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생글 독자 여러분.오늘은 '너 자신을 알라'는 명언으로 유명한 소크라테스입니다.
소크라테스는 저서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의 제자 플라톤이 스승의 행적과 사상을 기록한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을 뿐입니다.
■ 소크라테스(Socrates,BC 469~BC 399)
철학의 아버지로 불릴 만한 인물.키케로는 "철학을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린 사람이 소크라테스"라고 말했다.
도덕이란 무엇인가,지혜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철학도 소크라테스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어리석은 대중이 국가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매우 위험한 제도라는 주장을 폈기 때문에 반대파에 의해 고소당했고 결국 사형당했다.
플라톤 등 그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대중이 아닌 지혜로운 전문가에 의한 통치를 주장했고 어떤 제자는 실제로 민주정을 뒤엎는 쿠데타를 시도하기도 했다.
1. '대화'의 구성
플라톤이 집필한 '소크라테스의 대화록'은 소크라테스가 가르쳤던 다양한 철학적 주제들을 대화체로 기록하고 있다.
25가지 대화편이 있으며 그 중 '소크라테스의 변명''향연''파이돈''크리톤',그리고 '프로타고라스'가 유명하다.
2. 소크라테스의 진리 추구 방법론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회의(懷疑)에서 출발한다.
진리 추구는 어떠한 절대 진리나 가치를 상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반대 논거를 극복하려는 회의주의적인 자세에서 시작된다.
즉 모든 사물에 대해 의심하는 태도,특히 자신의 신념,자신의 독단,자신의 공리를 의심할 줄 아는 태도가 철학을 하는 자세인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문답식 산파술이라는 방법을 사용하는데,이는 확정 가능성을 거부하고 반증 가능성을 열어놓는 칼 포퍼의 반증주의와 일맥상통한다.
상대방의 주장을 일단 옳다고 보고 그것으로부터 추론되는 논리를 계속 세워가다보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론이 도출되는 방식의 논리를 소크라테스는 구사했다.
말하자면 상대방의 논리로 상대방의 오류를 입증하는 그런 논법인데 이를 바로 산파술이라고 한다.
"당신의 말대로 하자면 이렇게 되겠지.그렇게 되면 그 다음에는 또 이렇게 되겠지.그러면 다음에는 또 이렇게 되지 않겠는가.
맞지.그러면 그 다음에는 당연히 이런 결과가 나오겠지.자,봐라.처음 당신이 주장하던 것과 정반대의 결론이 나오지 않았는가"라고 끌고 가는 논법이 바로 산파술이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주제든지 소크라테스가 먼저 특정한 결론을 주장하고 이를 입증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스스로 강조했듯이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라는 입장을 유지했기 때문에 먼저 무언가를 주장할 까닭도 없었다.
그러니 소크라테스와 논쟁했던 상대방은 지뢰(논리적 허점)를 밟지 않으려고 극도로 조심했어야 했을 것이다.
헉! 무서운 소크라테스.
3. 소크라테스의 핵심 사상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탐구의 대상이 우주와 자연 등 외적 세계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그의 사상은 '도덕'과 '국가'에 집중된다.
도덕은 지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지혜롭지 못해서 발생하는 각종 오류와 불완전한 통찰은 죄악의 원인이 된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을 통해 충동을 억제하고 오류를 살펴 도덕적 완성을 이룬다.
마찬가지로 국가도 지혜가 통치의 기준이 된다.
국가가 평화와 질서,그리고 선한 의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명료한 통찰력이 필요하다.
정부나 통치자가 합리적이고 명료한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그런 정부에 반대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감정에 휩쓸리는 대중이 단순히 표결 수가 많다는 것을 근거로 국가의 의사결정을 대표하게 해서는 안 된다.
4. 원문읽기
【혹시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당신은 이곳을 떠나서 침묵을 지키며 조용히 살아갈 수 없겠소?"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침묵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은 신에 대한 불복종이 되기 때문에 조용히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이렇게 말하여도 여러분은 농담으로 받아 넘기고 나의 말을 믿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에게 날마다 덕과 그 밖에 다른 일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나 자신과 남을 살피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큰 선이요,이런 생활만이 인간에게 가장 보람 있는 것이라고 말하여도,여러분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여러분에게 믿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해석:'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사형 판결을 받았던 재판정에서의 최후 진술이다.
당시의 재판은 1000명 이상으로 이루어진 최고 재판소(디카스테리온)에서 배심원단의 투표에 의해 이뤄졌다.
소크라테스는 긴 재판 과정을 거쳐 결국 표결에 의해 사형을 언도받았는데 사형을 요구한 표결 수가 35표 더 많았다.
배심원은 아테네의 전 시민을 포함하는 명부에서 알파벳 순서로 뽑혀 구성되는데 이보다 더 민주적인 제도는 없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스크라테스는 바로 이 점을 들어 그리스 민주정치가 위선적이며 무능하고 이보다 더 어리석은 제도는 없다고 비판했다.
또 바로 그 때문에 분노한 배심원들은 그를 사형시키기에 이르게 된다.
바로 이 과정들에 대한 기록이 '변명'이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여러분은 나에게 유죄 판결을 하였습니다.
나는 이 결과에 분노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히려 쌍방의 투표결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 차이가 이렇게 적을 줄 몰랐습니다.
분명 훨씬 많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단지 35표만 반대로 갔더라면 나는 무죄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아마 여러분은 고약한 사람들에 의하여 현명한 사람인 소크라테스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비난도 받을 것입니다.
아마 (사건을 심리하는) 시간이 짧았던 탓일 겁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해석:'변명'은 요즘의 표현대로 하자면 '최후 진술'이 더 적합할 것 같다.
70세에 이른 이 노 철학자는 자신에게 사형을 언도한 그리스 민중들에게 때로는 저주를 퍼붓기도 하고 때로는 연민의 정을 느끼며 실제 웅변 시간이 3~4시간은 족히 될 만한 분량으로 마지막 가르침을 베풀고 있다.
이 진술에서 그는 자신을 고발한 멜레투스 등 민주파들과 치열한 논리 대결을 벌이기도 하고 자신이 무죄임을 입증하기 위해 다양한 주장과 증거를 대기도 한다.
【그리하여 나는 사형선고를 받고 지금 이 자리를 떠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진리를 거역하고 내게 유죄를 판결했습니다.
나는 이 판결에 복종해야 하겠지만 여러분도 복종하십시오.나는 이미 충분히 늙었고 죽음에 임박해 있기 때문에 약간의 예언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죽은 후에 곧 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활에 대한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와 같은 일을 저질렀겠지만 결과는 오히려 전혀 다를 것입니다.
생활에 대한 간섭은 더욱 많아질 것이고 괴로움도 받게 될 것입니다.
(중략) 이제 우리는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기 위하여,여러분은 살기 위하여.그러나 우리 앞의 어느 쪽에 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는지 신 외에는 아무도 분명히 알지 못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해석: 소크라테스는 분명 요즘 말로 하면 내란 선동죄 혹은 국기 문란죄로 사형을 언도받았다.
그러나 플라톤이 기록한 대화편에는 의외로 정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많지 않다.
아마 저자인 플라톤이 자신의 '국가론' 등에 스승의 생각을 모두 담았다고 생각했거나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해 스승의 정치 관련 발언을 되도록 우회적으로 표현했을 가능성이 크다.
위의 원문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생활에 대한 간섭은 더욱 많아질 것이고 괴로움도 받게 될 것"이라고 쓰고 있지만 누구에 의해 왜 그럴 것인지는 생략되어 있다.
그리스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가치가 결과적으로는 민중들에게 오히려 손해가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역시 논리적 혹은 구체적 서술은 생략되고 있다.
이점에 대해서는 플라톤으로 직접 가볼 수밖에 없다.
한산동 생글생글i 연구원 hansandong@sgsgi.com
소크라테스는 저서를 남기지 않았습니다.
그의 제자 플라톤이 스승의 행적과 사상을 기록한 '대화'를 통해서 알 수 있을 뿐입니다.
■ 소크라테스(Socrates,BC 469~BC 399)
철학의 아버지로 불릴 만한 인물.키케로는 "철학을 하늘에서 땅으로 끌어내린 사람이 소크라테스"라고 말했다.
도덕이란 무엇인가,지혜란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질문했다는 점에서 오늘날의 철학도 소크라테스의 범주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어리석은 대중이 국가적 의사결정에 참여하는 매우 위험한 제도라는 주장을 폈기 때문에 반대파에 의해 고소당했고 결국 사형당했다.
플라톤 등 그의 제자들은 한결같이 대중이 아닌 지혜로운 전문가에 의한 통치를 주장했고 어떤 제자는 실제로 민주정을 뒤엎는 쿠데타를 시도하기도 했다.
1. '대화'의 구성
플라톤이 집필한 '소크라테스의 대화록'은 소크라테스가 가르쳤던 다양한 철학적 주제들을 대화체로 기록하고 있다.
25가지 대화편이 있으며 그 중 '소크라테스의 변명''향연''파이돈''크리톤',그리고 '프로타고라스'가 유명하다.
2. 소크라테스의 진리 추구 방법론
소크라테스의 철학은 회의(懷疑)에서 출발한다.
진리 추구는 어떠한 절대 진리나 가치를 상정하지 않고 끊임없이 반대 논거를 극복하려는 회의주의적인 자세에서 시작된다.
즉 모든 사물에 대해 의심하는 태도,특히 자신의 신념,자신의 독단,자신의 공리를 의심할 줄 아는 태도가 철학을 하는 자세인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문답식 산파술이라는 방법을 사용하는데,이는 확정 가능성을 거부하고 반증 가능성을 열어놓는 칼 포퍼의 반증주의와 일맥상통한다.
상대방의 주장을 일단 옳다고 보고 그것으로부터 추론되는 논리를 계속 세워가다보면 오히려 정반대의 결론이 도출되는 방식의 논리를 소크라테스는 구사했다.
말하자면 상대방의 논리로 상대방의 오류를 입증하는 그런 논법인데 이를 바로 산파술이라고 한다.
"당신의 말대로 하자면 이렇게 되겠지.그렇게 되면 그 다음에는 또 이렇게 되겠지.그러면 다음에는 또 이렇게 되지 않겠는가.
맞지.그러면 그 다음에는 당연히 이런 결과가 나오겠지.자,봐라.처음 당신이 주장하던 것과 정반대의 결론이 나오지 않았는가"라고 끌고 가는 논법이 바로 산파술이다.
재미있는 것은 어떤 주제든지 소크라테스가 먼저 특정한 결론을 주장하고 이를 입증하려고는 하지 않았다.
스스로 강조했듯이 "나는 내가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을 뿐"이라는 입장을 유지했기 때문에 먼저 무언가를 주장할 까닭도 없었다.
그러니 소크라테스와 논쟁했던 상대방은 지뢰(논리적 허점)를 밟지 않으려고 극도로 조심했어야 했을 것이다.
헉! 무서운 소크라테스.
3. 소크라테스의 핵심 사상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들은 탐구의 대상이 우주와 자연 등 외적 세계였다.
그러나 소크라테스는 인간의 문제를 중심으로 다루고 있다.
그의 사상은 '도덕'과 '국가'에 집중된다.
도덕은 지혜를 통해서 이루어진다.
지혜롭지 못해서 발생하는 각종 오류와 불완전한 통찰은 죄악의 원인이 된다.
인간은 자기 자신에 대한 비판을 통해 충동을 억제하고 오류를 살펴 도덕적 완성을 이룬다.
마찬가지로 국가도 지혜가 통치의 기준이 된다.
국가가 평화와 질서,그리고 선한 의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명료한 통찰력이 필요하다.
정부나 통치자가 합리적이고 명료한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그런 정부에 반대하는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감정에 휩쓸리는 대중이 단순히 표결 수가 많다는 것을 근거로 국가의 의사결정을 대표하게 해서는 안 된다.
4. 원문읽기
【혹시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소크라테스,당신은 이곳을 떠나서 침묵을 지키며 조용히 살아갈 수 없겠소?" 하지만 나는 그럴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침묵을 지키며 살아간다는 것은 신에 대한 불복종이 되기 때문에 조용히 있을 수만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아무리 이렇게 말하여도 여러분은 농담으로 받아 넘기고 나의 말을 믿지 않을 테니 말입니다.
그리고 나는 사람들에게 날마다 덕과 그 밖에 다른 일에 대하여 이야기하면서 나 자신과 남을 살피는 것이 인간에게 가장 큰 선이요,이런 생활만이 인간에게 가장 보람 있는 것이라고 말하여도,여러분은 믿지 않을 것입니다.
이것은 사실입니다.
여러분에게 믿게 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해석:'소크라테스의 변명'은 소크라테스가 사형 판결을 받았던 재판정에서의 최후 진술이다.
당시의 재판은 1000명 이상으로 이루어진 최고 재판소(디카스테리온)에서 배심원단의 투표에 의해 이뤄졌다.
소크라테스는 긴 재판 과정을 거쳐 결국 표결에 의해 사형을 언도받았는데 사형을 요구한 표결 수가 35표 더 많았다.
배심원은 아테네의 전 시민을 포함하는 명부에서 알파벳 순서로 뽑혀 구성되는데 이보다 더 민주적인 제도는 없었을 정도였다.
그러나 스크라테스는 바로 이 점을 들어 그리스 민주정치가 위선적이며 무능하고 이보다 더 어리석은 제도는 없다고 비판했다.
또 바로 그 때문에 분노한 배심원들은 그를 사형시키기에 이르게 된다.
바로 이 과정들에 대한 기록이 '변명'이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여러분은 나에게 유죄 판결을 하였습니다.
나는 이 결과에 분노하지 않습니다.
나는 오히려 쌍방의 투표결과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나는 그 차이가 이렇게 적을 줄 몰랐습니다.
분명 훨씬 많으리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단지 35표만 반대로 갔더라면 나는 무죄가 되었을 것입니다.
아테네 시민 여러분 아마 여러분은 고약한 사람들에 의하여 현명한 사람인 소크라테스를 죽였다는 누명을 쓰고 비난도 받을 것입니다.
아마 (사건을 심리하는) 시간이 짧았던 탓일 겁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해석:'변명'은 요즘의 표현대로 하자면 '최후 진술'이 더 적합할 것 같다.
70세에 이른 이 노 철학자는 자신에게 사형을 언도한 그리스 민중들에게 때로는 저주를 퍼붓기도 하고 때로는 연민의 정을 느끼며 실제 웅변 시간이 3~4시간은 족히 될 만한 분량으로 마지막 가르침을 베풀고 있다.
이 진술에서 그는 자신을 고발한 멜레투스 등 민주파들과 치열한 논리 대결을 벌이기도 하고 자신이 무죄임을 입증하기 위해 다양한 주장과 증거를 대기도 한다.
【그리하여 나는 사형선고를 받고 지금 이 자리를 떠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진리를 거역하고 내게 유죄를 판결했습니다.
나는 이 판결에 복종해야 하겠지만 여러분도 복종하십시오.나는 이미 충분히 늙었고 죽음에 임박해 있기 때문에 약간의 예언도 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은 내가 죽은 후에 곧 징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생활에 대한 간섭에서 벗어나기 위해 이와 같은 일을 저질렀겠지만 결과는 오히려 전혀 다를 것입니다.
생활에 대한 간섭은 더욱 많아질 것이고 괴로움도 받게 될 것입니다.
(중략) 이제 우리는 헤어질 시간이 되었습니다.
나는 죽기 위하여,여러분은 살기 위하여.그러나 우리 앞의 어느 쪽에 더 좋은 것이 기다리고 있는지 신 외에는 아무도 분명히 알지 못할 것입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
▶해석: 소크라테스는 분명 요즘 말로 하면 내란 선동죄 혹은 국기 문란죄로 사형을 언도받았다.
그러나 플라톤이 기록한 대화편에는 의외로 정치에 대한 직접적인 언급이 많지 않다.
아마 저자인 플라톤이 자신의 '국가론' 등에 스승의 생각을 모두 담았다고 생각했거나 당시의 정치적 상황을 감안해 스승의 정치 관련 발언을 되도록 우회적으로 표현했을 가능성이 크다.
위의 원문도 그런 경우에 속한다.
"생활에 대한 간섭은 더욱 많아질 것이고 괴로움도 받게 될 것"이라고 쓰고 있지만 누구에 의해 왜 그럴 것인지는 생략되어 있다.
그리스 민주주의가 지향하는 가치가 결과적으로는 민중들에게 오히려 손해가 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지만 역시 논리적 혹은 구체적 서술은 생략되고 있다.
이점에 대해서는 플라톤으로 직접 가볼 수밖에 없다.
한산동 생글생글i 연구원 hansandong@sgs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