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인스 워드 분명 자랑스럽지만 지난친 '영웅 만들기'는 글쎄…

하인스 워드 신드롬이 뜨겁다.


건장한 흑인 남성의 외모인 그는 요즘 말로 하면 한국인에겐 오랫동안 '非好感' 계열이었다.


그러나 그의 팔뚝에 새겨진 한글이름 '하인스 워드'에 걸려 있는 초강력 주문은 모든 한국인을 혈통주의의 마법으로 끌어들여 감동하게 만든다.


강대국 미국을 제패한 (이제서야 발견된) 한국의 아들,눈물로 그를 키운 한국인 어머니,생김새는 달라도 더없이 깊은 한국적인 가치관까지 완벽할 정도다.


워드는 지난 9일 한국 기자들과의 인터뷰에서 "어머니는 謙遜하라고 가르치셨다""나는 어머니에게 받은 은혜를 절대로 다 갚지 못할 것"이라고 말했다지 않은가!


한국 언론이 발빠르게 그의 성공과 그의 자랑스러운 핏줄(?)을 한 데 묶어 보도한 덕에,한국을 방문한 적도 없는 하인스 워드와 한국인들 간의 심리적 거리는 순식간에 좁혀졌다.


어머니 김영희씨는 "逆境과 苦難을 딛고 훌륭하게 아들을 길러낸 전형적인 한국 어머니다운 강인함(연합뉴스 TV)"을 가진 현대판 신사임당이 됐고,KBS는 지난 11일 '하인스 워드와 한국인 어머니,슈퍼볼을 점령하다'라는 특집 프로그램을 부랴부랴 방송했다.


부시 美 대통령까지 그를 만나보고 싶어 한다는 기사를 본 한국인들이 갑자기 그를 자랑스러워하기 시작한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영웅이 필요한 시대?


언론은 영웅을 필요로 한다.


아니 대중은 영웅을 필요로 한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동화처럼 단순하면서도 강력한 감동적 스토리는 호소력이 강하다.


그 사람의 모든 것이 무궁무진한 기사의 寶庫가 된다.


'젓가락질을 잘하는 한국인 특유의 손재주로 줄기세포 확립에 성공했다'는 황우석 前 서울대 교수의 설명은 한국의 언론과 대중을 사로잡았다.


그는 대중이 영웅에게 바라는 것은 '발가벗은 진실'이라기보다는 단순하고 강력한 '성공 스토리'라는 점을 잘 알고 있었고,이를 적절히 이용할 줄도 알았다.


물론 이 같은 일이 한국에만 일어나는 특수한 현상은 아니다.


지난 수년간 자본주의의 성공신화가 돼 일본열도를 쥐고 흔들었던 호리에 前 라이브도어 사장 역시 황우석 前 교수와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호리에 사장은 도쿄대를 다니던 1996년 빌린 돈 600만엔으로 만든 홈페이지 제작회사를 2000년 도쿄 증시에 상장한 이후 끊이지 않는 M&A를 통해 불과 5년 만에 40여개사를 거느린 그룹의 총수로 성장했다.


언론은 그의 성공 스토리를 확대 재생산하기에 여념이 없었다.


라이브도어의 實體가 불분명하다는 지적이 수 차례 나왔지만 아무도 주목하지 않았다.


영웅을 원하는 언론과 언론을 통해 영웅이 되고자 하는 커플은 한동안 행복한 결혼생활을 했다.


그러나 "사람의 마음조차 돈으로 살 수 있다"며 자신감에 넘쳤던 호리에 사장은 그동안 허위공시를 하거나 법적 허점을 이용해 주가를 끌어올려 왔다는 혐의로 지난달 23일 전격 체포됐다.


◆영웅 이야기의 간단한 역사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딧세이는 고전적인 영웅 서사시다.


이에 앞서는 길가메쉬 서사시도 있다.


길가메쉬 서사시는 수메르 점토판에 새겨진 인류 최초의 영웅 이야기다.


플루타르크 영웅전은 알렉산더 로물루스 키케로 등 46명의 영웅을 다루고 있다.


사람들은 크고 작은 영웅 이야기를 필요로 한다.


영웅 이야기는 끊임없이 되풀이된다.


영웅이 사라진 시대라는 현대의 영웅은 어쩌면 스포츠 스타이거나 연예인이 될 수도 있다.


이들은 과거 역사상의 영웅 못지 않은 대중의 관심과 기대를 모은다.


이들의 일거수 일투족에 대중은 주목하고 또 熱狂한다.


대중 언론매체는 현대의 영웅들인 스포츠 스타나 연예인에 중독돼 있다고 할 정도다.


◆하인스 워드 열풍의 逆說


하인스 워드가 호리에나 황우석처럼 추락하리라는 불길한 예언을 하려는 게 아니다.


그러나 하인스 워드가 갑작스레 영웅처럼 미화되는 것 자체에 적지 않은 문제도 있다.


우리는 왜 그를 영웅으로 받아들이게 되는 것일까.


역설적이게도 그의 피 속에 한국인의 피가 흐르고 있다는 좁디좁은 혈연주의의 發露일 수도 있다.


속 좁은 혈연주의와 종족주의적 컴플렉스가 갑작스레 그를 한국인의 영웅으로 만들고 있다는 말이다.


외국인에게 배타적인 성향에다 대중의 영웅을 생산해내는 언론의 메커니즘이 맞아떨어져 순식간에 본인도 모른 채 한국의 영웅으로 탄생해버린 것이 하인즈 워드 열풍의 斷面이다.


하인스 워드는 훌륭하게 자라난 '혼혈' 미국인이다.


그의 성실함,가족애,겸손함 같은 덕목이 한국적이라는 것은 我田引水격의 해석일 따름이다.


그동안 '피가 섞였다'면서 혼혈인을 차별하다가 갑자기 '피가 섞였으니까' 동포라며 환영하는 것은 그야말로 가식적인 혈통주의자들이 벌이는 일종의 코미디일 수도 있다.


하인스 워드의 어머니 김영희씨는 한국 기자들이 몰려들어 한국적 가르침에 대한 讚辭를 쏟아내자 "흑인이나 混血이라면 언제 사람대접이나 해 줬는가"라며 "잘되면 쳐다보고 그렇지 않으면 쳐다도 안 보는 것이 한국의 풍토 아니냐"고 일갈했다고 한다.


山戰水戰 겪어온 그녀는 이 '영웅 만들기' 게임의 진실을 보고 있다는 얘기다.


대부분의 언론은 이 말을 보도조차 하지 않았다.


진정으로 열린 가슴이란 무엇인지 하인즈 워드 열풍을 보며 생각해보자.


이상은 한국경제신문 건설부동산부 기자 se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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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읽기


ㆍ非好感 (비호감)

ㆍ謙遜 (겸손)

ㆍ逆境 (역경)

ㆍ苦難 (고난)

ㆍ寶庫 (보고)

ㆍ前 (전)

ㆍ實體 (실체)

ㆍ籠絡 (농락)

ㆍ熱狂 (열광)

ㆍ逆說 (역설)

ㆍ發露 (발로)

ㆍ斷面 (단면)

ㆍ我田引水 (아전인수)

ㆍ讚辭 (찬사)

ㆍ混血 (혼혈)

ㆍ山戰水戰 (산전수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