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방사선 누출 사고 이후 원전은 '애물단지'취급을 받았다.

당시 3500여명이 숨지고 수십만명이 피폭 피해를 입은 뒤 전세계 주요 국가들은 그동안 원전을 멀리하는 정책을 펴왔다.

미국도 1996년을 끝으로 원전 건설을 중단했다.

하지만 최근 원전에 대한 관심이 다시 높아지고 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70달러 가까이 치솟은 데다 중동 정세가 불안해지면서 석유 에너지에 대한 과도한 의존을 줄이고 대체 에너지를 찾아야 한다는 위기 의식이 높아졌기 때문이다.

러시아 이란 베네수엘라 등 자원 부국에서 거세게 일고 있는 자원 패권주의나 자원 민족주의도 이 같은 움직임을 가속화하고 있다.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국정연설에서 "미국은 석유에 중독돼 있다"는 강한 표현을 써가며 대체 에너지 개발을 강조했다.

이와 함께 유럽과 러시아,중국,인도 등도 원전을 현실적인 대안으로 새롭게 평가하며 추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전 세계적으로 고개를 들고 있는 원전 건설 붐을 알아본다.

◆적극적인 중국·인도·러시아

원전 건설에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급속한 경제 발전을 하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인도다.

급증하는 에너지 수요를 맞추기 위해서는 원전만한 대안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세계원자력기구(IAEA)에 따르면 작년 말 현재 전 세계에서 건설 중인 원자로는 모두 22기.이중 인도가 8기로 가장 많고 이어 러시아(4기)와 중국(2기)이 뒤를 잇고 있다.

인도는 2012년까지 17기의 원자로를 추가 건설해 현재 3%인 원전 의존율을 30%로 크게 늘릴 계획이다.

에너지 확보를 국가 최우선 과제로 삼고 있는 중국도 동부 지역을 중심으로 2010년까지 40기의 원자로를 추가로 건설할 예정이다.

세르게이 키리옌코 러시아 원자력청장도 지난 1일 "40기의 원자로를 새로 지어 핵에너지 비중을 높여야 한다"며 "이를 위해 2011~2012년부터 매년 2기의 원자로를 지어야 한다"고 밝혔다.

◆미국,10년 만의 원전 붐

지난 1996년 6월 와츠바 원전을 끝으로 원전 건설을 중단했던 미국에서도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에 따르면 최근 미국에선 3개의 컨소시엄이 동남부에 14개의 원전을 새로 짓기 위해 당국에 건설 허가를 신청했다.

정치권도 분위기 잡기에 나섰다.

국정연설에서 '탈석유'를 아젠다(국정과제)로 제시한 부시 대통령은 "중단됐던 원전 건설을 2010년까지 재개하겠다"고 선언했다.

차기 민주당 대선 후보로 유력한 존 매케인 상원의원도 해외 석유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핵 에너지를 적극 활용하는 방안을 주장하고 있다.

미국은 현재 전체 소비 원유의 73%를 수입하고 있다.

◆'에너지 독립'노리는 유럽

원전에 거부감을 보여온 유럽도 요즘 분위기가 사뭇 달라졌다.

올 초 러시아의 일방적 가스공급 중단 사건이 결정적이었다.

당초 18기의 원자로를 2020년까지 모두 폐쇄키로 했던 독일은 가스 공급 중단 사태 이후 실시된 여론 조사에서 응답자의 과반수가 원전에 찬성했다.

1987년 국민투표를 통해 원전 폐쇄를 결정하고 1990년까지 모든 원전을 닫았던 이탈리아에서도 당시 결정이 실수였다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원전 의존도가 78%로 세계 최고인 프랑스는 2012년까지 제3세대 원자로를 새로 건설,원전 의존도를 더욱 높일 계획이다.

북해 유전·가스전을 보유한 영국의 토니 블레어 총리도 작년 말 "원전 건설을 재검토할 때가 됐다"고 운을 뗐다.

이 같은 움직임은 '원전 없이는 에너지 독립도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기 때문이다.

현재 유럽연합(EU) 25개국은 원유의 4분의 3,천연가스의 절반 이상을 수입하고 있는 실정이다.

리투아니아 우크라이나 등 동유럽 국가들도 러시아로부터 완전 자유로워지기 위해 원전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주용석 한국경제신문 국제부 기자 hohoboy@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