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이 사람들을 명품 브랜드에 열광하도록 만들까.

지나치게 冷笑적이긴 했지만 미국의 경제·사회 학자 소스타인 베블런(1857∼1929)이 진단한 '과시적 소비'만큼 명쾌한 해석은 드물다.

자신의 부를 과시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것이다.

아마 베블런이 중산층으로까지 명품 소비가 일반화된 오늘날의 우리 사회를 봤다면 "온통 정신병자 투성이구먼"이라고 一喝했을는지도 모른다.

확실히 베블런이 살던 산업사회 초기 시대보다 2006년의 한국 사회는 명품에 대한 熱望이 강하다.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타워팰리스에서 살고,수입 승용차를 타며,머리부터 발끝까지 명품 브랜드로 치장하는 일이 많은 젊은이들이 羨望하는 삶이다.

전문가들은 명품을 奢侈의 상징으로 보는 시각은 최근 들어 점차 사라지고 있다고 설명한다.

명품 소비가 사회적 剩餘의 浪費로 치부되던 베블런의 시대와는 상황이 달라졌다는 얘기다.

○명품소비='트레이딩 업'

가장 큰 변화는 소비 행태에서 나타나고 있다.

'트레이딩 업' 혹은 '多面 소비'라고 표현할 만한 현상이 등장했다.

트레이딩 업이란 지난해 초 미국 보스턴컨설팅이 세계적인 소비 패턴 변화를 분석하면서 사용한 용어로 자신의 감성적 만족을 위해 고급 소비를 지향하고(트레이딩 업) 대신 생필품 구매는 최대한 아끼는(트레이딩 다운) 소비 행태를 가리킨다.

예컨대 집은 전세로 살고 쇼핑은 할인점에서 하더라도 자동차만큼은 벤츠를 타고다닌다는 식이다.

삼성경제연구소 신형원 수석연구원도 "명품 소비가 사치라는 공식이 사라지고 있다"고 진단한다.

그는 "언론이나 정치권에서 명품이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방식을 보면 대부분 품질이나 능력면에서 뛰어난 물건 또는 인물을 가리킨다"며 "2635세대 등 젊은층이 명품에 집착하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라고 분석했다.

실제 최근의 명품 소비는 젊은층을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롯데 명품관 애비뉴엘의 지난해 3월 말부터 1년간 연령대별 매출 구성비를 살펴보면 △20대 15% △30대 37% △40대 18% △50대 18% △60대 이상 12%로 20,30대가 절반을 넘었다.

이들 2635세대들은 직접적인 소비대신 '명품 렌털족' 혹은 '명품 접속족'으로 살아가기도 한다.

유행의 속도가 워낙 빠르다보니 첨단 IT제품과 명품 의류 브랜드들을 구매하는 것이 아니라 빌려서 사용하는 사람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김용자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는 "유행과 개성을 추구하고 소유보다는 사용을 중시하는 계층이 새로운 구매 주체로 부상하면서 렌털 소비가 주목받고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이들의 소비를 '작은 사치'라고 부르기도 한다.

트렌드 예측 전문가인 미국의 페이스 팝콘은 '작은 사치'를 향후 10년 동안 지속될 트렌드 중 하나로 지목하기도 했다.

○VIP마케팅 음지에서 양지로

백화점을 비롯해 외식 의류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VIP마케팅이 확산되고 있는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부(富)에 대한 인식이 바뀌면서 음성적으로 행해지던 VIP마케팅이 이제 양지로 부상했다는 얘기다.

400만원이 넘는 어린이용 가구세트를 백화점 한복판에 진열하고 PS(personal shopper)룸과 같은 특정 계층만을 위한 쇼핑 공간을 백화점마다 설치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비쌀수록 잘 팔린다는 '베블런 효과'가 그대로 재연되면서 명품업체 관계자들 사이에선 "숫자 '0'을 하나 더 붙이면 매출도 한자릿수 더 늘어난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에 대해 일부에선 사회적 兩極化를 조장,공동체의 結束을 해친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혹은 지나치게 물질만을 중시함으로써 교양이나 문화 등 정신적 가치를 소홀히 하게 되고 결국 인간과 사회를 병들게 할 것이라는 비난도 만만치 않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명품 브랜드에 대한 소비 자체를 제재할 방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국내 서비스 산업을 적극적으로 육성,고소득층이 해외에서 돈을 푸는 일이 없도록 하는 게 현실적인 대안이란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 Pre-order : 신상품 나오기전에 미리 주문 ]

◆ 0.1%, 그들만의 리그

중견 건설업체 사장의 부인인 A씨는 '명품 마니아'다.

루이비통 등 어지간한 명품 브랜드들을 모두 섭렵한 그녀의 관심사는 '남들이 사지 않는 명품'을 구하는 일이다.

매스티지(Masstige·대중적 명품)가 등장하는 등 명품이 대중화되면서 전체 구성원의 0.1%에 해당하는 고소득층들은 색다른 명품 소비로 다른 사람과의 차별화를 꾀하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프리 오더(free order)'와 '스페셜 오더(special order)'다.

'프리 오더'란 말 그대로 신상품이 나오기 전에 미리 주문하는 것으로 PS룸과 같은 VIP 전용 쇼핑 공간에서 새로 나온 상품의 샘플을 보고 원하면 예약을 하는 시스템이다.

남성복 '제냐' 등 명품 중의 명품으로 평가받는 브랜드들이 주로 이 같은 방식을 통해 브랜드 가치를 높이고 있다.

김경식 갤러리아 명품관 마케팅팀장은 "일부 브랜드의 경우 이탈리아 프랑스 등 현지 본사의 마스터 테일러(수석 재단사)가 직접 한국에 와서 상품 설명 및 재단까지 해준다"며 "명품 마니아들에게 일반인들은 보지도 못할 상품을 미리 맛볼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줌으로써 고객 관리에도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스페셜 오더' 역시 0.1%에 속한 사람들만의 특이한 소비 형태다.

한 명품업체 관계자는 "TV 등을 통해 국제 패션쇼를 본 고객들 중에서 모델이 입고 나온 물건을 주문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행사를 위해 단 한 벌만 제작된 것이라 가격이 엄청나고 배송 시간도 길지만 기꺼이 사곤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