탁신 치나왓 태국 총리가 지난 4일 전격 사퇴 의사를 발표했다.

탁신 총리의 사임 발표는 그가 정치적 승부수로 던졌던 조기 총선에서 승리를 선언한 지 하루도 채 지나지 않아 나왔다.

그가 이끄는 집권당 타이락타이(TRT)당이 총선에서 유효표의 과반수를 득표했지만,예상을 뛰어넘는 수많은 기권표가 속출하자 민중들에게 백기를 든 것이다.

○탁신 왜 사임했나

탁신 총리가 사임하게 된 직접적 원인은 이번 선거에서 탁신 총리에 대한 민심 이반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탁신 총리는 경제 실정으로 이미 오래 전부터 태국 국민들에게 외면받기 시작했다.

게다가 올해 초 자신이 소유한 대기업 '친코퍼레이션' 지분을 편법으로 외국에 팔아 19억달러를 챙기고도 단 한 푼의 세금을 내지 않자 민심은 분노했다.

지난해 여름에는 측근이 수뢰 혐의로 구속되는 등 정권이 부정부패에 연루되기도 했다.

또 야당 정치인과 비판 언론에 대해 소송을 남발하는 등 독선적인 정치 행태를 보인 것도 그가 인기를 잃은 주요 원인이다.

지난해 태국의 무역수지는 아시아 외환위기(1997년) 이후 최대 적자로 돌아섰다.

물가도 최근 7년 중 가장 높은 상승률을 보였다.

탁신 정부는 국제 유가 급등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등 경제 정책을 잘못 폈고,2004년 말에는 지진해일과 가뭄 등으로 관광 산업과 농업마저 크게 위축됐다.

탁신 총리는 취임 후 빈곤층의 소득과 복지 증진을 위주로 한 정책을 펴왔지만 경제가 나빠지면서 중산층마저 등을 돌리고 총리 퇴진 운동에 가세했다.

○거셌던 반(反) 탁신 운동

탁신 총리의 도덕성 시비 문제로 올해 초부터 태국은 시위로 물들었다.

수도인 방콕을 비롯한 태국 전역에서 탁신 총리의 사임을 요구하는 시위가 벌어졌다.

언론인 손티 림통쿤이 주도하는 시위대는 "탁신이 퇴진할 때까지 계속해서 시위를 벌일 것"이라고 말해왔다.

반(反) 탁신 세력에는 청백리로 유명한 잠롱 스리무앙 전 방콕 시장까지 가세했다.

이에 탁신 총리는 지난 2월 의회를 전격 해산하고 조기 총선이라는 정치적 승부수를 던졌다.

그러나 민주당 찻타이 마하촌 등 타이 3대 야당은 총선을 거부하면서 탁신 총리의 사임을 압박했다.

시민단체 연대모임인 '국민민주주의연대'도 대규모 집회와 시위를 조직하며 탁신 총리를 궁지에 몰아넣었다.

이들은 총선 뒤에도 탁신 총리의 '국가화해위원회' 구성 제안을 일축하는 등 공세를 멈추지 않았다.

결국 탁신 총리는 더 이상 '피플 파워'에 저항하지 못하고 퇴임 의사를 밝혔다.

○영향력 유지 여부에 관심

그러나 탁신 총리는 총리직을 내놔도 실질적인 정치적 영향력은 잃지 않고 정국을 계속 주도해 나가려는 의도를 보이고 있다.

탁신 총리는 집권 타이락타이당에 대한 장악력이 확실하기 때문이다.

탁신 총리는 새 후계자 구도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태국 언론은 현재 가장 유력한 차기 총리 후보로 솜킷 자투스리피탁 부총리 겸 상무장관과 하원의장을 지낸 포킨 파나쿤 부총리를 꼽고 있다.

솜킷 부총리는 경제 전문가로 탁신 경제 정책의 기본틀을 짠 주인공이기도 하다.

경제계로부터 호평을 받고 있다.

그러나 타이락타이당의 간판을 지키기 위해서는 포킨이 더욱 적합하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일각에서는 정계의 이합집산이 잦았던 태국의 전례로 볼 때 탁신이 예상 외로 정치력을 급속히 상실하고 정계가 요동칠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한편 탁신은 앞으로 30일 내에 새 의회가 구성돼 새 총리가 선출될 때까지 과도정부 총리직을 수행할 예정이다.

전체 400개 지역구 중 선거법상 20% 이상의 득표율을 얻지 못해 당선자를 내지 못한 38개 선거구에서는 과도정부 주도 아래 재선거를 치를 예정인데,이 과정에서 또 다른 혼란이 발생할 수도 있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