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유전자의 복제욕구 수행하는 '생존기계'

▶리처드 도킨스(Clinton Richard Dawkins,1941~)

행동생물학자(ethologist).옥스퍼드 대학 생물학 교수.이기적 유전자(The Selfish Gene) 이론으로 사회생물학 논쟁을 불러일으키면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동물들의 행동과 자연 선택(natural selection) 간의 관계를 밝히고 유전자가 진화에 있어서의 주 선택 단위(unit of selection)라는 생각을 대중화하는 데 기여하였다.

2005년 미국의 국제외교 분야 전문지 '포린 폴리시'와 영국의 정치평론지 '프로스펙트'가 공동 선정한 '이 시대 최고 지성 100인'에 뽑히기도 하였다.

대표 저서 '이기적 유전자' 외에 다른 저서로는 '확장된 표현형(The extended Phenotype)' '눈먼 시계공(The blind Watchmaker)' 등이 있다.

--------------------------------------------------------------------

1.인간-이기적인 생존 기계

리처드 도킨스는 정통 다윈주의자다.

다윈은 종(species)의 진화는 적자생존의 자연선택 과정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원리를 세웠고 다위니즘은 다윈 이전과 이후를 갈라놓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과학과 사회 전반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

도킨스는 이 적자 생존과 자연 선택이라는 개념을 유전자 단위로까지 끌어내려 진화를 설명한 학자다.

도킨스에 의하면 다윈에 의해 밝혀진 진화 메커니즘은 자연의 선택이며 유전자의 역사이다.

그러므로 유전자 차원에서 동·식물에 대한 분석은 물론 인간에 대한 분석도 이루어져야 한다.

유전자 입장에서 본다면 모든 동·식물은 유전자의 자기보존 욕구를 수행하는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

인간 또한 유전자가 스스로를 보존해 가기 위해 진화시켜 가는 일종의 생존 기계에 불과하다는 충격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성공적인 유전자의 가장 중요한 특징은 '이기주의'이다.

이기적이라는 것은 자기의 생존 혹은 보존 가능성이다.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높이는 행동은 이기적이며 그 반대,즉 자신의 생존 가능성을 낮추는 것은 이타적인 행동이라고 도킨스는 정의한다.

유전자의 이기주의는 개체의 이기적 행동의 원인이 된다.

즉 인간은 유전자를 보존하기 위한 '이기적인 생존 기계'다.

간혹 나타나는 이타적인 행위들도 알고 보면 정교한 이기주의에 불과하며 또 이기주의의 한 전략에 불과하다.

인간은 정해놓은 각본대로 유전자의 이기적 명령을 수행하는 존재다.

그렇다고 유전자가 개별 행동을 지시하는 것은 아니다.

생존에 필요한 전략을 가르쳐 주며 간접적이면서 전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프로그램과 같은 기능을 가진다.

이러한 프로그램은 이득이 되는 것은 발전시키고,해가 되는 것은 도태시키면서 진화를 거듭하게 된다.

◆원문 읽기

이 책이 주장하는 바는 사람과 기타 모든 동물은 유전자에 의해 창조된 기계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성공한 시카고 갱단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유전자는 치열한 경쟁 세계에서 때로는 몇백만 년이나 생존해 왔다.

이 사실은 우리의 유전자에 특별한 성질이 있다는 것을 기대하게 한다.

성공한 유전자에 기대되는 특질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비정한 이기주의'라는 것이다.


(홍영남 번역책 23페이지)

겉보기에 이타적 행위는 표면상 이타주의자의 죽을 가능성을 높이고 동시에 수익자의 오래 살아 남을 가능성을 높이는 것처럼 보이게 행동하는 것이다.

정밀하게 조사해 보면 이타적으로 보이는 행위는 실제로는 모양을 바꾼 이기주의인 경우가 많다.

(위 책 27페이지)

▶해석=도킨스는 위의 언급에 이어 동물들에게서 나타나는 이기적 행위의 다양한 사례를 들고 있다.

바다에 바다표범이 있는지 알기 위해 동료를 먼저 바닷물에 밀어넣는 황제 펭귄의 사례나 검은 머리 갈매기,사마귀 등의 사례를 다양하게 제시하고 있다.

동시에 순수하게 이타적으로 보이는 자기 희생의 사례들을 제시하고 있다.

일부 생물학자들은 순수하게 이타적인 자기 희생,예를 들면 일벌의 침 쏘기나 톰슨 가젤의 경계 도약이 종족을 방어하기 위한 종 차원의 이기주의(그룹 선택)라는 주장을 펴고 있지만 도킨스는 이 주장에 반대한다.

논의의 범위는 종이 아니라 유전자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렇다면 다른 개체를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집단주의는 어떻게 가능한가.

그는 종족을 위한 이타주의 역시 개체 이기주의의 한 변형이라고 주장한다.

◆원문 읽기

만일 동물이 무리를 지어 함께 산다면 그들 유전자는 이 연합에 의해 그들이 투입한 것보다 더 큰 이익을 얻는다고 볼 수 있다.

무리를 짓는 하이에나는 단독으로 먹이를 잡는 것보다 훨씬 큰 먹이를 포획할 수 있다.

물론 먹이를 서로 나누어야 한다는 문제가 있지만 떼 지어 사냥하는 것은 개개의 이기적 개체에게 유리하다.

황제 펭귄은 서로 몸을 맞대서 열을 보존하면 혼자 있을 때보다 비바람에 내놓는 몸의 표면적이 작아지기 때문에 모든 개체가 이익을 얻게 된다.

다른 개체의 뒤에서 비스듬히 헤엄 치는 물고기는 앞의 개체가 만든 물결 덕분에 유체역학적으로 유리할 것이다.

이것은 물고기가 떼 지어 헤엄 치는 이유 가운데 하나일지 모른다. 새가 V자형의 편대로 비행하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더욱이 무리의 선두에 서는 것은 불리하므로 이것을 피하려고 하는 경쟁이 있을지도 모른다.

물론 새들은 힘든 리더 역할을 교대로 떠맡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해석=그는 이 같은 주장을 펴 나가기 위해 유전자의 발생 단계에서부터 긴 설명을 내놓는다.

도킨스를 읽는 재미의 하나는 자연에 대한 폭넓은 상식을 동시에 얻을 수 있다는 점이다.

도킨스는 자신의 이론을 펴 나가면서 먼저 유전자에 대한 긴 설명을 내놓고 있다.

원시 바다에서 유기물들이 결합하고 이것이 단백질 구조를 형성하면서 유전자를 만들어 내는 과정이다.

◆원문 읽기

DNA 분자는 뉴클레오티드라고 불리는 소형 분자를 구성 단위로 하는 긴 사슬이다.

그것은 아름다운 나선형으로 맞물린 한 쌍의 뉴클레오티드 사슬인 이중 나선으로 불멸의 코일이라 불리고 있다.

(중략) DNA는 우리 몸 속에 살고 있다.

그것은 각 세포에 분포해 있다.

마치 거대한 빌딩의 모든 방에 그 빌딩 전체의 설계도를 넣어 둔 책장이 있는 것과도 같다.

세포 내의 책장은 핵이라고 불린다.

인간의 설계도는 46권이나 되며 이 수는 종에 따라 다르다.

우리는 각 권을 염색체라고 부른다.

현미경으로 보면 염색체는 기다란 실처럼 보인다.
(위 책 51페이지)

유전자는 인체의 제조를 간접적으로 제어하는데 그 영향은 엄밀히 말해 일방 통행이다.

이것은 획득 형질이 유전되지 않음을 뜻한다.

생애에 수많은 지식과 지혜를 얻었더라도 그 중 한 가지도 자식에게 전해지지 않는다.

각각 새로운 세대는 무(無)에서 시작해야 한다.

왜냐하면 몸은 유전자를 불변 상태로 유지하기 위해 유전자가 이용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위 책 53페이지)

▶해석=도킨스는 이런 이야기로 유전자를 설명해 나간다. 그렇다면 부모의 자식에 대한 사랑과 같은 이타적 행위는 어떻게 설명되나.

도킨스는 이 역시 복제된 유전자의 보존 기능에서 찾는다.

유전자가 다른 개체 내에서 자기의 사본(복제본)을 인지하는 그럴 듯한 방법이 있어야만 된다.

답은 '있다'이다.

◆원문 읽기

근친자 혹은 혈연자가 유전자를 공유할 확률이 높다는 것은 쉽게 알 수 있다.

이것이 새끼에 대한 어미의 이타주의가 흔한 이유일 것이라는 사실은 오래 전 밝혀진 사실이다.

형제자매 사촌 간,그리고 6촌 간에도 그것을 적용할 수 있다.

가령 열 사람의 근친자를 구하기 위해 한 개체가 이타주의 원리에 따라 죽었을 경우 혈연 이타주의 유전자의 한 사본은 없어지지만 같은 유전자의 보다 많은 9개 사본은 살아 남는 것이다.

(위 책 152페이지)

2.인간의 특수성 '밈(Meme)'

그렇다면 인간의 특수성은 없다는 말인가.

인간이 단순한 유전자 기계라면 인간의 창의성이며 인류가 쌓아 올린 거대한 문화는 무엇으로 설명 가능한 것인가.

사실 이 질문에 오면 도킨스의 답변은 다소 궁색해진다.

여기서 도킨스는 또 하나의 새로운 개념을 내놓는다.

그것을 그는 밈(Meme)이라고 불렀다.

밈은 유전자처럼 서로의 습성과 행동을 모방(학습)하면서 자기 복제를 한다.

그러한 모방 과정은 뇌에서 뇌로 펼쳐지는 무형의 복제이기에 전파 속도가 유전적 진화보다 빠르다.

유전자와 밈은 상호 영향을 주고받으며 보완적 관계를 형성하지만 때로 적대적 관계가 나타나기도 한다.

예컨대 독신주의와 같은 것은 유전자의 명령에 반하는 종교적 밈이 만들어 낸 진화 형태이다.

이러한 밈의 특성은 인간이 유전적 진화라는 유전자 종속을 넘어서고 독자적 진화로 나아갈 수 있는 능동적 가능성을 보여준다.

◆원문 읽기

밈은 비유로서가 아닌 엄밀한 의미에서 살아 있는 구조로 간주해야 한다.

당신이 내 머리에 번식력이 있는 밈을 심어 놓는다는 것은 문자 그대로 당신이 내 뇌에 기생한다고 하는 것이다.

바이러스가 숙주 세포의 유전 기구에 기생하는 것과 유사한 방법으로 나의 뇌는 그 밈의 번식용 운반체가 되어 버린다.

이것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예컨대 '사후에 생명이 있다는 믿음'이라는 밈은 신경계의 하나의 구조로서 수백만 번 전 세계 사람들 속에 육체적으로 실현되어 있지 않은가.

▶해석=도킨스에 의해 생겨난 용어인 '밈'은 인간의 문화적 유전자를 의미한다.

밈은 '모방'이라는 형태로 복제하기 때문에 유전자(gene)에 비해 정확한 복제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러므로 각자마다의 다른 변형을 가지게 된다.

인간의 개성이 가능하게 되는 것이다.

밈은 유전자와 달리 무제한적 복제가 가능하다는 특징도 지닌다.

유전자는 부모에서 자식으로의 수직적 매개에 한정되어 있고 전달에 걸리는 시간도 길다.

그러나 밈은 수평적으로 이전될 수도 있고 빠른 속도로 복제 가능하다.

인간만이 이기적 유전자에의 예속을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유전자 생존 기계라는 말이다.

도킨스는 밈이라는 개념을 통해 인간의 초월성을 인정하고 있다. 그러니 도킨스가 인간을 단순히 기계로 격하했다고는 생각하지 말자.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o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