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인(all-in)은 사리에 맞지 않는 용어이니 사용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연초에 노무현 대통령이 뜬금없이 '올인'을 화두로 꺼냈다.

물론 그가 순수하게 외래어로서의 '올인'을 언급한 것은 아니다.

'정치 올인'이니 '경제 올인'이니 하는 표현이 정부정책을 왜곡해 전달한다는 지적을 담은 주문이었다.

청와대는 2003년에도 정책프로세스니,국정과제 태스크포스니 하는 조직 명칭을 업무과정개선,국정과제담당 식으로 고친 적이 있다.

그때도 청와대의 이 같은 인식 전환은 민간단체인 '우리말 살리는 겨레모임'에서 한글날을 앞두고 청와대 비서실을 '우리말 훼방꾼'후보로 올린 게 직접적인 발단이 됐었다.

'올인'은 본래 도박에서 돈을 모두 잃은 상태를 뜻하거나 갖고 있는 돈을 한판에 모두 건다는 뜻으로 쓰이는 용어다.

이 말은 2003년 초 한 방송국에서 드라마 '올인'을 방영하면서 일반에 급속히 전파됐다.

그러다 2004년 17대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이나 정부에서 'OO에 올인'식으로 앞다퉈 쓰기 시작하면서 용도가 무분별하게 확장되더니 지금은 '어떤 것에 모든 역량을 쏟아붓는 상황'을 나타내고 싶을 때 두루 쓰이는 말로 자리잡았다.

전에는 '총력을 기울이다' '전력투구하다'란 말로 설명되는 상황에서 지금은 '올인'으로 통하는 것이다.

국립국어원에서 뒤늦게 다듬은 말로 '다걸기'를 제시했지만 아직 '올인'을 대체하기에는 역부족인 것 같다.

'웰빙'도 2003년 중반을 지나면서 급격한 쓰임새를 보인 외래어다.

이 말이 신문지상에 오른 것은 2001년 초다.

처음에는 상품이나 상호명으로 간혹 소개됐었는데 당시에는 별로 주목받지 못했다.

그러다 건강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웰빙가전''웰빙주택' 식으로 의식주와 관련된 사회생활 전 분야로 쓰임새가 확산돼 하나의 신드롬을 형성했다.

이 말 역시 국립국어원에서 '참살이'로 다듬었지만 그 세력은 미미한 형편이다.

국립국어원은 2004년 7월부터 '모두가 함께하는 우리말 다듬기'사이트(www.malteo.net)를 개설해 함부로 쓰이는 외래어,외국어를 대상으로 순화작업을 펴왔다.

지금까지 모두 70여개에 이르는 외래어를 우리말로 다듬었다.

위에 나온 것 외에도 '스크린도어→안전문,파이팅→아자,메신저→쪽지창,포스트잇→붙임쪽지,내비게이션→길도우미' 등이 대표적인 것이다.

지난 연말에는 그 가운데 가장 잘 다듬었다고 평가받는 것을 뽑았는데 '누리꾼(네티즌)'이 최고의 말로 선정됐다.

외래어라고 무조건 배척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말도 자꾸 개발하고 사용해 외래말과 경쟁할 수 있는 토대는 마련해야 한다.

그래야 언어에서도 역(逆)차별이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나머지는 언중의 선택에 맡기면 될 것이다.

웰빙이나 올인 같은 말이 처음에는 강력한 부상어(浮上語)였지만 어느새 상투어가 되다시피 한 것처럼,참살이나 다걸기가 지금은 어색해도 자꾸 써서 익어지면 정겨운 말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것이 말의 속성이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