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라서 문화와 관련된 논의는 사회적 현상을 분석하는 것임과 동시에 그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개별적인 삶의 형태에 대한 관심을 요구하는 것이기도 하다.
주어진 논제는 대중문화에 대한 성찰적 태도를 요구하고 있다.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고찰을 통해 우리 사회에 대한 비판과 우리 삶에 대한 비판을 동시에 요구하는 통합적인 사고력을 묻는 논제라고 할 수 있다.
대중문화에 대한 관심이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에 낯익은 소재라는 측면에서 쉬운 문제라고 생각할 수 있겠으나,자칫하면 상투적이고 피상적인 논의를 전개하는 우를 범할 수 있고 그렇기 때문에 더욱 폭넓은 사고력을 요구한다는 점에서 다소 어려운 문제일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논제에서 독해의 방향과 논의의 방향을 대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만큼 주어진 논제의 요구 사항을 충분히 지켜 나간다면 무난한 답안을 작성할 수 있을 것이다.
①[가] 지문은 대중문화에 대한 논의이다.
②먼저 [나] 지문에 제시된 중심 개념을 도출·정리한 후 ③이를 분석의 도구로 삼아 ④[가] 지문을 참조하여 ⑤[다] 지문의 '욘사마 현상'을 분석하시오.
①은 [가] 제시문의 핵심적인 소재를 이야기함으로써 이번 논제가 대중문화에 대한 논의라는 것을 전제해 준다.
②를 통해 제시문 [나]에서 중심 개념을 끌어내야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마도 논제를 해결하는 데 중요한 열쇠가 될 것이다.
③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제시문 [나]에서 도출한 개념을 자신의 주장을 전개하는 근거로 사용해야 한다는 요구 사항으로 이해할 수 있다.
④는 제시문 [가]가 이후 논의에 일정한 방향성을 제시해 줄 것이라는 힌트이며 ⑤는 이번 논제에서 자신의 주장을 밝혀야 할 핵심적인 내용이다.
논의의 방향성을 대략적으로 제시하고 있는 논제의 경우 자칫 그 구성이 정해져 있다는 측면에서 획일적인 답안을 작성하기 쉽다.
그러나 일정 부분 논지 전개 과정이 정해져 있는 논제의 경우 각자의 개성적인 사고력이 더욱 필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동일한 논지 전개에서 변별력을 갖게 되는 것은 풍부한 상상력과 논리적이고 통찰력 있는 사고 및 태도로 인해 가능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점을 염두에 두고 제시문의 내용을 분석해 보자.
제시문 [가]는 대중문화에 대한 옹호론과 비판론의 입장을 보여주고 있다.
대중문화 옹호론자의 입장은 '다수 대중들이 대중문화를 통해 민주적으로 문화를 함양하고 교양을 함양한다'는 것이다.
대중문화 이전 단계에서 문화는 지배 계급의 문화와 피지배 계급의 문화로 구분되어 문화의 계급성이 명확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대중문화는 누구나 문화 생산의 주체로 참여할 수 있으며,자유롭게 소비할 수 있다는 점에서 문화의 민주주의를 이루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과학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이해할 수 있을 텐데,이전의 사회에서 사진이라는 장르는 특별히 사진을 찍는 기술과 품질 좋은 카메라를 소유하고 있을 때 누릴 수 있는 문화적 장르였다.
그러나 지금은 누구나 디카와 카메라폰을 이용,렌즈를 통해 자신이 바라본 세상을 표현할 수 있으며 홈페이지나 싸이월드와 같은 사이버 공간을 활용하여 문화의 주체로 나서고 있다는 점을 떠올린다면 이들의 주장이 타당성이 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반면 대중문화 비판론자들은 대중문화는 자본가와 소수 엘리트 집단이 만들어 놓은 문화적 경향성과 취향이며 대중은 무비판적으로 그것을 수용하는 소비자에 불과하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문화산업가들은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하고 기존 질서를 유지하기 위하여 예술에 간섭하고 이를 자신의 의도에 맞게 변형'시키므로 '문화는 대량 생산된 상품처럼 다양성과 독창성을 상실하고,대중들은 이를 향유하면서 얻는 충족감을 통해 불만과 갈등을 해소하고 일상의 행복에 빠져든다'는 요지의 주장을 전개하고 있다.
최근 몇 년간 지속되고 있는 이효리 열풍의 경우에도 대중의 주체적인 판단이나 선택이라기보다는 문화산업가들(연예인,기획사,제작사,매스미디어,유통업체 등)이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하나의 사업적 아이템을 대량 생산하고 이를 대중이 소비하도록 지속적으로 교묘하게 강요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즉 이효리 열풍은 '섹시'라는 상품적 코드를 대량 생산하는 과정에서 나타나는 하나의 이미지에 불과한 것이다.
제시문 [나]는 대중문화를 하나의 신화로 이해하는 견해를 제시하고 있다.
직접 진술되지는 않았으나 롤랑 바르트는 프로레슬링,장난감,스트립쇼 등을 예로 들면서 현대 부르주아 사회에서 문화는 하나의 신화라고 하였다.
즉 '일정한 기호가 일차적 의미를 넘어 심리적,정서적,이데올로기적 의미를 얻게 되면 문화적 신화는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아버지의 권위를 상징하는 강한 남자의 표본 최민수의 이미지 역시 마찬가지이다.
사회의 중심적 가치가 흔들리고 사회가 불안정한 상황에서 개인의 삶을 지탱해 줄 강력한 대상이 필요할 때, 문화산업가들은 대중의 심리를 간파하고 '내가 해결해 줄게'라는 강력한 메시지와 이미지를 통해 불확실한 개인의 삶에 확실한 방향성을 제시해 줄 하나의 스타를 대중에게 제시하게 된다.
이러한 스타의 이미지는 대중에게 하나의 신화가 되는 것이다.
문화적 신화란 막대한 이윤을 추구하기 위한 자본가,지배 계급의 문화 조작에 불과한 것이다.
제시문 [다]는 최근 일본에서 일고 있는 욘사마 열풍에 관한 글이다.
배용준의 인기 요인과 주요 팬층,욘사마 열풍의 원인 등을 분석적으로 제시하고 있는데 주목할 만한 대목이라면 욘사마 열풍의 중심인 30~60대 중년 여성들이 '현실에 대한 비관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옛 사랑에 대한 향수를 그에게서 찾으려 한다'는 점이다.
이는 두 가지 관점에서 관심을 끈다.
첫째는 대중문화가 문화적 신화라고 할 때,욘사마 열풍은 불황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대중의 심리를 이용해 욘사마라는 상품을 만들어 내고 엄청난 이윤을 얻고 있는 문화 산업가들의 조작이라고 할 수 있고 둘째로는 고도 성장기였던 1950~70년대를 그리워한다는 것은 그만큼 일본 사회가 정서적 복지보다는 물질적 성장만을 추구해 왔다는 점을 대중이 배용준이라는 스타에 대한 관심을 통해 비판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즉 그것이 일정 부분 문화 산업가의 조작이라 하더라도 대중이 선택하지 않으면 그러한 열풍은 일어나기 어려우며,대중의 사회에 대한 비판적 태도와 문제 해결에 대한 욕구가 맞물리면서 나타난 현상으로 이해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제시문에 대한 분석이 끝났다면 논제의 요구에 따라 욘사마 열풍에 대한 분석을 전개해야 한다.
하나의 개요를 예로 든다면 우선 본론 [나]에서 대중문화에 대한 비판적인 해석과 이데올로기가 되어 버린 '문화적 신화'라는 개념을 도출하고,제시문 [가]를 참조하여 대중문화 비판론자들의 주장을 요약적으로 제시하면서 대중문화가 대중의 자율적인 판단 능력을 상실하게 하였으며,이미 문화산업이라는 하나의 자본을 축적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했음을 진술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다음 이러한 내용을 바탕으로 제시문 [다]에 나타난 욘사마 현상을 하나의 문화적 신화로 이해할 수 있으며,그러한 신화는 현 질서를 옹호하는 수단이라는 점을 비판해야 할 것이다.
더불어 지배 계급의 조작과 허위의 산물인 대중문화에 대한 소비자들의 주체적이고 비판적인 태도가 필요하다는 점을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신화로서의 욘사마 현상이 대중문화 비판론자들의 견해처럼 부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점을 반론으로 제기하면서 욘사마 현상의 긍정적인 측면,즉 대중문화의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이 경우 욘사마 현상이 일정 부분 자본의 논리와 지배 계급의 조작에 의한 이미지의 상품화일 수 있으나,이는 오히려 일본 사회가 안고 있는 권위주의와 물질만능주의에 대한 반동으로 현 질서에 대한 비판적 현상으로 이해할 수도 있음을 근거로 제시한다면 더욱 설득력 있는 논의를 전개할 수 있다.
따라서 대중문화에 대한 획일적인 잣대가 아니라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태도로 대중문화를 평가하고 소비하는 것이 오히려 대중문화의 본질을 잘 인식하는 것임을 하나의 대안으로 제시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