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 냉전의 두 축인 미국과 러시아(옛 소련)가 '신(新) 냉전 시대'에 돌입했다.
정치·외교·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두 나라가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과거 냉전은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는 이념 갈등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붕괴된 지금은 경제적 이해관계와 이에 기반한 힘의 논리가 이 자리를 메우고 있다.
◆신냉전은 '경제 전쟁'
미국 유력 경제신문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미국이 러시아의 10년 숙원인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반대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그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 기업의 자국 내 사업 참여를 원천봉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WTO에 가입하려면 △외국 금융사의 지점 설치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국내외 에너지 이중가격 철폐 △민항기 도입 시 관세 인하 등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러시아의 인권과 종교의 자유를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정가(政街)의 분위기도 러시아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다.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은 이달 초 리투아니아에서 개최된 발트-흑해 지도자 국제포럼에서 "러시아가 민주주의를 퇴보시키고 에너지 자원을 유럽에 대한 정치적 압박용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의 초당적 싱크탱크인 외교관계위원회(CFR)도 지난 3월 '러시아의 잘못된 방향'이란 보고서에서 체니 부통령과 같은 이유로 "러시아는 미국의 전략적 동반자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러시아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는 않겠다는 태도다. 이고르 슈바로프 러시아 대통령 경제자문역은 미국의 '러시아 때리기'를 거론하며 "120억달러 규모의 슈톡만 천연가스 프로젝트에 셰브론,코노코필립스 같은 미국 기업이 참여하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국영 항공사 아에로플로트의 30억달러 규모 항공기 구입도 (미국의) 보잉이 아닌 (유럽의) 에어버스에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 부활'이 러시아 파워의 배경
러시아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국과 정면 대결하는 것을 피했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한동안 친미(親美) 노선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의 태도 변화에는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러시아 경제는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바탕으로 1999년 이후 지난해까지 6년 연속 플러스 성장을 했다. 최근 2년간은 연 7% 이상의 고성장을 달성했다. 외환보유액은 지난 4월 말 기준 2257억달러로 중국(8750억달러) 일본(8320억달러) 대만(2570억달러)에 이어 세계 4위다. 미국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러시아가 2050년께 1인당 국내총생산(GDP) 5만달러의 세계 6대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2003년 '에너지 2020'이란 보고서를 통해 에너지 자원으로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첨단 기술에 집중 투자,2020년까지 세계 7대 무역대국과 세계 10대 자본수출입국에 진입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정치·외교도 갈등 심화
경제력을 바탕으로 러시아는 잃어버린 '과거의 영광' 찾기에 나섰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1991년 소련 붕괴 후 발을 뺐던 중동 지역에 다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는 이란 핵 문제와 관련,강공책을 펴고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행보에 제동을 걸고 있다. 미국의 군사 공격에 강력히 반대하면서 이란에는 러시아제 방공 미사일 시스템을 수출하는 등 경제적 이익도 챙기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3월 미국이 테러단체로 규정한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지도부를 모스크바로 초청하기도 했다. 이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미국의 경제 봉쇄에 맞서 1000만달러를 지원했다.
옛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놓고도 두 나라는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단적인 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혁명(일명 오렌지 혁명)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지원,'러시아 포위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지난 1월 우크라이나에 가스 공급을 중단했으며 최근 대선에선 친(親)러시아 후보를 배후에서 지지했다. 러시아는 군비 증강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올초 신년기자 회견과 최근 상원·하원 의원들을 상대로 한 국정연설에서 잇따라 군비 증강과 러시아군의 현대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오는 7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선진 7개국과 러시아 정상이 참석하는 G8 연례 정상회의가 열린다. 푸틴 대통령은 올해 G8 정상회의의 순번제 의장이다.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이 회의가 미국과 러시아의 또 다른 힘겨루기 장이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주용석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
정치·외교·경제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두 나라가 사사건건 대립하고 있다.
과거 냉전은 '자본주의냐 사회주의냐'는 이념 갈등에서 비롯됐다.
하지만 사회주의가 붕괴된 지금은 경제적 이해관계와 이에 기반한 힘의 논리가 이 자리를 메우고 있다.
◆신냉전은 '경제 전쟁'
미국 유력 경제신문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미국이 러시아의 10년 숙원인 세계무역기구(WTO) 가입에 반대하고 있으며 러시아는 그에 대한 보복으로 미국 기업의 자국 내 사업 참여를 원천봉쇄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은 러시아가 WTO에 가입하려면 △외국 금융사의 지점 설치 △지식재산권 보호 강화 △국내외 에너지 이중가격 철폐 △민항기 도입 시 관세 인하 등이 먼저 해결돼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 러시아의 인권과 종교의 자유를 확대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미국 정가(政街)의 분위기도 러시아의 신경을 자극하고 있다. 딕 체니 미국 부통령은 이달 초 리투아니아에서 개최된 발트-흑해 지도자 국제포럼에서 "러시아가 민주주의를 퇴보시키고 에너지 자원을 유럽에 대한 정치적 압박용으로 활용하고 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미국의 초당적 싱크탱크인 외교관계위원회(CFR)도 지난 3월 '러시아의 잘못된 방향'이란 보고서에서 체니 부통령과 같은 이유로 "러시아는 미국의 전략적 동반자가 될 수 없다"고 단언했다.
러시아도 가만히 앉아서 당하지는 않겠다는 태도다. 이고르 슈바로프 러시아 대통령 경제자문역은 미국의 '러시아 때리기'를 거론하며 "120억달러 규모의 슈톡만 천연가스 프로젝트에 셰브론,코노코필립스 같은 미국 기업이 참여하지 못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또 "국영 항공사 아에로플로트의 30억달러 규모 항공기 구입도 (미국의) 보잉이 아닌 (유럽의) 에어버스에 돌아갈 수 있다"고 말했다.
◆'경제 부활'이 러시아 파워의 배경
러시아는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미국과 정면 대결하는 것을 피했다. 사회주의 붕괴 이후 한동안 친미(親美) 노선을 걸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의 태도 변화에는 경제가 빠르게 회복되고 있다는 자신감이 깔려 있다. 러시아 경제는 풍부한 에너지 자원을 바탕으로 1999년 이후 지난해까지 6년 연속 플러스 성장을 했다. 최근 2년간은 연 7% 이상의 고성장을 달성했다. 외환보유액은 지난 4월 말 기준 2257억달러로 중국(8750억달러) 일본(8320억달러) 대만(2570억달러)에 이어 세계 4위다. 미국계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러시아가 2050년께 1인당 국내총생산(GDP) 5만달러의 세계 6대 경제 강국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2003년 '에너지 2020'이란 보고서를 통해 에너지 자원으로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첨단 기술에 집중 투자,2020년까지 세계 7대 무역대국과 세계 10대 자본수출입국에 진입하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한 바 있다.
◆정치·외교도 갈등 심화
경제력을 바탕으로 러시아는 잃어버린 '과거의 영광' 찾기에 나섰다. 가장 눈에 띄는 변화가 1991년 소련 붕괴 후 발을 뺐던 중동 지역에 다시 개입하기 시작한 것이다.
러시아는 이란 핵 문제와 관련,강공책을 펴고 있는 미국과 유럽연합(EU)의 행보에 제동을 걸고 있다. 미국의 군사 공격에 강력히 반대하면서 이란에는 러시아제 방공 미사일 시스템을 수출하는 등 경제적 이익도 챙기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지난 3월 미국이 테러단체로 규정한 팔레스타인의 하마스 지도부를 모스크바로 초청하기도 했다. 이어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에 대한 미국의 경제 봉쇄에 맞서 1000만달러를 지원했다.
옛 소련에서 독립한 국가들에 대한 영향력 확대를 놓고도 두 나라는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우크라이나가 단적인 예다. 미국은 우크라이나의 친서방 혁명(일명 오렌지 혁명)과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가입을 지원,'러시아 포위작전'을 구사하고 있다. 이에 대해 러시아는 지난 1월 우크라이나에 가스 공급을 중단했으며 최근 대선에선 친(親)러시아 후보를 배후에서 지지했다. 러시아는 군비 증강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푸틴 대통령은 올초 신년기자 회견과 최근 상원·하원 의원들을 상대로 한 국정연설에서 잇따라 군비 증강과 러시아군의 현대화 필요성을 역설했다.
오는 7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선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서방 선진 7개국과 러시아 정상이 참석하는 G8 연례 정상회의가 열린다. 푸틴 대통령은 올해 G8 정상회의의 순번제 의장이다. 전문가들은 벌써부터 이 회의가 미국과 러시아의 또 다른 힘겨루기 장이 될 것으로 관측하고 있다.
주용석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