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고전읽기] 2006학년도 중앙대 수시1학기 언어논술 문제

다음 문제는 2006학년도 수시1학기 중앙대학교 언어논술 시험에 출제된 것이다.


중앙대는 최근 한국 일본 중국 정부와 지식인들 사이에서 전개된 과거사 청산문제와 '교과서논쟁'은 '역사란 무엇인가'에 대한 근원적인 질문들을 곱씹어 볼 좋은 기회를 제공한다고 말했다.


이 문제에서 파생되는 여러 질문에 대해 다양한 각도로 생각할 수 있는 능력을 테스트하고 수험생들을 자극하려는 의도에서 출제됐다고 설명했다.



[문제 1] 제시문 (가)와 (다)가 공유하는 문제의식을 답안지 7줄(151~175자)로 재구성하여 요약하시오.단,가능한 한 본문에 등장하는 어휘 및 표현을 그대로 반복 사용하지 않도록 유의하시오.


[문제 2] 제시문 (가)의 관점에서 제시문 (나)가 옹호하는 역사관의 단점과 한계에 대하여 답안지 7줄(151~175자)로 설명하시오.


[문제 3] 제시문 (다)의 주장을 바탕으로 현재 우리나라 중국 일본 정부 및 지식인 사이에서 진행되고 있는 '교과서 분쟁'에 대한 견해를 답안지 7줄(151~175자)로 밝히시오.



(가)역사 담론이란 이해 당사자가 자신을 위해 직접 과거를 조직해내는 방식이다.


역사란 기본적으로 특정한 사람,계급,집단이 자신들을 위해 경쟁적으로 과거의 해석을 자서전적으로 구성해내는 전쟁터이며 힘의 마당인 것이다.


이 마당에서는 과거에 대한 각각의 견해들이 각양각색으로 통합되고 배제되고 중심화되고 주변화된다.


역사 자체가 이데올로기적 구성물이라는 것은 그것이 권력관계에 따라 다양하게 영향을 받는 사람들에 의해 끊임없이 재구성·재정리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는 스스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항상 누군가를 위해 존재한다.


왜냐하면 지배자뿐 아니라 피지배자도 각각 자신들의 실천적 행위를 정당화하기 위해 과거를 독자적으로 각색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배자들은 피지배자들이 각색한 과거를 부적절한 것으로 취급하여 지배적 담론의 공간에서 배제시켜 버린다.


그래서 이제 '역사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은 '무엇'을 '누구'로 대체하고,'위하여'를 뒤에 덧붙여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로 바꾸어야 제대로 된 물음이 될 것이다.


이 질문을 이해할 수만 있다면,역사란 다른 집단에게는 상이한 의미를 갖는 논쟁적 용어 혹은 담론이며,따라서 역사는 필연적으로 문제투성이라는 점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 케이스 젠킨스(Keith Jenkins),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Rethingking History)', 1991, chldydcks dhfarla(gPdks, 1999) >



(나)세계 역사,즉 인간이 이 세상에서 이룩한 역사는 근본적으로 이 땅에서 활동한 영웅들의 역사이다.


보통 사람들의 지도자를 자임했던 영웅은 일반 대중이 도달하고자 노력하는 모범과 패턴을 만든 인물이요,넓은 의미에서 그것을 창조한 인물이었다.


오늘날까지 세계가 이룩한 모든 것은 이 세상에 보내진 영웅들에게 깃들어 있던 사상의 외적·물질적인 결과요,현실적인 구현이자 체현(體現)이라고 말하는 것이 정당할 것이다.


전 세계 역사의 본질은 이들의 역사였다고 생각해도 틀림이 없다.


영웅은 살아 있는 광명의 원천이며,그 빛은 지금 세상의 어둠을 비추고 있고,또 이제까지 세상의 어둠을 비추어 왔다.


그것은 사람이 켠 등불 같지 않고,하늘의 은총에 의해 반짝이는 자연의 빛과 같다.


말하자면 그것은 타고난 독창적인 예지이며 인간다움과 영웅적 고귀함이 샘솟는 원천이다.


모든 영혼은 그 빛을 받는 것만으로도 뿌듯함을 느낀다.


< 토머스 칼라일(Thomas Carlyle), '영웅숭배론(On Heroes, Hero-Worship and the Heroic in History), 1841, 박상익 옮김 (한길사, 2003) >



(다)역사 교과서는 한 국민의 역사의식을 구성하는 중심적 지위를 갖는다.


학교에서 가르치는 역사 지식은 의심,비판,재구성으로부터 자유로운 사실들의 집합체로 여겨진다.


교과서는 한 사회에서 널리 합의될 수 있는 보편적인 지식 혹은 표준화된 지식을 전제로 하지만,과연 교과서에 담을 '공적 지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가?


그리고 교과서의 내용을 유일하고도 객관적인 지식이라고 믿을 수 있는 당위성이 있는가?


교과서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를 설명하고자 하는,그것을 통해 어떤 문제에 관한 진리를 가르쳐주려는 특정한 사람의 시도임을 이해하여야 한다.


그러나 모든 역사적 결론은 다른 관점과 시각에 의해 수정될 수 있고,교과서 역시 객관적인 것처럼 보이는 편견의 한 사례일 수도 있다는 점을 명심하여야 한다.


그러므로 교과서를 단순히 수용해야 할 역사적 지식을 담고 있는 대상으로서가 아니라,하나의 해석 자료로 보고,그 기술(記述)에 내재된 역사 인식을 판단함으로써 하나의 '텍스트'로 보는 관점의 전환이 필요하다.


과거에 대한 진술이 항상 임시적이며 재해석될 수 있는 대상이라는 점을 인정한다면,역사 지식은 궁극적으로 암기의 대상이 아니라 끝없는 논쟁과 재해석의 대상으로 재인식되어야 할 것이다.


< 이영효, '포스트모던 역사인식과 역사 학습', 김기봉 외, '포스트모더니즘과 역사학' (푸른역사, 2002) >



제시문 독해의 핵심은 제시문 간의 '관계'다.


왜냐하면 그 어떤 텍스트도 그 자체로 의미 있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논제의 주제와 관련해서 의미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각각의 제시문 또한 나머지 제시문들과의 관계 속에서 그 의미를 분명히 할 수 있다.


(가)제시문과 (다)제시문은 역사 서술에 대한 입장에서 중요한 문제의식을 공유한다.


(가)제시문은 지난주 다룬 케이스 젠킨스의 '누구를 위한 역사인가'라는 책에서 발췌됐다.


(다)제시문은 이영효의 '포스트모던 역사인식과 역사학습'이라는 논문에서 뽑은 것이다.


두 제시문은 과거에 대한 객관적,중립적 서술을 역사학의 본령으로 삼는 실증주의에 대한 비판이다.


(가)제시문의 저자에 따르면 역사라는 것은 특정한 의도를 가진 역사가들에 의해 만들어진 '언어적 구성물'(담론)일 뿐이다.


(다)제시문의 저자에게 교과서의 지식이 상대화되고 비판적으로 이해돼야 하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공교육의 장에서 사용되는 교과서의 지식이 가졌다고 전제되고 있는 보편성과 표준성은,실제로 그러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그 지식'이 보편적이고 표준화된 것이라는 믿음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와 같은 믿음을 공유하는 것을 통해 이득을 얻는 세력이 있다고 간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만일 교과서의 역사 서술에 보편성과 표준성이 담겨 있다면,그것은 다만 보편성과 표준성을 참칭(僭稱)하고 있을 뿐이라고 해 두자.


두 제시문의 필자가 가진 문제의식에 따르면 궁극적으로 그와 같은 보편성과 표준성을 가지고 있는 역사서술은 애시당초 있을 수조차 없다.


(나)제시문은 토머스 칼라일의 '영웅숭배론'이다.


저자는 19세기 영국의 정치가이자 역사가로서 '역사의 전개는 영웅 중심으로 이루어진다'는 믿음을 굳게 가지고 있었던 인물이다.


이 제시문은 자체만으로도 논리적으로 치명적 결함을 가지고 있다.


논지는 뚜렷하지만 오로지 우격다짐으로 선언되고 있을 뿐이다.


문제 속에서 이 제시문의 기능은 객관적으로 분식(粉飾)된 역사서술이 주관적인 것에 불과함을 드러내주는 가장 극단적인 사례로 제시된 것이라 볼 수 있다.


비교적 쉬운 이와 같은 사례를 통해 논제에서는 현실 속에서 나타나고 있는 다른 사례에도 일관성 있게 적용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여부를 묻고자 하는 것이다.


위와 같은 제시문 독해를 바탕으로 질문에 답하는 연습을 해보기로 하자.


위와 같이 짧게 쓸 것을 요구하는 논술문제가 출제되는 것은 군더더기를 제외하고 핵심적인 논지만으로 자신의 주장을 전개할 수 있는지의 여부를 평가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에 경제적인 언어구사 능력이 핵심적으로 요구된다.


위 문제의 경우는 논술문제 중에서도 특히 가장 짧은 편에 속하는 문제이기는 하다.


수시모집에서 실시되는 논술고사에서 짧은 글쓰기를 요구하는 것은 사실 서론 본론 결론의 완결된 글쓰기를 쪼개서 묻고 있다고 봐도 좋다.


(가)와 (다)제시문이 공유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묻고 있는 [문제1]의 경우 이미 언급한 바 있으므로 간단하게 글쓰기의 방법에 대해 언급하는 것으로 대신하기로 하자.


이런 경우 가장 중요한 것은 주제문을 정하는 것이다.


주제문을 정하고 그 주제문에 대한 부연설명을 한다는 기분으로 글을 쓰면 될 것이다.


[문제2]의 경우 (나)제시문에 언급된 영웅 중심적 역사관에 대해서 비판하되 반드시 (가)제시문의 입장을 그 논의의 근거로 삼으라는 문제다.


이를 쓰기 위해서는 (가)와 (나)제시문이 가지고 있는 문제의식상 가장 핵심적인 차이에 착안해야 한다.


먼저 (나)제시문에서는 '진실'을 말하고 있는 데 반해 (가)제시문의 필자에게 궁금한 것은 결코 그 '진실'의 사실성 여부가 아니다.


오히려 (가)제시문 필자에게 중요한 것은 그 '진실'이 가지고 있는 은폐된 목적이며,'진실'이 만들어지는 권력장(權力場)의 메커니즘이다.


그리고 '진실'의 이름으로 저질러지는 폭력이다.


그렇다면 (가)제시문에 근거하여 (나)제시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영웅 중심적 역사관을 비판할 때,그것이 승자 중심의 기억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전체상을 담을 수 없다는 점을 지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가)제시문의 입장 속에서는 도달할 수 없는 '진실'을 (나)제시문에서는 전제하고 있다는 점을 핵심적인 포인트로 삼을 수도 있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실상 (가)제시문의 경우 (나)제시문에서는 너무나 당연해서 의심의 대상조차 될 수 없었던 전제를 의심하고 있으며,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효과에 대해서 묻고 있기 때문이다.


바로 이 점에 대해서 언급할 수 있다면 글쓰기에 성공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3]을 풀기 위해서는 근대적인 공교육의 장에서 활용되는 교과서가 가지고 있는 여러 기능을 일반화해서 인식할 수 있어야 한다.


그럴 수 있다면 중국의 동북공정이나 일본의 극우적 역사 왜곡이 역사를 객관적으로 인식하는 데 실패했다는 점을 비판하는 것에 그칠 수는 없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한국의 역사교과서에 녹아 있는 역사 왜곡의 가능성까지도 열어놓고 볼 수 있어야 한다.


문제에서 요구하는 중요한 점은 어떤 것이 객관적인 사실이냐의 여부가 아니다.


교과서의 구체적인 내용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교과서적 역사 서술 그 자체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지위가 더 중요할 수 있다는 점이다.


[문제3]은 이 같은 사실에 대한 근본적인 문제 제기라고 볼 수 있다.


정일권 (초암논술아카데미 논술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