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전의 시대' 지나 서로 다른 문명의 갈등
냉전 체제가 끝나고 세계화가 본격화되면서 세계는 평화의 시기를 맞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자국의 이익을 위한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라면 보편 이념을 바탕으로 한 세계 시민 사회를 모색했던 칸트의 주장은 한 철학자의 이상적인 꿈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미 일정 정도 이념적 갈등이 마무리된 시점에서 무엇이 분쟁의 요소로 등장할 것인가?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에서 이전의 정치적 이념 갈등에 의한 분쟁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명의 충돌이 세계 분쟁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계 갈등의 요소를 정치적·경제적 요인에서 찾았던 이전의 관점과는 구별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 지역 정치는 민족성의 정치학이며 세계 정치는 문명의 정치학이다.
강대국의 경쟁은 문명의 층돌로 바뀐다.
세계 정치는 문화와 문명의 괘선을 따라 재편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전파력이 크며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갈등은 사회적 계급,빈부,경제적으로 정의되는 집단 사이에 나타나지 않고 상이한 문화적 배경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날 것이다.
종족 전쟁이나 민족 분쟁은 한 문명 안에서도 여전히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상이한 문명에 속하는 국가나 집단 사이의 폭력은 이들 문명에 소속된 여타 국가나 집단이 자기네 '친족국'을 돕기 위해 결집하면서 확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잠재력을 늘 지니고 있다."
새뮤얼 헌팅턴은 국가 단위 패러다임이 중심이었던 냉전 체제와는 달리 냉전 이후의 세계 정치는 문명에 의해 규정된다고 주장한다.
국가는 역사적 시기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다르게 추구하는데,세계화가 전개되면서 각 국가들은 공통되거나 유사한 문화를 가진 나라끼리 동맹을 맺거나 협력을 하고,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나라들은 분쟁을 겪게 됨으로써 문화·문명에 따라 세계 권력이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말리아나 르완다에서 벌어지는 부족 간 유혈 충돌은 매우 가까운 주변 국가에 영향을 끼치는 정도이지만 보스니아와 같은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념적 체제로 통합되었던 유고슬라비아가 가톨릭을 믿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이슬람 교도가 부분적 세력을 잡고 있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정교 인구가 다수를 점하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와 마케도니아로 분열된 것은 결국 종교라는 문명의 경계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의 분쟁은 유사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국가 간의 분쟁과 달리 문명적 차이에 의한 것이므로 세계 전체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의 위기까지 초래할 수 있는 분쟁의 원인인 문명이란 무엇일까?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특성을 규정하면서 문화와 구분하고 있다.
즉 '문명은 가장 광범위한 문화적 실체'라는 것이다.
또 문명은 유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진화할 뿐만 아니라 역동적이기까지 하다.
문명은 정치적 실체가 아닌 문화적 실체이기 때문에 '치안을 유지하거나 정의를 세우거나 세금을 거두거나 전쟁을 수행하거나 협상을 벌이거나 그 밖의 정부가 하는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의 문명 개념에 따르면 현재 세계에는 중화·일본·힌두·이슬람·정교·서구·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와 같은 주요 문명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문명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특성은 종교다.
주요 문명이 세계 권력을 재편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고 할 때 무엇이 이러한 문명의 분열과 공존을 주도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에 대해 헌팅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화의 판세는 힘의 판세를 반영한다.
정복은 교역을 동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힘은 거의 예외 없이 문화를 동반한다.
과거의 역사를 보면 한 문명의 힘이 팽창하면 동시에 문화가 융성하였고 그 문명은 막강한 힘으로 자신의 가치관,관습,제도를 다른 사회에 확산시켰다.
보편의 문명은 보편의 힘을 요구한다.
(…) 도대체 무엇이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매력적으로 만들까? 문화와 이데올로기는 그것들이 물질적 성공과 영향력에 뿌리를 둔 것으로 파악될 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부드러운 힘은 딱딱한 힘의 토대 위에서만 힘을 갖는다.
경제력과 군사력이 단단해지면 자신감과 자부심도 올라가며,자기 문화 혹은 부드러운 힘의 상대적 우위에 대한 믿음이 굳건해진다.
덩달아 다른 나라들도 그 나라의 문화에서 매력을 느낀다."
이전 침략과 정복의 시대에는 문화적 코드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했을 수 있다.
일방적인 수용과 그에 대한 강요만이 존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문명적 소통은 문화 교류를 통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즉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는 데 있어 문화적 교류는 불필요했을 것이다.
그들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실현하기만 하면,또 우리가 그것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만 하면 두 국가 간의 분쟁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어떤가? 자본을 바탕으로 한 문화적 교류 속에서 자연스럽게 상대 국가를 잠식해 들어간다.
그 결과 국가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동일한 문화를 경험한다는 정서적 유대감 만족감만이 남는다.
그러나 문화 역시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한다.
경제력과 군사력과 같은 외부적 요인들이 뒷받침될 때 우리의 문화를 상대 문화에 전파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화가 여전히 경제·정치 강대국들에 의한 강제된 문화 교류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따라서 헌팅턴에게 서구는 여전히 훌륭한 문명인 것이다.
"앞으로 대규모의 문명 전쟁을 사전에 방지하려면 핵심국들이 다른 문명 내부 분쟁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 핵심국이 다른 문명의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하는 자제의 원칙은 다문명,다극 세계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데 으뜸 가는 전제 조건이다.
또 하나의 전제 조건은 핵심국들끼리 상이한 문명에 속한 집단과 국가 간의 단층선 전쟁을 억제하거나 종식시키기 위해 타협해야 한다고 하는 공동 중재의 원칙이다.
(…) 그러므로 자제의 원칙과 중재의 원칙 이외에도 다문명 세계에서 평화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또 하나의 원칙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동질성의 원칙이다.
어떤 문명에서 살고 있건 간에 인간은 다른 문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가치관,제도 관행을 확대하는 방법을 꾸준히 모색하고 그 방안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문명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헌팅턴은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자제의 원칙 △공동 중재의 원칙 △동질성의 원칙이 그것이다.
물론 그의 문명론에 동의할 수 없다면 그가 제시하는 대안 역시 동의할 수 없는 것이지만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서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화가 일정 부분 문화적 코드의 접속에 의해 전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유사한 문명권의 관계가 상이한 문명 간의 관계보다 훨씬 유연하게 형성된다는 점에서 헌팅턴의 문명을 기준으로 한 세계에 대한 이해는 기존의 관점을 넘어서는 독특함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을 잃을 경우 서구는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떨어지는,유라시아 대륙의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붙어 있는 반도의 신세로 전락한다.
'서구 문명은 안전 지대가 되었다''서구는 평화의 시기로 접어든 성숙한 사회가 되었다'고 하는 등 서구 우월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비판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박미서(초암논술아카데미 논술강사) dolpul@empal.com
냉전 체제가 끝나고 세계화가 본격화되면서 세계는 평화의 시기를 맞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자국의 이익을 위한 크고 작은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이런 현실 속에서라면 보편 이념을 바탕으로 한 세계 시민 사회를 모색했던 칸트의 주장은 한 철학자의 이상적인 꿈이 아닐까 싶다.
그러나 이미 일정 정도 이념적 갈등이 마무리된 시점에서 무엇이 분쟁의 요소로 등장할 것인가?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충돌>에서 이전의 정치적 이념 갈등에 의한 분쟁이 아니라 서로 다른 문명의 충돌이 세계 분쟁의 핵심으로 등장하게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세계 갈등의 요소를 정치적·경제적 요인에서 찾았던 이전의 관점과는 구별된다는 점에서 관심을 끌기에는 충분하다.
"이 새로운 세계에서 지역 정치는 민족성의 정치학이며 세계 정치는 문명의 정치학이다.
강대국의 경쟁은 문명의 층돌로 바뀐다.
세계 정치는 문화와 문명의 괘선을 따라 재편되고 있다.
여기서 가장 전파력이 크며 가장 중요하고 위험한 갈등은 사회적 계급,빈부,경제적으로 정의되는 집단 사이에 나타나지 않고 상이한 문화적 배경에 속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타날 것이다.
종족 전쟁이나 민족 분쟁은 한 문명 안에서도 여전히 발생할 것이다.
그러나 상이한 문명에 속하는 국가나 집단 사이의 폭력은 이들 문명에 소속된 여타 국가나 집단이 자기네 '친족국'을 돕기 위해 결집하면서 확전으로 치달을 수 있는 잠재력을 늘 지니고 있다."
새뮤얼 헌팅턴은 국가 단위 패러다임이 중심이었던 냉전 체제와는 달리 냉전 이후의 세계 정치는 문명에 의해 규정된다고 주장한다.
국가는 역사적 시기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다르게 추구하는데,세계화가 전개되면서 각 국가들은 공통되거나 유사한 문화를 가진 나라끼리 동맹을 맺거나 협력을 하고,서로 다른 문화를 가진 나라들은 분쟁을 겪게 됨으로써 문화·문명에 따라 세계 권력이 재편되고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소말리아나 르완다에서 벌어지는 부족 간 유혈 충돌은 매우 가까운 주변 국가에 영향을 끼치는 정도이지만 보스니아와 같은 경우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념적 체제로 통합되었던 유고슬라비아가 가톨릭을 믿는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이슬람 교도가 부분적 세력을 잡고 있는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정교 인구가 다수를 점하는 세르비아-몬테네그로와 마케도니아로 분열된 것은 결국 종교라는 문명의 경계에 따른 것이기 때문이다.
즉 이들의 분쟁은 유사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국가 간의 분쟁과 달리 문명적 차이에 의한 것이므로 세계 전체의 위기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의 위기까지 초래할 수 있는 분쟁의 원인인 문명이란 무엇일까?
새뮤얼 헌팅턴은 문명의 특성을 규정하면서 문화와 구분하고 있다.
즉 '문명은 가장 광범위한 문화적 실체'라는 것이다.
또 문명은 유구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진화할 뿐만 아니라 역동적이기까지 하다.
문명은 정치적 실체가 아닌 문화적 실체이기 때문에 '치안을 유지하거나 정의를 세우거나 세금을 거두거나 전쟁을 수행하거나 협상을 벌이거나 그 밖의 정부가 하는 일을 처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그의 문명 개념에 따르면 현재 세계에는 중화·일본·힌두·이슬람·정교·서구·라틴아메리카·아프리카와 같은 주요 문명이 존재하고 있다.
이러한 문명을 규정하는 핵심적인 특성은 종교다.
주요 문명이 세계 권력을 재편하는 핵심적인 요소가 된다고 할 때 무엇이 이러한 문명의 분열과 공존을 주도하는 것인지 궁금해진다.
이에 대해 헌팅턴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문화의 판세는 힘의 판세를 반영한다.
정복은 교역을 동반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힘은 거의 예외 없이 문화를 동반한다.
과거의 역사를 보면 한 문명의 힘이 팽창하면 동시에 문화가 융성하였고 그 문명은 막강한 힘으로 자신의 가치관,관습,제도를 다른 사회에 확산시켰다.
보편의 문명은 보편의 힘을 요구한다.
(…) 도대체 무엇이 문화와 이데올로기를 매력적으로 만들까? 문화와 이데올로기는 그것들이 물질적 성공과 영향력에 뿌리를 둔 것으로 파악될 때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부드러운 힘은 딱딱한 힘의 토대 위에서만 힘을 갖는다.
경제력과 군사력이 단단해지면 자신감과 자부심도 올라가며,자기 문화 혹은 부드러운 힘의 상대적 우위에 대한 믿음이 굳건해진다.
덩달아 다른 나라들도 그 나라의 문화에서 매력을 느낀다."
이전 침략과 정복의 시대에는 문화적 코드가 큰 의미를 지니지 못했을 수 있다.
일방적인 수용과 그에 대한 강요만이 존재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데올로기가 아닌 문명적 소통은 문화 교류를 통한 이해를 바탕으로 한다.
즉 일본이 우리나라를 침략하는 데 있어 문화적 교류는 불필요했을 것이다.
그들의 정치적 이데올로기를 실현하기만 하면,또 우리가 그것을 일방적으로 수용하기만 하면 두 국가 간의 분쟁은 더 이상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어떤가? 자본을 바탕으로 한 문화적 교류 속에서 자연스럽게 상대 국가를 잠식해 들어간다.
그 결과 국가라는 개념은 사라지고 동일한 문화를 경험한다는 정서적 유대감 만족감만이 남는다.
그러나 문화 역시 물적 토대를 바탕으로 한다.
경제력과 군사력과 같은 외부적 요인들이 뒷받침될 때 우리의 문화를 상대 문화에 전파할 수 있는 것이다.
세계화가 여전히 경제·정치 강대국들에 의한 강제된 문화 교류라는 점을 기억한다면 쉽게 이해될 것이다.
따라서 헌팅턴에게 서구는 여전히 훌륭한 문명인 것이다.
"앞으로 대규모의 문명 전쟁을 사전에 방지하려면 핵심국들이 다른 문명 내부 분쟁에 개입하지 말아야 한다.
(…) 핵심국이 다른 문명의 분쟁에 개입하지 않는다고 하는 자제의 원칙은 다문명,다극 세계에서 평화를 유지하는 데 으뜸 가는 전제 조건이다.
또 하나의 전제 조건은 핵심국들끼리 상이한 문명에 속한 집단과 국가 간의 단층선 전쟁을 억제하거나 종식시키기 위해 타협해야 한다고 하는 공동 중재의 원칙이다.
(…) 그러므로 자제의 원칙과 중재의 원칙 이외에도 다문명 세계에서 평화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또 하나의 원칙이 있으니 그것이 바로 동질성의 원칙이다.
어떤 문명에서 살고 있건 간에 인간은 다른 문명에서 살아가는 사람들과 공유하는 가치관,제도 관행을 확대하는 방법을 꾸준히 모색하고 그 방안을 실천에 옮겨야 한다."
문명의 충돌을 피하기 위해 헌팅턴은 세 가지 원칙을 제시한다.
△자제의 원칙 △공동 중재의 원칙 △동질성의 원칙이 그것이다.
물론 그의 문명론에 동의할 수 없다면 그가 제시하는 대안 역시 동의할 수 없는 것이지만 평화로운 세계를 만들기 위한 하나의 대안으로서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세계화가 일정 부분 문화적 코드의 접속에 의해 전개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유사한 문명권의 관계가 상이한 문명 간의 관계보다 훨씬 유연하게 형성된다는 점에서 헌팅턴의 문명을 기준으로 한 세계에 대한 이해는 기존의 관점을 넘어서는 독특함이 있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미국을 잃을 경우 서구는 세계 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떨어지는,유라시아 대륙의 한 귀퉁이에 조그맣게 붙어 있는 반도의 신세로 전락한다.
'서구 문명은 안전 지대가 되었다''서구는 평화의 시기로 접어든 성숙한 사회가 되었다'고 하는 등 서구 우월적 사고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점은 여전히 비판의 여지가 있을 것이다.
박미서(초암논술아카데미 논술강사) dolpul@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