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부크홀츠는 현대 사회가 예측 불가능한 사회라는 점에 동의한다.

이전의 사회가 현상에 대한 분석을 통해 미래를 예측할 수 있는 사회였던 데 반해 현대 사회는 자신의 삶이 5년 후 혹은 10년 후 어떻게 변해 있을 것인지 예측하기가 불가능할 만큼 복잡하고 미묘한 변수들이 강하게 작용하고 있는 사회라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예측 불가능성의 시대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확실성을 어떻게 추구하느냐'는 것이 아니라 '불확실성을 어떻게 다루어 나갈 것인가' 하는 점이다.

따라서 경제학의 특성과 현대 사회의 특성이 일정 부분 맞아떨어지는 부분이 있음을 그는 놓치지 않는다.


경제학이 어려운 이유는 어디에 있을까? 경제학자들은 생물학자들처럼 대조군을 설정,관찰하면서 과학적 실험을 할 수가 없다.

물론 자연과학 분야가 대조군을 가질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경제학자들이 가정 주부들의 무작위 표본을 만들 수 없듯이 천문학자들 역시 달과 별을 떼어 실험실에 가두고 연구할 수는 없다.

그러나 적어도 행성들은 소비자들만큼 변덕을 부리진 않는다.

천문학자들은 핼리혜성이 언제쯤 지구에 접근할지에 대한 정확한 예측 기록을 자랑한다.

경제학자들은 언제쯤 국민 저축률이 향상될지에 대한 형편없는 예측 기록을 부끄러워한다.

경제학은 정확한 법칙에 의해 지배되는 과학이 아니다.

차라리 일반적 성향이라 할 수 있을까.

모든 '법칙'에 예외가 따르는 학문이 바로 경제학이다.


토드 부크홀츠에게 경제학은 인간의 삶에 가치를 부여하는 학문이 아니다.

선택의 학문일 뿐이다.

유한한 재화에 대한 끊임없는 선택의 상황에서 경제학자는 어떤 재화를 선택하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이 모든 것을 한꺼번에 가질 수는 없다는 것을 알려줄 뿐이다.' 더구나 소비자들은 예측이 불가능할 만큼 변덕스럽기 때문에 이후의 경제 상황을 예측하기란 애초부터 불가능하다.

따라서 경제학을 통해 무엇을 선택하면 어떤 성공적인 결과가 나올 것인가를 배우는 것이 아니라 예측 불가능한 상황들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에 대한 힌트를 얻어야 한다.

그래서 그는 맬서스에 대한 비판을 통해 '빨간 사인펜으로 밑줄을 긋고 동그라미 치고 물음표를 달아서 불확실함을 표시해 주지 않는 한,절대로 과거의 자료에 근거해서 미래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말 것'을 경고하기도 한다.

또한 모든 사회 구성원들을 만족시키는 경제 정책은 있을 수 없다는 주장도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아무리 훌륭한 경제 정책이라 해도 그 피해자는 있게 마련이다.

자유 무역은 국내의 일부 생산자들에게 타격을 입힌다.

저인플레는 채무자들에게 피해를 준다.

저금리는 채권 매입자들을 해친다.

과학 기술의 발달은 일부 노동자를 실업자로 전락시킨다.

공해세(公害稅)는 사업가들을 울상 짓게 만든다.

국회의원 전원이 평생을 소비해도 이들의 하소연을 다 듣지는 못할 것이다.

피해자가 나온다고 해서 좋은 경제 정책을 포기해선 안 된다.

이들의 압력에 굴복하면 경제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좋은 경제 정책이란 수혜자가 피해자보다 많은 정책이다.

천둥이로부터 빼앗아 돌쇠에게 주는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사회 전체의 부(富)가 늘어나는 게임이다.

즉 좋은 경제 정책은 피해자가 발생한다 하더라도 사회 전체가 누리는 혜택이 증가하는 정책이라 정의 내릴 수 있다.


비록 누군가 피해를 본다고 하더라도 사회 전체의 이익이 증가한다면 그것은 좋은 경제 정책이라는 견해만으로 본다면 토드 부크홀츠는 공리주의적 경제관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를 읽는 재미는 그의 경제관 따라잡기에 있지 않다.

경제학 혹은 경제 사상에 대한 그의 유머에 책 읽기의 재미가 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경제 현상에 대한 해박한 지식과 그것을 유쾌하게 풀어내는 입담이 경제 사상을 다루고 있으면서도 무겁지 않게 읽히는 가장 큰 이유이다.


한계 이론의 핵심은 점증적 움직임에 탐구의 초점을 맞추려는 집요한 추구에 있다.

몇 대의 자동차를 생산할지 기업은 어떻게 결정하나? 한 대 더 생산함으로써 얻는 수입과 그 한 대를 더 생산하는 데 드는 비용이 같아질 때까지 생산을 계속한다.

한계 이론은 경제학뿐 아니라 우리 생활 곳곳에 적용될 수 있다.

어떤 학생들은 시험 전날 밤을 새워 공부한다.

자정이 되었을 때 잠시 책을 덮고 생각해 보자.한 시간 더 공부함에 따라 겪는 시험 당일의 피곤함,두통 등 체력적 손해가 그 공부에서 얻는 지식의 혜택을 초과할 경우 책장 사이를 헤매는 것보다 이불 사이에 들어가는 편이 낫다.


한계 이론은 경제 논리이기는 하나 우리의 일상 속에서 얼마든지 발견할 수 있는 현상이기도 하다.

이처럼 토드 부크홀츠는 일상적 삶에서 경제 원리를 끌어내 경제에 대한 낯섦을 해소해 준다.

반면 토드 부크홀츠는 정치와 경제의 엄격한 분리를 주장하기도 한다.

물론 경제 정책이라는 것이 기본적으로 경제 이론을 정책화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그것이 곧 경제 논리가 정치 논리에 적용된다거나 정치적인 논리로 경제를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경제와 정치는 그 이해의 틀을 달리하는 다른 차원의 문제인 것이다.


'정치적' 보이지 않는 손은 복잡한 세상에서는 작동되지 않는다.

민주주의는 정치판 자유경제 시장이 아니다.

경제학자들이 시장과 논리적으로 동일한 정치 체제를 고안해 낼 수는 없다.

노벨상을 수상한 미국의 경제학자 케네스 애로가 가르쳤듯이 선거에서 투표하는 것은 시장에서 물건을 고르는 것과 다르다.

투표할 때 유권자들은 전자레인지처럼 특정 상품을 고르는 것이 아니라 종합 선물세트를 일괄 구입하는 셈이다.

그 세트에는 유권자가 좋아할 물건도 있고 싫어할 물건도 있다.

유권자가 뽑은 후보가 반드시 유권자가 좋아할 정책만 시행하리란 보장은 없다.

유권자는 자신이 차지할 상품이 어떤 것인지 완전히 예측할 수는 없다.

민주주의는 슈퍼마켓과 제비 뽑기의 중간쯤 된다.


책 읽기의 괴로움은 지식 권력에서 생긴다.

똑같은 말이라도 좀 쉬운 말로 표현하면 좋으련만 소위 고전(古典)이라는 책들의 대부분은 똑같은 말이라도 어려운 말로 표현하여 우리를 고전(苦戰)하게 만든다.

물론 활자라는 것 자체가 권력적 속성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십분 감안한다고 하더라도 책 읽기의 괴로움은 쉽사리 해결되지 않는다.

특히 철학 과학 등 지식인 소유의 영역에 한 번의 왕따 없이 발을 디디기는 쉽지 않다.

토드 부크홀츠의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 있는 아이디어』는 고전(古典)이라고 하기에는 그 역사성이 빈약하다.

다만 애덤 스미스에서 리카도까지 300여년의 경제 사상사를 다룸으로써 내용적인 역사성을 채우고 있다는 점에서는 읽어 볼 만하다.

물론 그가 각각의 경제학자들에 대해 어떠한 평가를 내리고 있는가에 초점을 맞춘다면,자칫 편협한 경제관이라는 비판을 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그러나 경제학과 관련한 지식 권력적 담론들을 일상 속에 풀어내고 있다는 점은 나름의 평가를 받을 만하지 않을까 싶다.

박미서 (초암논술아카데미 논술강사) dolpul@empa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