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부동산'에 집중됐던 세금 논쟁이 요즘 들어 '근로자'로 방향을 틀었다.
'소수자 추가공제 폐지','근로자저축 세금혜택 축소' 등 월급쟁이의 주머니 사정과 직결되는 정책이 연일 신문지면을 채우고 있다.
정부는 관련기사가 나올 때마다 "당장 시행할 계획은 없다"고 해명하지만 근로자들의 심기는 불편하다.
정부가 '양극화 해소'라는 거창한 깃발을 내건 이상 결국 근로자를 타깃으로 한 증세(增稅)계획이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왜 이렇게 쥐어짜나
정부가 봉급생활자들을 들볶는(?) 근본적인 이유는 벌여놓은 일에 비해 쓸 돈이 턱없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정부가 최근 국무총리실 재정경제부 기획예산처 행정자치부 등의 합의로 마련한 '저출산 고령화 및 사회안전망 구축 재원확보방안'에 따르면 오는 2010년까지 추가로 필요한 돈은 10조5000억원으로 추산됐다.
이 중 5조6000억원은 정부의 지출을 줄여 마련하고 나머지는 세입확대를 통해 조달하기로 했다.
4조9000억원만큼 세금을 더 걷겠다는 얘기다.
그러나 세율을 올리거나 새로운 세금을 만드는 것은 국민들의 저항이 심하므로 정부는 현재의 세금제도를 뜯어고쳐 부족한 자금을 충당키로 했다.
문제는 개편되는 세제의 상당 부분이 근로자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정부가 이처럼 근로자의 세금 부담을 늘리기로 한 것은 우선 세금을 걷기가 쉽기 때문이다.
변호사 의사 등 고소득 자영업자는 소득 파악이 어렵고 농민이나 중소기업들에 주어지던 세금 혜택을 줄이면 조세저항이 너무 크다.
'월급쟁이가 봉이냐'는 불만이 나올 만한 상황이다.
◆소수자 추가공제 폐지 검토
정부는 우선 1인 또는 2인 가구의 근로소득에 대한 추가 공제 혜택을 없애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왔다.
정치권의 제동으로 세법 개정을 '유보'하는 쪽으로 결론이 났지만,5월 말 지자체 선거 이후 공론화될 가능성이 높다.
세법에서 '공제'란 세금을 매길 때 과세대상 기준이 되는 금액을 줄여주는 것을 말한다.
공제를 많이 받게되면 그 만큼 세금을 내야하는 소득액이 줄어들기 때문에 세부담도 줄어든다.
현재 1인가구(독신)는 본인 공제 외에 100만원,2인 가구(신혼 부부 등)는 본인 및 배우자 공제 외에 50만원의 소득공제 혜택을 추가로 받고 있는데,이걸 없애겠다는 것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2004년 기준으로 근로소득세를 내는 1,2인 가구는 284만가구에 이른다.
이들 가구는 매년 연말정산 때 연간소득에서 기본공제 표준공제 필요경비공제 등 일반가구에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공제 외에 '소수자 추가공제'라는 명칭의 공제혜택을 덤으로 받고 있다.
부양가족이 없거나 적은 근로자가 가족이 많은 근로자에 비해 너무 많은 세금을 내지 않도록 배려하는 제도다.
자녀가 있는 맞벌이 부부도 세금부담이 늘어나게 된다.
예컨대 자녀가 한 명인 맞벌이 가구는 실제로는 3인 가족이지만 연말정산을 할 때는 각각 2인 가구와 1인 가구로 나눠져 소수자 공제혜택(각각 50만원과 100만원)이 적용돼 왔다.
자녀가 두 명 이상이더라도 세금부담이 늘어나는 것은 마찬가지다.
4인 가족도 맞벌이 부부일 때는 각각 3인 가구와 1인 가구로 분류돼 100만원의 공제혜택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렇게 제도를 바꿀 경우 2조원가량의 세금이 더 걷힐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징세편의'만 따져선 안돼
정부가 구상하고 있는 또 다른 재원 확보방안은 비과세·감면제도를 축소하는 것이다.
세금을 깎아주거나 내지 않도록 하는 규정들을 하나하나 정비해 나가겠다는 얘기다.
재경부가 작년 말 국회에 제출한 '2005년 조세지출 보고서'에 따르면 정부가 세금을 매겨야 하지만 여러 가지 정책적 목적으로 비과세·감면 혜택을 주는 대상은 모두 226개에 달한다.
이들에 대한 조세감면 규모만 작년 기준으로 19조9879억원에 달한다.
비과세·감면제도를 재정비할 필요가 분명히 있다.
분야별로 나눠보면 △농어민 지원 2조9167억원 △중소기업 지원 1조3874억원 △투자 지원 5조666억원 △근로자 지원 4조6353억원 △저축지원 1조1306억원 등이다.
또 지방이전과 사회보장,국방 지원 등에 4조8512억원의 혜택이 돌아갔다.
이 중 농어민과 중소기업 지원 등은 분배 등의 논리가 확고해 사실상 성역화돼 있다.
연구개발(R&D) 등 투자촉진 관련 조세감면은 성장잠재력과 연결돼 지원을 줄이기 어렵다.
이렇게 이것저것 빼고 나면 남는 건 저축지원과 지방이전,사회보장 등 기타 부문이다.
그나마 지방이전 등 경쟁력 강화와 사회보장 지원 등은 균형발전과 양극화 해소라는 국정목표와 부합되기 때문에 역시 축소가 힘들 것이란 게 중론이다.
결국 조세감면 축소의 칼 끝은 저축지원에 돌아올 수밖에 없다.
조세감면 지원을 받는 저축의 이용자들,특히 근로자들은 불특정 다수여서 농어민이나 중소기업처럼 조세저항이 강하지 않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들 비과세 금융상품 대부분이 근로자들의 목돈 마련을 지원할 목적으로 운용돼 왔다는 것이다.
결국 건전한 중산층 형성을 위한 조세지원이 양극화 해소를 위해 희생될 공산이 커졌다는 얘기다.
안재석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