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식시장에서 2~3년 전부터 '이상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기업들이 높은 수익을 내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기업의 자기자본이익률(ROE)은 줄어들고 있는 것.

통상적으로 기업의 이익이 늘어나면 ROE가 높아져야 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주식시장에서는 수익의 증가속도보다 자기자본의 증가속도가 빠르다 보니 오히려 ROE가 낮아지는 기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ROE를 계산할 때 기업수익이 분자이고 자기자본이 분모이기 때문에,분모의 증가율이 분자의 증가율보다 더 크다면 수익 증가에도 불구하고 ROE가 떨어진다.

'수익이 늘어나고 자기자본도 덩달아 증가하면 더욱 좋은 게 아니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그러나 투자자 입장에서 바람직한 현상으로만 볼 수가 없다.

기업수익금뿐만 아니라 빚을 낸 돈까지 합쳐 투자해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는 것이 기업가치를 끌어올리는 길이다.

하지만 국내기업들은 자기 돈과 남의 돈을 끌어다 '새로운 가치창출'을 하기는커녕 자기 돈조차 금고에 쌓아두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일하지 않는 자기자본'이 점차 늘어나고 있다.

기업들의 고민도 바로 여기에 있다.

○돈은 버는데 이익률은 떨어지다니…

우리나라의 대표기업으로 볼 수 있는 삼성전자의 ROE는 얼마나 될까.

2004년 삼성전자는 10조7867억원의 순이익을 벌어들였다.

ROE는 33.8%였다.

삼성전자의 자기자본 100억원당 33억8000만원의 수익을 거뒀다는 얘기다.

세계적 IT기업인 IBM의 ROE는 24.68%,인텔은 23.18%였다.

삼성전자의 수익성이 세계적인 수준임을 알 수 있다.

삼성전자의 ROE는 지난해 20.2%로 감소했다.

IT경기 불황으로 순이익이 8조598억원으로 줄면서 어쩔 수 없는 현상이었다.

문제는 그 이후부터다.

대부분 증권사들의 삼성전자 수익 전망을 분석해보면 삼성전자는 내년 순이익이 11조941억원으로 2004년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ROE는 늘지 않고 지난해 수준인 20.2%에 그대로 머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현대자동차는 더 심각하다.

2003년 1조7000억원의 순이익을 벌었고 ROE는 15.2%였다.

하지만 이듬해에는 1조8000억원을 벌었음에도 불구하고 ROE는 13.6%로 오히려 감소했다.

현대차의 ROE는 계속 감소해 2007년에는 13%대 초반까지 밀려날 것이라는 게 증권업계의 분석이다.

한화증권이 주요 상장사 99곳을 분석한 결과 평균 순이익이 지난해 3882억원에서 올해는 4293억원,내년은 4778억원으로 매년 10% 이상씩 늘어날 것으로 전망됐다.

하지만 같은 기간 15.3%였던 ROE 평균치는 14.8%,14.6%로 점차 하락할 것으로 예상됐다.

○기업들이 투자를 꺼린다

외환위기와 내수침체를 겪으면서 우리나라 기업들은 재무구조 개선에 나섰고 자기자본을 키우는 데에만 열중했다.

정부도 직접 나서 부채비율을 큰 폭으로 낮출 것을 요구했다.

하지만 지금은 사업성과가 좋아졌다.

넘치는 돈을 걱정해야 할 처지가 됐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말 자기자본이 전년 대비 5조2000억원,포스코는 3조4000억원 증가했다.

한국전력도 2조원이 늘었다.

기업의 자기자본이 늘어나면 통상적으로 부채도 비슷하게 늘어나게 된다.

그러나 우리나라 기업들은 자기자본의 증가속도에 비하면 부채는 거의 늘어나지 않거나 오히려 줄어들고 있다.

기업들이 신규 투자를 꺼리다 보니 기업자산도 크게 늘지 않고,매출도 큰 폭으로 증가하지 않고 있다.

기업들의 ROE 하락은 일종의 경고 사인이다.

국내 기업들이 글로벌 기업으로 커가려면 강력한 성장 엔진이 필요하다.

새로운 수익모델을 개발하거나 대규모 설비투자를 통해 경쟁력을 키워나가야 한다.

그러나 수조원의 자금이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한 채 금고 속에 잠들어 있다.

투자하고 싶어도 자금난 때문에 투자를 못했던 과거에 비하면 행복한 고민이다.

그러나 돈이 있어도 투자할 곳을 찾지 못하거나 투자의욕을 상실했다면 그것은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

우리 경제의 성장잠재력이 상실되기 때문이다.

○지나친 현금보유는 문제 초래할 수도

ROE 하락은 주가에도 부정적이다.

한국 증시의 매력은 외국에 비해 ROE가 높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기업들의 저성장이 고착화되면 우리나라 대표기업들의 ROE는 외국 경쟁사와 비슷한 수준까지 내려가게 된다.

기업들의 지나친 현금보유는 외국계 주주들의 고배당 요구를 부추길 수 있다.

투자되지 못한 자금이 기업 내부에 쌓이다 보니 주주들은 배당금을 늘려달라고 요구한다.

잉여자금을 주주에게 나눠주는 것은 좋지만,나중에 대규모 설비투자가 필요할 때 문제가 된다.

주주들은 일정 수준까지 높아진 배당금 기대 수준을 다시 낮추는 것을 용납하지 않을 수 있다.

국내 상당수 기업들의 외국계 지분율이 절반을 넘어선다는 점을 감안하면 국부유출 논란도 제기될 수 있다.

외국계 펀드들이 국내 기업에 눈독을 들이는 것도 회사안에 돈이 쌓여 있기 때문이다.

아직도 국내에는 자산가치조차 주가에 제대로 반영되지 못한 기업들이 수두룩하다.

외국계 펀드가 경영권을 확보할 경우 보유자산 매각이나 배당금 지급으로 회사 내에 쌓인 돈을 가져갈 수도 있다.

고경봉 한국경제신문 증권부 기자 kgb@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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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ROE : 자기 자본으로 얼마나 이익 냈나 ]

기업의 가치는 재무구조가 얼마나 튼튼한지(안정성),이익은 얼마나 내는지(수익성),앞으로 성장할 가능성은 충분한지(성장성) 등을 따져 판단하게 된다.

매출과 영업이익,부채비율,ROE(자기자본이익률),PER(주가수익비율),PBR(주가순자산비율),EPS(주당순이익) 등이 자주 쓰이는 지표들이다.

이 중 수익성과 성장성을 나타내주는 대표적인 투자지표가 ROE다.

순이익을 자기자본으로 나눈 값으로 '빚을 제외한 자기 돈으로 얼마나 많은 이익을 냈는가'를 나타낸다.

주식회사의 자기자본은 주주들의 몫이기 때문에 ROE가 높은 기업들은 주주에게 많은 이익을 안겨줄 수 있다.

통상적으로 동일한 자산(자기자본+부채)규모를 갖고 있는 기업의 경우 자기자본 비중이 적은 기업의 ROE가 높다.

예컨대 자기자본만으로 자산 100억원을 마련해 연간 100억원의 이익을 낸다면 ROE는 100%(100억/100억×100)지만,자기자본 20억원에다 80억원을 은행에서 차입해 100억원의 자산을 마련,100억원의 이익을 낸다면 ROE는 500%(100억/20억×100)로 높아진다.

부채 80억원에 대한 이자로 연간 8억원을 지급하더라도 ROE(92억/20억×100)는 460%가 된다.

기업의 재무구조를 취약하게 만드는 차입경영은 문제가 있지만,부채를 적절하게 활용하는 것은 기업으로서 바람직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