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 … 결혼 … 가정 … 우리가 서 있는 위치는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꾼다. 어느 누구도 불행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 있어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는 유일한 명분은 행복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사랑,결혼,가정은 행복이라는 삶의 명분을 내세우는 대표적인 양식일 수 있다.
울리히 벡과 그의 아내 엘리자베트 벡-게른샤임의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은 사랑,결혼,가정에 대한 사회학적 성찰을 시도하고 있는 책이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꾸고 있으면서도 행복하다고 느끼기보다는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더 많은 이유는 무엇인지 현대 사회의 특성을 바탕으로 근원적인 고민을 통해 사랑이 현대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그 결과물이라도 때로는 오해받기도 하는 결혼이 현대인들을 과연 행복하게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벡 부부는 사랑이 단지 두 사람만의 감정의 교류라는 일차원적인 논의를 배제한다. 사랑은 사회적 현상의 하나며,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그 양상과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전제로 왜 그토록 현대인들은 사랑에 목말라하며,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들이 끊임없이 생겨남에도 결혼하고 싶어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한다.
전근대 사회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엄격한 규칙과 규제들로 틀이 지워져 있었다. 그런 것들이 사라져감에 따라 삶에 주어졌던 제한은 약해졌고,선택의 여지가 늘어났으며,선택의 가능성 또한 많아졌다. 많은 면에서 삶은 예전보다 덜 제한되고 훨씬 더 유연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또한 우리들 각자가 수많은 의사결정에 직면해야 함을 의미한다. 휴가를 어디로 가며 무슨 차를 살 것인가와 같은 자잘한 것으로부터 아이를 몇 명이나 낳을 것이며 어떤 학교에 보낼지 등과 같은 장기적 사안에 이르기까지 의사 결정의 수준은 모든 범위에 걸쳐 있다.
우리는 책임있는 시민과 비판적 소비자가 될 것,가격을 따지고 환경친화적이 될 것 등을 기대받는다. 최근에는 핵 에너지의 안전성이나 약물의 오남용에 대해서도 신경쓸 것 등도 추가된다. 그러나 현대정신 분석가들이 지적해 온 바처럼,이와 같이 '과잉공급된 선택지를 갖고 살아가기'는 종종 개인에게 과중한 부담이 된다.
벡 부부는 현대 사회가 개인에게 지나치게 많은 선택지를 던져줌으로써 개인에게 과중한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것으로 현대 사회의 개인화 현상을 설명한다. 즉 이전의 사회는 일정한 사회적 규칙과 도덕 등에 의해 개인의 삶을 억압함으로써 개인은 자신의 삶을 선택할 자유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개개인이 자신의 삶에 놓여진 다양한 선택지를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의사결정의 시대다.
이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성장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이전의 사회 갈등이 근로 대중 사이에 널리 퍼진 빈곤과 고통 때문에 발생하고 공적 투쟁을 통해 해결된 데 반해,오늘날 나타나고 있는 갈등은 대부분 사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고 개개인의 사적인 투쟁을 통해 해결되고 있다는 특성을 통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화라는 사회적 현상을 전제할 때만이 하나의 종교로까지 자리잡은 사랑에 대한 현대인의 맹신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의 지평은 이 세상과 저 세상,시작과 끝,시간과 영원,산 자와 죽은 자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따라서 변하지 않는 것,시간이 건드릴 수 없는 것으로 찬양된다.
이와 반대로 사랑의 지평은 좁고 특별하며,나와 너의 작은 세계로 이루어진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이 배타적이고 누가 봐도 이기적이며,논리상 부당함과 잔인함 사이의 어디쯤엔가 위치해 있으며 독단적이고 법의 범위 밖에 있다. 사랑의 절대적 명령은 다른 소망들을 가로지르고,사랑의 원리들은 사랑을 표준화하려는 모든 시도에 저항한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사랑은 개인화의 위험에 저항할 수 있는 최상의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이는 사랑이 다름을 강조하지만 모든 외로운 개인들에게 함께함을 약속해주기 때문이다.
사랑은 낡아빠진 지위 상징이나 돈이나 법률적 고려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실하고 직접적인 느낌에,이 느낌이 타당하다는 신념에,그리고 이 느낌이 향해 있는 사람에게 의지한다. 연인들 자신이 입법자이며,서로에게서 기쁨을 느끼며 자체의 법을 제정한다.
과잉공급된 선택지를 갖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선택의 기로에서 외로움과 두려움,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선택이란 곧 그에 따른 책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선택의 순간 나 혼자라는 생각은 인간을 더욱 불안하게 한다. 따라서 현대인은 이러한 불안함과 외로움,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며,그럴수록 사랑에 대한 욕망은 더욱 커져간다.
이전 사회에서의 사랑이 하나의 규범적 양식을 가졌다면,현대인에게 사랑은 개인의 자아 찾기의 하나며 지극히 사적인 영역의 문제로 이해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에 대한 인식 변화는 결혼에 대한 관점도 변화시킨다.
현대의 온갖 발전이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는 우리가 사랑을 이상화하는 방식 속에 반영돼 있다. 우리들의 사랑법 속에는 사랑에 대한 찬미가 있다. 이러한 찬미는 우리가 일상의 생활 속에서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것들을 상쇄해 주는 일종의 균형추이다. 신이나 사제나 계급 또는 이웃도 아니라면 최소한 그래도 '너'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너'의 크기는 만약 '너'마저 없었다면 사람들을 압도해 오게 되었을 공허감의 크기에 반비례한다.
이는 결국 가족과 결혼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물질적 안정과 애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온갖 위기와 의혹에도 불구하고 아마 결혼하지 않을 경우 우리가 직면하게 될 것,즉 고독의 위협이야말로 결혼에서 가장 믿을 만한 토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결혼은 더 이상 일상이 아니다. 불안과 외로움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출구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는 말은 현대인들에게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사랑은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며 충족이라는 것으로 치환될 수도 없다. 사랑은 자기의 정체성을 찾는 개인의 욕망이다.
따라서 그동안 가정에 대해 무조건 좋은 것,혹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를 요구한다. 가정은 사랑으로 이루어진 완전무결하고 영원한 보금자리가 아니다. 남성과 여성,혹은 개인과 개인의 차이를 표면으로 노출시키는 장소다. 따라서 하나의 가정에는 자기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여러 명의 개인이 존재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하나의 공동체로서 이해하던 근대적인 사고방식은 가정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나 무조건적인 부정을 낳게한다는 것이 벡 부부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외로움과 불안함을 안고 있는 우리에게 진정한 해결책이란 무엇인가? 물론 벡 부부는 어떠한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자칫 그렇다면 이들의 이야기가 공염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벡 부부의 이야기는 우리의 사랑에 대한 맹목적인 욕망이 어디에서부터 기원하는지,우리의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에 대한 나름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따라서 해결책을 찾아주는 실용적인 책읽기가 아닌 우리가 서 있는 지금을 생각해 보게 하는 성찰적인 책읽기로서 훌륭한 텍스트가 될 것이다.
박미서(초암논술아카데미 논술강사) dolpul@empal.com
사람들은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꾼다. 어느 누구도 불행하기 위해 살아가는 사람은 없다. 그래서 인간의 삶에 있어 진정성을 의심받지 않는 유일한 명분은 행복일지도 모른다. 그런 점에서 사랑,결혼,가정은 행복이라는 삶의 명분을 내세우는 대표적인 양식일 수 있다.
울리히 벡과 그의 아내 엘리자베트 벡-게른샤임의 '사랑은 지독한 그러나 너무나 정상적인 혼란'은 사랑,결혼,가정에 대한 사회학적 성찰을 시도하고 있는 책이다.
누구나 행복한 삶을 꿈꾸고 있으면서도 행복하다고 느끼기보다는 불행하다고 느끼는 사람이 더 많은 이유는 무엇인지 현대 사회의 특성을 바탕으로 근원적인 고민을 통해 사랑이 현대 사회에서 어떤 의미를 갖고 있는지,그 결과물이라도 때로는 오해받기도 하는 결혼이 현대인들을 과연 행복하게 하는지에 대한 물음을 던진다.
벡 부부는 사랑이 단지 두 사람만의 감정의 교류라는 일차원적인 논의를 배제한다. 사랑은 사회적 현상의 하나며,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그 양상과 의미가 달라진다는 것을 전제로 왜 그토록 현대인들은 사랑에 목말라하며,결혼에 대한 부정적인 견해들이 끊임없이 생겨남에도 결혼하고 싶어하는가에 대해 진지하게 논의한다.
전근대 사회는 어떻게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엄격한 규칙과 규제들로 틀이 지워져 있었다. 그런 것들이 사라져감에 따라 삶에 주어졌던 제한은 약해졌고,선택의 여지가 늘어났으며,선택의 가능성 또한 많아졌다. 많은 면에서 삶은 예전보다 덜 제한되고 훨씬 더 유연해졌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또한 우리들 각자가 수많은 의사결정에 직면해야 함을 의미한다. 휴가를 어디로 가며 무슨 차를 살 것인가와 같은 자잘한 것으로부터 아이를 몇 명이나 낳을 것이며 어떤 학교에 보낼지 등과 같은 장기적 사안에 이르기까지 의사 결정의 수준은 모든 범위에 걸쳐 있다.
우리는 책임있는 시민과 비판적 소비자가 될 것,가격을 따지고 환경친화적이 될 것 등을 기대받는다. 최근에는 핵 에너지의 안전성이나 약물의 오남용에 대해서도 신경쓸 것 등도 추가된다. 그러나 현대정신 분석가들이 지적해 온 바처럼,이와 같이 '과잉공급된 선택지를 갖고 살아가기'는 종종 개인에게 과중한 부담이 된다.
벡 부부는 현대 사회가 개인에게 지나치게 많은 선택지를 던져줌으로써 개인에게 과중한 부담을 주고 있다는 것으로 현대 사회의 개인화 현상을 설명한다. 즉 이전의 사회는 일정한 사회적 규칙과 도덕 등에 의해 개인의 삶을 억압함으로써 개인은 자신의 삶을 선택할 자유를 갖지 못했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개개인이 자신의 삶에 놓여진 다양한 선택지를 스스로 선택해야 하는 의사결정의 시대다.
이는 자본주의와 민주주의의 성장과 맥을 같이 하는 것으로 이전의 사회 갈등이 근로 대중 사이에 널리 퍼진 빈곤과 고통 때문에 발생하고 공적 투쟁을 통해 해결된 데 반해,오늘날 나타나고 있는 갈등은 대부분 사적 관계 속에서 발생하고 개개인의 사적인 투쟁을 통해 해결되고 있다는 특성을 통해서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개인화라는 사회적 현상을 전제할 때만이 하나의 종교로까지 자리잡은 사랑에 대한 현대인의 맹신을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종교의 지평은 이 세상과 저 세상,시작과 끝,시간과 영원,산 자와 죽은 자 속에 자리잡고 있으며 따라서 변하지 않는 것,시간이 건드릴 수 없는 것으로 찬양된다.
이와 반대로 사랑의 지평은 좁고 특별하며,나와 너의 작은 세계로 이루어진다. 그 이상은 아무것도 없이 배타적이고 누가 봐도 이기적이며,논리상 부당함과 잔인함 사이의 어디쯤엔가 위치해 있으며 독단적이고 법의 범위 밖에 있다. 사랑의 절대적 명령은 다른 소망들을 가로지르고,사랑의 원리들은 사랑을 표준화하려는 모든 시도에 저항한다.
하지만 바로 이 때문에 사랑은 개인화의 위험에 저항할 수 있는 최상의 이데올로기이기도 하다. 이는 사랑이 다름을 강조하지만 모든 외로운 개인들에게 함께함을 약속해주기 때문이다.
사랑은 낡아빠진 지위 상징이나 돈이나 법률적 고려에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진실하고 직접적인 느낌에,이 느낌이 타당하다는 신념에,그리고 이 느낌이 향해 있는 사람에게 의지한다. 연인들 자신이 입법자이며,서로에게서 기쁨을 느끼며 자체의 법을 제정한다.
과잉공급된 선택지를 갖고 살아가는 현대인들은 선택의 기로에서 외로움과 두려움,불안함을 느끼게 된다. 선택이란 곧 그에 따른 책임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또한 선택의 순간 나 혼자라는 생각은 인간을 더욱 불안하게 한다. 따라서 현대인은 이러한 불안함과 외로움,두려움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하며,그럴수록 사랑에 대한 욕망은 더욱 커져간다.
이전 사회에서의 사랑이 하나의 규범적 양식을 가졌다면,현대인에게 사랑은 개인의 자아 찾기의 하나며 지극히 사적인 영역의 문제로 이해되는 것이다. 이러한 사랑에 대한 인식 변화는 결혼에 대한 관점도 변화시킨다.
현대의 온갖 발전이 우리를 어디로 끌고 가는지는 우리가 사랑을 이상화하는 방식 속에 반영돼 있다. 우리들의 사랑법 속에는 사랑에 대한 찬미가 있다. 이러한 찬미는 우리가 일상의 생활 속에서 잃어버렸다고 느끼는 것들을 상쇄해 주는 일종의 균형추이다. 신이나 사제나 계급 또는 이웃도 아니라면 최소한 그래도 '너'가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너'의 크기는 만약 '너'마저 없었다면 사람들을 압도해 오게 되었을 공허감의 크기에 반비례한다.
이는 결국 가족과 결혼을 하나로 묶어주는 것은 물질적 안정과 애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혼자가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라는 것을 잘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온갖 위기와 의혹에도 불구하고 아마 결혼하지 않을 경우 우리가 직면하게 될 것,즉 고독의 위협이야말로 결혼에서 가장 믿을 만한 토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현대 사회에서 결혼은 더 이상 일상이 아니다. 불안과 외로움으로부터 개인을 보호해 줄 수 있는 유일한 출구다.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결혼한다는 말은 현대인들에게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 사랑은 서로 교환할 수 있는 상품이 아니며 충족이라는 것으로 치환될 수도 없다. 사랑은 자기의 정체성을 찾는 개인의 욕망이다.
따라서 그동안 가정에 대해 무조건 좋은 것,혹은 무조건 나쁜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에도 많은 변화를 요구한다. 가정은 사랑으로 이루어진 완전무결하고 영원한 보금자리가 아니다. 남성과 여성,혹은 개인과 개인의 차이를 표면으로 노출시키는 장소다. 따라서 하나의 가정에는 자기의 정체성을 찾고자 하는 여러 명의 개인이 존재하는 것이다. 단순하게 하나의 공동체로서 이해하던 근대적인 사고방식은 가정에 대한 무조건적인 긍정이나 무조건적인 부정을 낳게한다는 것이 벡 부부의 생각이다.
그렇다면 외로움과 불안함을 안고 있는 우리에게 진정한 해결책이란 무엇인가? 물론 벡 부부는 어떠한 구체적인 해결 방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자칫 그렇다면 이들의 이야기가 공염불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벡 부부의 이야기는 우리의 사랑에 대한 맹목적인 욕망이 어디에서부터 기원하는지,우리의 삶이 어디로 흘러가는지에 대한 나름의 길을 열어주었다는 점에서 많은 생각거리를 던져준다. 따라서 해결책을 찾아주는 실용적인 책읽기가 아닌 우리가 서 있는 지금을 생각해 보게 하는 성찰적인 책읽기로서 훌륭한 텍스트가 될 것이다.
박미서(초암논술아카데미 논술강사) dolpul@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