다.

'행복과 무구에 치명적인 화합물을 생성시켰다'는 주장은 자연 상태에서는 인간이 행복했는데,사람들 간의 관계가 확립되고 유대가 강화되면서 행복이 깨지게 되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루소의 주장은 그렇기 때문에 매우 급진적이고 과격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런 주장들을 어떤 식으로 마무리하려는 것인지 걱정스럽기도 하다.

6.자연으로 돌아가라?

◆원문읽기

미개인과 문명인은 마음과 성향이 매우 달라서 한쪽이 최고의 행복으로 여기는 것이 다른 쪽을 절망에 빠뜨릴 수도 있다.

미개인은 안식과 자유만을 추구하고 한가로이 지내기를 바랄 뿐이다.

스토아학파의 아타락시아(ataraxia)도 미개인의 다른 모든 것에 대한 깊은 무관심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와 반대로 문명인은 항상 활동하면서 땀을 흘리고 불안해하며 더욱더 힘든 일을 찾아 끊임없이 번민한다.

그는 죽을 때까지 일을 하고,때때로 살아 있는 상태에 놓여 있기 위해 죽음으로 내달리며,불멸을 찾아 생을 포기하기도 한다.

(중략) 불평등은 자연 상태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으므로 인간 능력의 발달과 정신의 진보에 따라 성장하고 강화되며 소유권과 법률의 제정에 따라 안정되고 합법화된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이뿐만 아니라 실정법에 따라서만 인정되는 도덕적 불평등은 그것이 신체적 불평등과 균형을 이루지 못할 경우에는 언제나 자연법에 위배된다는 결론도 나오게 된다.

이러한 구별은 모든 문명인들에게 널리 유포되어 있는 불평등의 형태를 이 점과 관련하여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가에 대해 충분한 답을 준다.

자연법을 어떻게 규정하든 어린애가 노인에게 명령하고 바보가 현명한 사람을 이끌며 대다수의 사람이 굶주리고 살아가는 데 꼭 필요한 최소한의 것마저 갖추지 못하는 판국인데 한줌의 사람들에게서는 사치품이 넘쳐난다는 것은 명백히 자연의 법칙에 위배되기 때문이다.

◆해석=
결국 이러한 불평등의 해결책은 무엇일까? 루소는 이에 대한 직접적인 해결책을 끝까지 제시하지 않았다.

자연 상태에서 인간이 그토록 자유롭고 불평등에서 해방된 존재라면 자연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 유일한 해결책이 아닐까? 그런데 그게 현실적으로 가능할까? 앞서 루소가 말한 '자연 상태'는 존재하지 않는 가상의 것이라고 지적했다.

가상의 자연 상태로 돌아가라는 것은 실현 가능성이 없는 구호에 불과할 수 있다.

사실 루소는 '루소는 장 자크를 심판한다'에서 "인간의 본성은 결코 후퇴하지 않으며 한번 잃어버린 순수성은 다시 회복되지 않는다"고 밝힌 바 있다.

루소 자신도 역사의 움직임을 되돌리려는 노력은 성과가 없을 것이라는 걸 알고 있었던 것 같다.

그럼 루소가 인간 불평등 기원론을 통해서 전달하고자 하는 종국적인 메시지가 무엇이었을까? 책을 읽어보고 좀 더 고민해보기를 바란다.

남태균 S·논술 원장 ok@nonsu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