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 타자' 이승엽 선수가 일본 프로야구에서 홈런포를 가동하고,한국 드라마가 일본에서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지만 재일 한국인들이 일본에서 겪는 어려움은 예나 지금이나 별반 다르지 않다.

역경을 뚫고 일어선 재일 한국인의 성공 스토리는 가뭄의 단비처럼 이들의 상처를 어루만져준다.

○M&A를 통해 성장한 '인터넷의 지배자'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49).일본인으로 귀화하면서도 '손'이란 성씨를 버리지 않고 '손 마사요시'로 이름을 지었다.

손 사장의 닉네임은 '인터넷의 지배자(Master of the Internet)' '21세기 사이버 시대의 승부사' 등 다양하다.

세계 최대 인터넷 재벌을 일군 그에 대한 찬사다.

소프트뱅크 그룹의 인터넷 매체들을 통하지 않고는 인터넷 세계에 발을 들여놓을 수 없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다.

손 사장은 한때 일본에서 '이단자'취급을 받았다.

과감한 인수·합병(M&A)을 통해 성장한 그를 일본의 기업문화로선 받아들이기 싫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젠 경원시할 수 없을 정도의 거물이 돼 버렸다.

그래서일까.

지금은 '일본경제를 구할 영웅'으로까지 묘사되고 있다.

일본에서 존경받는 기업인 중 한 사람인 이나모리 가즈오 교세라 회장은 그를 '21세기형 비즈니스 리더'라고 칭송하고 있다.

벤처기업 라이브도아의 호리에 회장이 몰락하면서 거품만 잔뜩 낀 벤처,신흥재벌의 문제를 지적하는 일본이지만 손정의를 폄하하는 분위기는 찾아볼 수 없다.

○탄광 노동자의 손자

1957년생인 손정의는 일제시대 대구에서 규슈로 건너온 탄광 노동자의 손자로 태어났다.

다행히 부친이 음식점 사업에 성공해 유복한 가정에서 자랄 수 있었다.

그러나 '조센징'이란 멸시는 피할 수 없었다.

그의 성격이 공격적으로 바뀌어갔다.

그는 유별나게 '1등'에 집착하며 열등감을 극복하려 했다.

공부면 공부,운동이면 운동,꼭 이겨야 직성이 풀렸다.

'손정의 신화'에는 빠지지 않는 예화가 있다.

한 달 만에 고등학교를 졸업했다는 이력이다.

일본도 아닌 미국 고등학교에서다.

그는 다니던 학교를 중퇴하고 17세였던 1974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어학연수를 통해 경험한 미국의 인상이 워낙 강렬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 아는 내용의 교과서에 잠시 실망했던 그는 교장을 설득하면서까지 월반을 거듭해 한 달 만에 졸업자격 검정시험을 통과하는 배짱을 보였다.

거침 없고 당돌한 그의 성격에 미국은 자기 집 앞마당이나 다름없었다.

자유롭게 생각하는 법을 배웠고 사업가로서의 자질을 닦았다.

○ "20대에 깃발을 올리고…."

대학은 명문 버클리대를 졸업했다.

공부만 한 게 아니라 사업에 큰 관심을 쏟았다.

발명 아이디어를 내고 이를 사업화하는 노력을 기울였다.

그는 일본어 키보드를 누르면 영어 발음이 나오는 전자음성 번역기를 개발,샤프사에 1억엔에 팔았다.

그는 19세에 벌써 "20대에 깃발을 올리고 30대에 1000억엔의 군자금을 마련한다.

40대에 승부를 벌여 50대에 완성하고 60대에 후계자에게 넘긴다"는 유명한 인생 50년 계획을 세웠다고 한다.

1981년 손 사장은 드디어 자신의 사업을 개시했다.

일본소프트뱅크를 설립한 것이다.

회사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소프트웨어 유통시장에 주목했다.

당시 일본에선 전자오락과 개인용 컴퓨터 열풍이 불어 사업이 날로 번창했다.

이어 설립한 컴퓨터 관련 잡지도 대히트를 쳤다.

1994년에는 염원이던 주식시장 상장을 이뤄냈다.

95년엔 컴덱스의 셀던 아델슨 회장과 담판을 지어 컴덱스를 인수했다.

같은 해 세계 최대 컴퓨터 관련 출판사인 미국 지프데이비스를 인수했다.

소프트뱅크 상장 이후 불과 2년 사이에 약 5000억엔을 조달해 이를 M&A에 쏟아부은 것이다.

이후 야후를 매입하면서 IT분야에서 유통과 네트워크,테크놀로지,전시회,인터넷,미디어 등 6대 인프라를 장악했다.

최근에는 일본 3위 이동통신회사인 보다폰재팬을 인수,통신업에까지 진출하는 과감성을 보이고 있다.

손 사장은 "내가 가진 것이라고는 꿈과 무한한 자신감 뿐이다.

그리고 거기서 모든 것이 시작됐다"고 말했다.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같은 인간인 내가 못할 리 없다"는 것이 그의 성공을 일궈낸 가장 큰 자산이었다.

장규호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danielc@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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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률이 70% 돼야 싸움을 벌인다 ]

손정의 소프트뱅크 사장의 경영철학은 '신(新)손자병법'이란 말로 대변된다.

손자병법에 빗대 자신만의 전략적 원칙을 체계화했다.

예를 들어 △일류가 안될 사업은 아예 손대지 않는다 △공격과 수비의 균형을 맞추면서 시스템으로 승부한다 △전체를 조망하며 전략을 세우고 70% 승률이 예상될 때 싸움을 벌인다 등이다.

'혁명가'를 자처하는 그이지만 '70% 승률론'에선 현실적인 사업감각이 돋보인다.

실패 확률이 30%를 넘어보이는 사업은 건드리지 않는다는 얘기다.

또 하나 숫자로 표현된 그의 경영철학은 '1000개 체크'로 집약된다.

회사 경영 상황을 살펴볼 때 1000개 지표를 하나씩 따져본다는 것이다.

실제로 컴덱스를 인수할 당시,그는 인수 타당성을 시뮬레이션으로 평가한 2만장 분량의 보고서를 철저히 점검했다고 한다.

소프트뱅크와 손정의 사장은 M&A로 성장한 만큼 그의 협상술도 세인들의 입에 오르내리고 있다.

컴덱스를 인수할 때는 미리 8억5000만달러라는 인수액 상한선을 그어두었다.

그리고는 아델슨 컴덱스 회장에게 "받고 싶은 가격을 딱 한번만 말해보라"고 했다.

아델슨은 잠시 고민한 뒤 "8억달러 주시오"라고 했고 손정의는 바로 협상 성립을 선언했다.

몇 푼 아끼는 것보다 확실히 인수할 기업은 인수해야 한다는 철학에서 더 이상의 흥정은 그에게 필요없었던 것이다.

'강한 것에는 거스르지 않는다'는 것도 그의 지론 중 하나다.

야후를 매입할 때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과 스콧 맥닐리 썬마이크로시스템즈 회장 등에게 이메일을 보내 반대 여부를 물어봤다는 유명한 일화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