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경제는 개혁이 필요하다.그러나 이제 누가 개혁을 추진할 수 있을까?'

CPE 사태가 정부의 백기투항으로 일단락되면서 프랑스 사회가 이 같은 의문에 빠졌다.

고용 안정이라는 '프랑스적 가치'는 지켜졌지만 고질적인 실업난 해소 방안은 여전히 막막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경제주간지 비즈니스위크는 이와 관련,"CPE 사태의 최대 패배자는 프랑스 경제"라고 꼬집었다.

실업난 해소를 위해서는 분명 노동시장 개혁이 필요하지만 이제 어떤 정치인도 내년 대선 전까지는 개혁을 입에 담지 않을 것이며,아마 그 이후에도 마찬가지일 것이라고 잡지는 내다봤다.

CPE를 밀어붙이다 역풍을 맞은 도미니크 드 빌팽 총리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정치인들이 몸을 사릴 것이란 얘기다.

프랑스 경제 일간지 라 트리뷴도 비슷한 논조로 "개혁의 희망이 사장됐다"고 보도했다.

해고와 같이 민감한 사안을 포함한 노동개혁의 경우 사회 전체적으로 '이대로 가면 안 된다'는 공감대가 확산돼야만 가능하다는 분석도 있다.

프랑스의 노동개혁이 좌절한 데에는 경제 전반의 위기가 무르익지 않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한때 유럽 최고의 복지수준을 자랑했던 영국이 신자유주의 개혁을 거치며 '유럽에서 가장 유연한 노동시장'으로 바뀐 것도 영국이 직면한 위기 때문이었다.

영국은 대처 전 총리가 집권하기 이전까지만 해도 고실업과 저성장의 '영국병'을 앓고 있었다.

1970년대 말에는 국제통화기금(IMF)에서 긴급 자금을 빌려다 쓰는 외환위기에 빠졌고 노동자 대파업에 휘둘려 공공부문까지 마비되는 경제적 혼란을 겪어야 했다.

1980년대 보수당 마거릿 대처 정부의 강력한 노동시장 개혁은 이 같은 위기를 거친 뒤에 가능했다.

우리나라도 사정은 비슷했다.

정리해고 등을 골자로 한 노동법 개정은 날치기 통과 논란 끝에 1997년 초 좌절됐으나 그 해 말 외환위기를 거친 뒤에야 노동법을 개정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