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털같이 많은 날들을 새 날로,새 마음으로 맞는 일만큼 좋은 일은 없다.'('섬진강' 시인 김용택의 풍경일기 시리즈 중 <설(雪)>에서)

'새털처럼 많은 행복했던 순간이 모여 당신의 오늘을 만든 것입니다.'('살아있는 동안 꼭 해야 할 49가지'에서 '일곱 번째 할 일-지금 가장 행복하다고 외쳐보기'에 나오는 대목)

우리가 일상에서 흔히 쓰는 표현 중에는 막상 사전을 찾아보면 없는 말들이 꽤 있다.

무심코 입에 굳은 대로 쓰기는 하지만 잘못된 말이기 때문이다.

'셀 수 없이 많은 날'을 비유적으로 나타내는 '새털같이 많은 날'은 '쇠털같이 많은 날'이 바른말이다.

'쇠털같이 허구한 날' '쇠털같이 하고한 날'처럼 조금씩 변형돼 쓰이기도 하지만 핵심어인 '쇠털'은 변하지 않는다.

줄여서 '쇠털 같은 날'이라고도 한다.

'쇠털'은 '소의 털'이 준 말이다.

'새털'에도 털이 많기는 하지만 '소의 털'에 비할 바가 못 된다.

관용구로 굳은 말이므로 발음이 편리하다고 임의로 바꿔 쓸 수 없다.

'개발새발'이니 '개발쇠발'이니 하는 데서도 비슷한 변형 사례를 볼 수 있다.

'글씨를 아무렇게나 되는 대로 갈겨 써놓은 모양'을 가리키는 이 말은 '괴발개발'이 바른말이다.

이는 '괴발+개발'로 나눠지는데,'괴'는 '고양이'의 옛말이다.

천방지축 들뛰는 고양이와 개의 발자국으로 어지럽혀진 모습에서 '괴발개발'이 지금의 난삽한 글씨 모양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하지만 '괴'는 요즘 사어(死語)가 되다시피 했고 '괴발디딤'(고양이가 발을 디디듯이 소리 나지 않게 가만가만 발을 디디는 것) 정도에서나 화석처럼 남아 있을 뿐이다.

이 '괴발'을 사람들이 음상이 비슷한 '개발'로 발음하고 여기서 연상해 뒤의 말을 '쇠발'로 바꾼 게 '개발쇠발'이다.

또 이를 다시 더 편한 발음으로 바꿔 말한 게 '개발새발'이다.

하지만 발음만 비슷할 뿐 의미상으론 모두 거리가 먼,잘못 쓰는 말이다.

'새털같이 허구한 날'에서 '허구하다'와 '하고하다'도 비슷하면서도 미세한 차이를 보이는 단어다.

우선 '하고하다'는 고유어로서 '하고많다'와 같은 말이다.

'많고 많다'는 뜻이다.

주로 '하고한'의 꼴로 쓰인다.

'하고많다' 역시 주로 '하고많은'의 꼴로 쓰이며 다른 활용 꼴은 잘 안 쓴다.

'허구하다(許久-)'는 한자어인데 특히 '(날/세월 등이)매우 오래다'라는 뜻이다.

두 말은 쓰임새가 같으면서도 달리 쓰이는 경우가 있다.

가령 "하고한 날을 기다림 속에…" 같은 데선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날'이 결국 '오랜 날들'이므로 '허구한'으로 바꿔 써도 괜찮다.

그러나 "하고한 사람 중에 하필이면 너냐"라고 말할 때는 '많다'는 뜻으로 쓴 말이기 때문에 "허구한 사람 중에…"라고 쓸 수 없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