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신문 2월20일자 A1면

앞으로 한국공학교육인증원(ABEEK)으로부터 커리큘럼(교과목)과 교수진 능력 등을 인증받지 못한 공과대학 졸업생들은 삼성전자에 입사하기 어려워진다.

삼성전자가 궁극적으로 ABEEK의 인증을 얻지 못한 공대 졸업생들의 취업을 원천 차단한다는 방침 아래 단기적으로 내년부터 인증을 받은 대학 출신들에게 가산점을 주는 방식으로 대졸신입사원 채용방식을 변경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공대가 있는 전국 140여개 대학(4년제)의 2304개 공학계열 학과 중 아직 인증을 받지 못했거나 신청하지 않은 120여개 대학 2120개 학과 졸업생들에게 '삼성전자 취업비상'이 걸렸다.

삼성전자 고위 관계자는 "우선 2007년부터 인증을 받은 공대 졸업생들이 입사 필기시험인 SSAT(삼성직무적성검사)를 통과해 면접단계에 오를 경우 총 면접점수의 10%를 가산점으로 부여하기로 했다"며 "10%의 가산점이면 당락을 결정하는 수준"이라고 말했다.

조일훈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ji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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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시대를 맞아 기존 공학교육의 틀이 완전히 바뀌어야 한다는 지적들이 많다.

공급자 중심에서 벗어나 수요자 중심으로 공학교육을 전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사회적 요구를 반영한 제도로 최근 공학교육인증제가 관심을 끌고 있다.

미국의 경우 공학교육인증제가 공학교육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데 큰 역할을 했다.

미국 공학기술인증원(ABET)은 지난 70년 동안 기존의 이론 중심 공학교육을 설계,실험실습,'소프트 엔지니어링(soft engineering)' 중심으로 개혁했다. 교육내용과 교수방법을 공급자인 대학교수가 아닌 수요자인 산업체 중심으로 완전히 바꿨다.

학생들이 산업체가 요구하는 능력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데 초점을 맞춰 대학 공학교육을 근본적으로 개혁했다. 산업체의 요구와 필요에 따라 교육목표를 세우고 이를 달성하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시행한 다음 그 결과를 평가해 다시 목표를 수정하고 교육 방법을 개선해 나가는 순환적 시스템을 확립한 것이다. 한마디로 미국에서 공학교육인증제는 공학교육의 품질보증제인 셈이다.

우리나라에서도 1999년 8월 인증기관인 한국공학교육인증원(ABEEK)이 설립돼 2005년 말 기준으로 22개 대학 130개 프로그램을 인증하는 등 활발한 사업을 벌이고 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의 대표적 기업인 삼성전자가 입사시험을 치를 때 공학교육인증을 받은 대학 출신자들을 우대하겠다고 발표해 업계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공학교육인증제는 공학교육의 국제표준화 작업

공학교육인증제란 공학 및 관련 교육 프로그램의 기준과 지침을 마련하고,이를 통해 인증 및 자문을 시행함으로써 공학교육을 발전시키고 나아가 국제경쟁력을 갖춘 우수 엔지니어를 배출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

공인된 프로그램을 거친 대학 졸업생들의 능력을 보증해 주는 일종의 공학교육 국제표준화 작업인 셈이다.

그동안 우리 대학들은 기업에 별 쓸모가 없는 인력을 양산한다는 비판을 받아온 게 사실이다. 이에 따라 기업이 필요로 하는 맞춤형 인재양성을 목표로 내건 공학교육인증제의 도입 확대는 불가피하다.

아울러 대학이 산업현장에서 요구하는 교육 프로그램을 강화하고 산업체 연계 교육이나 인턴십 등을 활성화함으로써 공학교육을 혁신시킬 수도 있다.

공학교육인증제는 전 세계적 흐름이다. 미국 정부의 경우 인증받은 학과 입학생에게만 장학금을 지급하고 인증학과 졸업생에게만 전문 엔지니어 시험 응시 자격을 주고 있다. 또한 미국 공학기술인증원이 주도하는 워싱턴어코드 정회원국이 아니면 미국의 기술사 자격증을 딸 수 없도록 규제하고 있다.

◆인센티브 부족으로 공학교육인증제 도입 부진

이처럼 공학교육인증 제도의 활성화가 시급하지만 대학들의 공학교육인증제 도입은 지지부진한 게 현실이다. 대학으로선 인증제를 도입해 제대로 실천하는 데 물질적·심리적 부담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또 그러한 부담을 이겨낼 정도의 인센티브도 부족하다.

인증제 도입의 목적이 차별 대우를 통해 바람직한 방향으로 유도하자는 것이고 보면 적당히 학점만 채운 학생과 사회가 요구하는 과목을 제대로 이수한 학생을 달리 대우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공학교육인증은 시대적 요구

우리나라의 공학인증제도는 아직 초보단계에 불과한 게 사실이다.

또 미국이 지난 70년간 자국의 사회환경과 대학 여건에 맞춰 개발한 제도를 국내에 그대로 옮겨 놓은 '미국식 공학인증제'라 할 수 있다.

이로 인해 교육현장에 실제 적용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부작용이 일어나고 있는 것 또한 부인하기 어렵다.

학생들이 교육내용의 개편에 반발하는가 하면 교수들은 업무 가중에 불만을 터뜨리기도 한다.

뿐만 아니라 대부분 학교행정 당국이 제도의 성격을 아직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설사 이를 잘 알고 있다 하더라도 기존의 교육 틀을 갑자기 바꾸기는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이처럼 많은 문제점을 안고 있기는 하지만 공학교육이 위기를 맞고 있는 상황을 감안하면 공학인증제도의 취지에는 이의를 달 수가 없다.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엔지니어를 키워내는 공학교육인증은 이제 시대적 요구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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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풀이 ]

◆공학교육인증제도

1932년 미국 ECPD(전문성개발을 위한 엔지니어 평의회)가 처음으로 시행했으며 현재는 31개 전문학회연합체인 ABET(Accreditation Board for Engineering and Technology·미국공학기술인증원)가 담당하고 있다.

각국 공학교육인증기관들은 1989년 워싱턴 협정(Washington Accord)을 통해 국제협의체를 구성했으며 미국 일본 캐나다 영국 호주 뉴질랜드 등 9개국이 가입돼 있다.

한국은 지난해 예비회원으로 가입했으며 2007년 정회원 가입을 추진 중이다.

◆한국공학교육인증원(Accreditation Board for Engineering Education of Korea·ABEEK)

1999년 8월30일 전국공과대학협의회,한국공학교육학회,공학한림원,산업체 등이 창립한 기관으로 공학관련 교육기준과 지침을 제시하고 인증,자문 등을 통해 공학교육을 발전시키며 우수 엔지니어를 배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공학교육인증 기준

교육목표,학습성과와 평가,전공학점,학생관리,교수진,교육환경,교육개선 및 자료관리,전공분야별 기준 등 총 8개 항목의 국제기준(전공학점 89학점 이상 수강)을 충족해야 한다.

2005년 말 기준으로 22개 대학 130개 프로그램이 인증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