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속의 시대' 인간관계는 어떻게 변할까

온갖 종류의 관계가 우리 생활의 한가운데로 온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데카르트의 명제는 '나는 접속한다.

그러므로 존재한다'라는 새로운 명제로 바뀌었다.


인터넷 통신을 통해 알게 된 남녀가 서로의 실연의 상처를 보듬는 과정에서 사랑을 느끼게 된다는 영화 『접속』은 한때 많은 사람들에게 채팅에 대한 로망을 심어주었다.

현실 공간이 아닌 사이버 공간에서,실명이 아닌 ID로 접속해 서로의 삶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은 일상적인 삶에서 탈출을 꿈꾸는 사람들에게는 멋진 신세계를 본 것 같은 환상을 심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을 것이다.

영화의 모티브로 사용되어도 낯설지 않을 만큼 인터넷은 우리의 일상이 되었고,이러한 일상이 우리의 삶에 많은 변화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제러미 리프킨의 『소유의 종말』은 컴퓨터 통신망이 발달하면서 현대 자본주의 사회가 어떻게 변화될 것이며,그에 따른 문제점과 우리의 대안은 무엇인가에 대해 냉철하면서도 유쾌하게 보여주고 있는 책이다.

이제 <접속>은 사회 생활에서 가장 자주 쓰이는 단어의 하나가 되었다.

사람들은 접속이란 말을 들으면 가능성과 기회로 가득 찬 완전히 새로운 세계로 들어가는 구멍을 연상한다.

접속은 전진과 개인의 자아 실현을 약속하는 입장권이 되었고 몇 세대 전의 민주주의라는 말처럼 막강한 힘을 발휘하게 되었다.

그것은 울림이 큰 말,정치적으로 대단히 의미심장한 말이 되었다.

접속은 결국 구별과 분리의 문제다.

들어가는 사람과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의 문제다.

접속은 우리의 경제관과 세계관을 재고할 수 있는 막강한 개념적 도구가 되었다.

다가올 시대의 성격을 예고하는 가장 강력한 메타포가 되었다.

제러미 리프킨이 무엇보다 먼저 문제 제기하는 것은 이제 우리 사회는 '소유'가 아닌 '접속'의 시대로 변하였다는 점이다.

지리 공간에 바탕을 둔 근대 사회에서 우리의 기반이 된 삶의 형식은 '소유'였다.

그러나 상업의 구조가 재편되고 있는 현대 사회에서는 사이버 공간이 교역의 중심이며,전자 네트워크를 기반으로 하는 '연결성'이 성공의 관건으로 등장하였다.

따라서 현대 사회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삶의 양식은 '접속'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접속의 시대에서 기업의 성공은 '물건의 양'이 아니라 '고객과 장기적 유대 관계를 맺을 수 있느냐 없느냐'라고 지적한다.

즉 접속의 시대에서는 '소유'가 아닌 지속적인 '관계'의 '접속'이 성공의 핵심이 되는 것이다.

물론 그러한 현상은 인간 관계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올 것이다.

접속의 시대는 한마디로 모든 인간 경험의 상품화가 가속화되는 시대다.

온갖 유형의 사업 네트워크가 인간 생활을 거미줄처럼 사방에서 에워싸서 살아 있는 경험의 모든 순간은 상품으로 자리매김된다.

소유 중심의 자본주의 시대에는 물건을 사고 파는 것이 우선이었다.

그러나 사이버스페이스 경제에서는 물건과 서비스의 상품화보다 훨씬 중요한 것이 인간 관계의 상품화다.

빠른 속도로 정신 없이 변하는 네트워크 경제에서 고객의 관심을 묶어둔다는 것은 그들의 시간을 최대한 통제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았던 불연속적 시장 거래로부터 시간 위에 무한히 펼쳐진 관계를 상품화하는 방향으로 새로운 상업 활동의 중심축이 이동하면서,우리의 일상 생활은 점점 이해 득실과 타산의 노예가 된다.

변호사,의사와 같은 직업군이 이전 사회에서 대체로 인기 있는 직종일 수 있었던 것은 라이선스 때문이었다.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이든 변호사라는 자격증은 그 사람의 사회적 신분을 보장해 주는 안전 장치 같은 것이었다.

그러나 '접속'의 사회에서 라이선스는 더 이상 안전 장치일 수 없다.

변호사라는 자격증이 있어도 의뢰인들과 '접속'할 수 있는 다양한 의사 소통의 코드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그는 의뢰인들로부터 사건을 따내지 못하게 될 것이다.

따라서 그가 변호사로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풍부한 법률적 지식뿐만 아니라 그의 일상적인 삶 자체를 거래의 품목으로 내놓을 수 있어야 한다.

지속적인 '관계 맺기'가 성공의 주요 포인트가 되면서 그의 일상은 더 이상 단순한 일상이 아니다.

그가 맺는 인간 관계는 관계 그 자체로서 거래적 관계에 놓이게 된다는 것이 제러미 리프킨의 생각이다.

스미스가 생각하는 세계에서는 남을 배제하고 어떻게 해서든 재산을 끌어모아 가진 사람이 시장에서 승리하게 된다.

그러나 네트워크 경제에서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자기 이익을 추구한다.

집단의 힘을 이상적으로 발휘할 수 있도록 마련된,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상호 관계의 네트워크 안에 자기 회사를 단단히 박아두어야만 각 기업은 그만큼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아진다.

업계에서 말하는 윈윈(win-win) 전략이다.

…네트워크 환경에서 개인적 공간은 사회적 공간으로 바뀐다.

함께 일하면서 끊임없이 정보,지식,식견을 공유해야 하는 프로젝트팀에는 얼굴을 맞대고 대화할 수 있는 확 트인 공간이 있어야 한다.

새로운 사무 환경에서는 공간을 개인적으로 소유하면 타인을 배제하는,무조건 소유하고 보겠다는 발상은 금물이다.

접속의 시대에는 동료에게 거리낌없이 바로 다가갈 수 있는 구조가 중요하다.

인터넷을 일상적인 삶의 양식으로 받아들이는 닷컴 세대는 이전의 세대보다 개인적인 삶의 양식을 중시할 것 같지만 '접속'과 자신의 삶을 분리할 수 없는 시대적 상황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오히려 구성원과의 상호 의존성을 더 중시하게 된다.

'접속'하지 못한다는 것은 곧 '고립'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에 타인과 접속 코드를 찾고자 애쓰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관계 맺기는 자칫 상호 관계의 그물망에 포함돼 주체로서의 삶을 상실할 수도 있다.

경쟁이 아닌 협조와 합의가 중요해질수록 진정한 주체로서가 아닌 고립을 두려워하는 사이비 주체,'변신'이 아닌 '복제'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제러미 리프킨은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으로 '문화'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새로운 상업 네트워크는 새로운 문화 네트워크와,새로운 가상 체험은 새로운 실생활 체험과,새로운 상업적 오락은 새로운 문화적 의식(儀式)과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인간 활동과 관계를 조직하는 상호 보완적이면서도 자주 갈등을 일으키는 두 방식 사이에서 중간 지점을 찾아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문화 영역과 상업 영역에 똑같은 시간과 관심을 배분하려는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문화를 소생시켜야 하는 까닭은 그것이 문화를 생산하는 데 원료가 되기 때문이어서만도 아니고 시장이 제대로 기능하는 데 반드시 필요한 사회적 신뢰와 공감을 문화가 만들어내기 때문만도 아니다.

문화는 다른 이유를 모두 접어두고서라도 그 자체가 중요하기 때문에 소생되어야 한다.

인간의 가치를 낳는 유일한 원천이 문화이기 때문이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 문화는 상업화를 위한 재료 공급원으로 전락했다.

개개인의 삶이 그 삶 자체로서 존중받지 못하고 하나의 거래 대상이 되는 것이 문화의 상업화 때문일 것이다.

따라서 인간 삶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문화를 소생시키는 것이 곧 서로의 삶에 대한 존중이며,자유로운 주체로서 인간의 삶을 회복시킬 수 있는 대안이 될 수 있다.

어떤 문제에 봉착했을 때,노예적인 삶의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은 힘 없는 주인과 주변적 상황을 탓하지만 주인의 삶의 태도를 갖고 있는 사람은 스스로 주변적 상황을 변화시킨다.

어떤 변화든 변화는 문제를 야기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문제를 변화의 지속으로 삼을 것인지,변화의 한계로 삼을 것인지는 노예적인 삶의 태도를 취할 것인가,아니면 주인의 삶의 태도를 취할 것인가에 대한 각자의 선택에 달려 있을 것이다.

박미서(초암논술아카데미 논술강사) dolpul@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