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은 1793년부터 1815년까지 프랑스와 전쟁을 치렀다.

긴 전쟁 가운데 가장 잘 알려져 있는 전투가 바로 트라팔가 해전이다.

19세기에 들어서면서 영국은 나폴레옹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마침내 1805년 세계 해전사에 길이 남을 트라팔가 해전을 승리로 이끌었다.

넬슨 제독이 전사해 더욱 극적이었던 이 전투는 전쟁의 역사에서뿐 아니라 경제사에서도 상당한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가 보통 산업혁명이라고 부르는 1760년에서 1830년의 기간 가운데 바로 이 전쟁이 한복판에 자리잡고 있기 때문이다.

나폴레옹과의 전쟁이 산업혁명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에 관해서는 경제사학계에서도 뜨거운 논쟁거리로 남아 있다.

(이에 관해서는 다음 기회에 자세히 알아보자)그러나 트라팔가 해전의 경제사적 상징성은 '제해권의 장악을 통한 무역'에 관한 것이다.

산업혁명은 영국의 경제사뿐 아니라 세계적 차원에서 본 경제사에서도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산업혁명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자본주의적 대량생산 시스템을 만들어내고 정착시킨 과정이었기 때문이다.

경제사학자들은 이러한 산업혁명을 가능케 한 요인이 무엇이었을까 관심을 갖게 됐고 여러 차원에서 다양한 논의가 진행됐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대외무역의 역할에 관한 것이다.

스페인과 네덜란드를 거쳐 영국은 17세기 이후 막강한 해군력을 바탕으로 북대서양연안의 제해권을 장악했는데 이는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진행되었던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영국의 산업혁명을 이야기할 때 가장 먼저 등장하는 공업이 바로 면직물공업이다.

빠른 기술 발전에 의해 면직물 생산은 대폭적으로 늘어났는데,만일 대외무역이 없었다면 크게 늘어난 면직물 생산은 영국의 국내시장만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이 어려웠을 것이다.

더구나 영국에서 발전했던 면직물공업은 그 원료를 대부분 수입에 의존했다.

바로 이 점에서 대외무역이 산업혁명의 진행에 있어 중요한 역할을 했던 것이다.

무역의 이득(gains from trade)이 영국 입장에서 매우 컸다는 이야기다.

무역의 이득은 가지고 있는 자원이 서로 다른 국가들이 무역을 함으로써 무역 없이 폐쇄적으로 생산할 때보다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A국은 농산물 생산에 적합한 자연조건을 가지고 있고,B국은 공업제품 생산에 더 적합한 사회경제적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하자.이 경우 A국에서는 농산물은 싼값에 생산할 수 있는 반면 공업제품을 생산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 것이다.

반대로 B국은 농산물을 생산하는 데는 많은 비용이 들어가는 반면 공업제품은 아주 싸게 생산할 수 있다.

만일 두 나라가 무역을 하지 않는다면 A국과 B국 모두 한정된 생산자원을 가지고 일정한 양의 농산물과 공업제품을 생산하고 소비하게 된다.

그런데 두 나라가 교역을 하게 되면 A국은 더 싸게 (효율적으로) 농산물을 생산할 수 있으므로 농산물 생산에 주력하고 B국은 같은 논리로 공업제품 생산에 주력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되면 교역이 없던 상태보다 두 나라 전체의 농산물과 공업제품의 생산이 늘어나게 된다.

결국 A국은 농산물을 수출하고 B국은 공업제품을 수출함으로써 두 나라 모두 이전보다 더 높은 소비수준을 달성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비교우위에 의한 무역의 이득이다.

(절대우위가 아니다.!)

영국의 산업혁명에서 무역의 이득이 중요한 역할을 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공업 발전에 필요했던 많은 원료,특히 원면이 영국에서는 거의 생산되지 않았던 점을 들고 있다.

실제로 산업혁명 당시 영국이 무역을 했던 국가들은 대부분 부존자원이 영국과 다른 나라들이었다는 연구결과가 있다.

특정한 산업에 특화해 생산 교역함으로써 교역 당사국 모두가 무역으로부터 이득을 얻었다는 것이다.

물론 산업혁명에서 대외무역이 했던 역할은 단순히 무역의 이득에 그치지 않고 시장이 확대됨으로써 기술 발전의 유인을 제공했다거나,고용이 증대됐다는 점 등도 꼽히고 있다.

노택선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 tsroh@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