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초고속으로 성공한 벤처기업 라이브도어의 사장이었던 호리에 다카후미(33).그가 설립한 라이브도어는 증권,신용카드,유통,출판,소비자금융 등의 분야에서 30여개 계열사를 거느리며 제조업의 나라 일본에서 '신경제'의 상징으로 급부상했다.

라이브도어는 호리에 특유의 인수·합병(M&A) 방식으로 일본 최고 상업 방송인 후지TV 인수까지 시도해 화제를 불러일으킨 적도 있다.

호리에는 일본의 영웅이었다.

정보 시대의 총아로 불렸다.

일본 국민들은 그를 신화로 떠받드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러던 호리에가 최근 라이브도어의 핵심 임원 3명과 함께 도쿄지검 특수부에 전격 체포됐다.

2003년 이후 계열사의 주가를 끌어올리기 위해 증권 시장에 허위 사실을 유포하고 적자를 흑자로 둔갑시키는 회계 조작을 벌여 왔다는 혐의였다.

검찰 조사에 따르면 라이브도어 계열사인 밸류클릭재팬은 출판사인 머니라이프를 주식교환 방식으로 인수해놓고서도 이를 공표하지 않았다.

라이브도어는 나중에 이 출판사를 새로 인수하는 것처럼 발표했는데,M&A를 재료로 해서 이 회사의 주가를 끌어올리려는 작전이었다.

적자기업이었던 밸류클릭재팬의 2004년 3분기 결산도 흑자로 분식했다.

이런 속임수로 주가가 상승하자 해외에 둔 유령회사(페이퍼컴퍼니)를 통해 이 회사의 주식을 내다팔아 차익을 챙겼다.

이 수익은 본사 이익으로 둔갑됐다.

그러나 호리에의 신화는 오래지 않아 세상에 들통이 났다.

◆적대적 M&A로 계열사 확장

호리에는 도쿄대 재학 중이던 1996년 빌린 돈 600만엔으로 홈페이지 제작회사를 만들어 2000년 도쿄 증시에 상장했다.

그 뒤 적대적 M&A 전략으로 40여개 기업을 거느리는 거인이 됐다.

그룹의 주가 총액은 1조엔으로 늘어났다.

그는 노골적으로 "나는 법의 허점을 이용한다"고 말했다.

정직하게 하나하나씩 쌓아가는 방법보다는 쉽게 돈 버는 유혹에 빠져 있었다.

그 이면에는 땀과 윤리를 무시하고 돈이면 다 된다는 황금만능 주의가 깔려 있었던 것.그는 돈으로 사람의 마음까지 살 수 있다고 공공연히 말해 왔다.

호리에는 일확천금을 노리며 불법을 저지르다 무너진 과거 벤처기업인들과 유사한 행태를 보였다.

미국에서도 2001~2002년 신흥 에너지기업 엔론과 통신회사 월드컴이 회계 부정과 불법 자본 거래 등으로 자사 주가를 올린 뒤 다른 회사를 매수하는 방법으로 덩치를 불리는 과정에서 사법 당국에 적발돼 무너진 적이 있다.

호리에는 여기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잦은 주식 분할,시간 외 주식 거래 등 다양한 수법을 동원했다.

호리에는 일본의 최대 뉴스 메이커 가운데 한 명이었다.

거대 민방인 후지TV를 인수하기 위해 혈전을 벌이다 후지TV와 자본·업무 제휴를 하기도 했다.

또 일본 자민당의 전폭적 지원을 받아 중의원 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했다가 근소한 차이로 떨어진 적도 있다.

◆일본판 황우석 파동

그러던 호리에 신화의 붕괴는 '일본판 황우석 파동'이라 부를 만하다.

지난해 일본 신입사원들이 호리에를 '가장 이상적인 사장'으로 뽑았을 정도로 우상화됐다.

효율을 중시하는 서구식 개혁을 추진해 온 고이즈미 준이치로 총리 측근들도 그를 치켜세우는 데 앞장 섰다.

사람들은 그의 파격적인 언행에 환호했고,그는 일본 경제의 미래를 위해 구태를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의 몰락이 일본 사회에 던진 파문은 단지 하나의 벤처 기업가가 몰락했다는 의미 이상이다.

보수적이고 꽉 막힌 일본 사회에서 그는 '개혁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가 하루 아침에 '부도덕한 벤처기업인'으로 추락했다.

벤처기업에 대한 이미지는 급속히 나빠졌고,제2의 호리에를 꿈꾸던 젊은 사업가들도 큰 타격을 입었다.

가장 큰 상처를 받은 사람들은 일본 국민이었다.

한 기업인의 경영 윤리가 사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 호리에 파문은 일깨워 주는 바 크다.

호리에의 라이브도어는 이제 회생하기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다.

도쿄 증권거래소는 라이브도어의 상장을 취소하겠다는 방침을 이미 밝혔다.

안정락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