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들이 흘러가는 혈맥들''서기한 광채''슬픈 마음을 울 눈도 없이 고독했다'….지난 호에 소개한 김동리-이어령 간 비문논쟁을 통해 우리가 글쓰기에서 유념해야 할 부분들을 살펴보자.

우선 '피들'은 어떻게 봐야 할까.

'-들'은 복수접미사다.

명사뿐만 아니라 "빨리들 해라" "잘들 한다"처럼 부사에도 자연스럽게 붙는다.

'들'이 자주 쓰이다 보니 남용되는 경우도 많다.

자체로 복수 의미를 담고 있는 단어에까지 붙이는 게 그런 경우다.

'대중들,여러분들,우리들,관중들'과 같은 표현은 강조를 위해 썼다는 점을 감안하더라도 대개는 불필요한 겹말에 불과하다.

'들'은 물질명사에도 붙지 않는다.

가령 '비들,설탕들,안개들' 따위가 어색한 것처럼 물질명사인 '피'에도 '-들'이 붙으면 자연스럽지 않다.

물론 시적 언어로 쓰인 경우는 단순히 이런 잣대로 판단하기에는 무리가 있다.

작품 속의 언어는 창작자의 것이기 때문에 독자가 이해할 수 있을지, 또는 어떤 의미로 받아들일지는 또 다른 차원의 몫이다.

가령 누군가 개인적으로 '엽기적'이란 말에서 '끔찍한,잔혹한' 정도의 뜻만을 떠올린다면 그는 요즘 쓰는 '엽기송(song)'이니 '엽기적인 그녀'라는 표현의 정확한 의미를 파악할 수 없을 것이다.

마찬가지로 특정한 문맥에서는 물질명사에 '들'이 붙는 표현을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말 연구가인 남영신 선생('나의 한국어 바로쓰기 노트')은 "'피들'과 '피'의 어느 표현이 생명감을 더 주고 덜 준다고 느껴지지 않는다.

만일 생명감을 주고 싶다면 '피들'을 '피톨들'로 쓰면 가능할 것 같다"라고 지적해 여기서의 '피들'이 시적 표현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라고 설명한다.

'서기한 광채'에서 '서기'를 '瑞氣'로 해석한다면 '서기한'은 틀린 표현이다.

'瑞氣'란 말 그대로 '상서로운 기운'이므로 여기에 '-하다'를 붙이는 것은 매우 어색하다.

'-하다'는 통상 명사 밑에 붙어 우리말에서 부족한 동사,형용사를 만들어내는 중요한 요소다.

'칭찬하다'에서처럼 동작명사 밑에 붙어서는 동사를,'만족하다'에서처럼 상태명사 뒤에서는 형용사를 만든다.

하지만 이 역시 물질명사나 추상명사에는 붙지 않는다.

'기운하다'가 어색한 것과 마찬가지로 '서기하다'도 바른 어법이 아니라는 것이다.

은유는 단어들 간 의미자질의 일탈을 통해 만들어지는데 여기에는 한계가 있다.

그 한계는 의미자질에 공통점이 있느냐다.

'슬픈 마음을 울'에서는 '마음을 울'이 은유다.

'마음'의 의미자질은 '사람,무형적,감정,품성,정신…' 등이 나올 것이다.

'울다'의 의미자질은 '사람/짐승,유형적,슬픔,기쁨…' 등이다.

'마음'과 '울다' 사이에는 공유하는 의미자질이 있으므로 두 단어는 은유표현으로 연결될 수 있는 관계다. 은유를 쓰는 이유는 바로 이 한계 직전까지 가는 데서 오는 언어적 긴장감의 극대화에 있다.

다만 일반적인 글쓰기에서는 은유 등 수사적 표현은 자칫 정확한 의미전달에 실패할 수 있기 때문에 조심해 써야 한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기자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