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머징 마켓 기업들, 해외 M&A 적극 나서 … "얕보지마"

이머징마켓(신흥경제국)의 기업들이 그동안 넘보기 힘들었던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을 대거 사들이고 있다.


일부 산업 분야에선 서구 기업과 이머징마켓 기업 간의 판도가 역전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최근 시장조사기관인 딜로직의 자료를 인용,"지난해 아시아 중동 라틴아메리카 등 이머징마켓의 기업들이 국제 유가 상승과 증시 활황 등을 기반으로 한 풍부한 자금력으로 해외 기업의 인수·합병(M&A)에 적극적으로 나섰다"고 보도했다.



◆신흥국가들의 선진국 공략


이머징마켓 기업들은 지난해 해외 기업 인수에 약 420억달러를 쏟아 부어 2004년에 비해 두 배 이상 많은 돈을 투자했다.


이머징마켓 기업들은 지난해 미국 기업 인수를 위해 140억달러를 썼다.


이는 2000년의 100억달러 기록을 5년 만에 돌파한 것이다.


또 유럽 기업을 인수하기 위해 총 93억달러를 투입했다.


아랍에미리트(UAE)의 국영회사인 두바이포트월드는 최근 세계에서 네 번째로 큰 항만 운영 회사인 영국의 페닌슐러 앤드 오리엔탈 스팀(P&O)을 68억달러에 인수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P&O는 미국에서 뉴욕 볼티모어 뉴저지 뉴올리언스 마이애미 필라델피아 등 6개 항구의 운영권을 가지고 있다.


인수가 확정되면 두바이포트월드가 이들 항구의 운영권까지 거머쥐게 된다.


중국의 컴퓨터 업체 레노보는 지난해 IBM의 PC 사업 부문을 12억5000만달러에 인수,단숨에 세계 3대 PC 제조업체로 부상하기도 했다.


또 지난해 이집트 재벌인 나귀브 사위리스는 120억달러를 주고 이탈리아 전화회사 윈드텔레커뮤니케이션스의 지분을 인수했다.


사위리스는 아시아와 중동에서 주로 기업 인수를 진행해 왔으나 유럽 시장으로도 세력을 넓힌 것이다.


나라별로 따져보면 인도 기업들의 해외 기업 인수 열기가 가장 뜨거웠다.


특히 지난 12개월간 증시가 50% 이상 급등하면서 쉽게 자금을 조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이 인도 기업들의 M&A 열기를 부추겼다.


인도의 자동차 부품 회사인 바라트포지는 스웨덴의 이마트라킬스타를 인수했으며,석유화학사인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는 독일 트레피라의 지분을 사들였다.


또 인도의 3위 제약사인 닥터레디스는 독일의 4위 제약사인 베타팜 인수에 성공했으며,인도 최대 소비 가전 업체인 비디오콘그룹은 프랑스 톰슨의 브라운관 사업을 인수하기도 했다.


◆풍부한 자금력으로 관련 분야 사업 확대에 주력


이 같은 이머징마켓의 역공은 무엇보다도 풍부한 자금력에 기인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국제 유가와 상품 가격이 급등하면서 이머징마켓 기업들이 막대한 현금을 보유하게 됐고,새로운 수출 시장을 개척하고 상품 인지도를 높이려는 정부의 의지가 가세하면서 선진국 기업들에 대한 공략이 크게 늘어났다는 얘기다.


경제 상황이 달라진 점도 원인 중 하나다.


중국과 인도 등 과거에 빗장을 걸어뒀던 신흥경제국들이 자본 시장을 개방하면서 자본 유·출입이 쉬워졌다는 것이다.


헤지펀드들이 미국과 유럽의 공기업 지분을 사상 최대 규모로 늘리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헤지펀드들은 자본의 성격이나 국적보다는 누가 높은 값에 지분을 살 수 있느냐에만 관심이 있다.


자금력만 충분하다면 국적이나 배경은 따지지 않고 투자기업의 지분을 매각한다.


고수익을 노리는 국제 자금이 이머징마켓으로 유입되면서 에너지나 상품과 관련이 없는 기업들의 주가가 급등해 M&A에 나설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된 것도 하나의 원인이다.


주가가 상승하면서 주주들로부터 투자 자금을 조달하기가 쉬워졌고 은행에서 보다 낮은 금리로 자금을 빌릴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씨티그룹의 유럽 지역 M&A 책임자인 피터 태그는 "신흥경제국 기업들이 서구 기업들이 신경쓰지 않는 사이에 자국 시장에서 합병을 계속해 왔고,이제 세계 무대에서 그들은 공격적 행보를 계속해 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WSJ는 최근의 이런 흐름이 1980년대 일본의 수출 기업들이 페블 비치 골프 리조트와 록펠러 센터를 사들였던 때를 떠올리게 한다고 전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적어도 자신들이 잘 알고 있는 기초 산업 분야에서 M&A를 늘린다는 점이 그때와 차이가 있다고 덧붙였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jran@hankyung.com



< 프랑스 언론 "중국.인도.한국등은 新포식자 >


인도와 중국 등 이머징마켓(신흥경제국)의 재벌들이 인수·합병(M&A)에 취약한 유럽 기업들을 공략해 유럽 전체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인도의 철강업체인 미탈스탈이 세계 2위 철강업체인 아르셀로 인수를 시도한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프랑스 주간지인 르 피가로는 최근 '세계의 새로운 주인들'이란 제목의 기사에서 유럽의 기업들을 인수했거나 인수를 시도하는 이머징마켓의 기업가들을 '신(新) 포식자들'로 지칭하며 "이들은 준비가 안 된 '노쇠한 유럽'의 주요 기업들을 탐내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잡지는 '신 포식자들'로 인도 중국 한국 러시아 멕시코의 기업인들을 지칭하면서 순식간에 그들이 국가의 경계를 넘어서며 사방으로 촉수를 뻗치고 있다고 전했다.


유럽의 대표 기업들이 모두 신흥국 재벌들의 '먹잇감'이 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의 라크시미 미탈 미탈스틸 회장은 최고의 포식자로 명성을 떨치고 있다.


이 외에 씨티그룹과 디즈니랜드파리 지분을 소유하고 있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알 왈리드 벤 탈랄,영국 축구구단 첼시의 구단주인 러시아 재벌 로만 아브라모비치,멕시코 통신 재벌인 카를로스 슬림 엘뤼 등을 '신 포식자들'로 들었다.


최근 프랑스 향수업체 마리오노를 인수한 중국 재벌 리카싱 회장과 '인도의 빌 게이츠'로 불리는 아짐 하삼 프렘지 위프로그룹 회장 등도 유럽을 공략하는 신흥 기업인들로 꼽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