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를 공부하는 이유는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우리가 처한 현실은 과거로부터의 연속선 상에서 어떤 과정의 반복과 진보로 이루어진다.

따라서 보다 나은 삶을 위해서는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를 통해 먼저 현실을 정확하게 이해할 필요가 있으며,또한 무엇인가 교훈을 얻어 미래에 대한 방향을 설정해야 한다.

경제도 예외가 될 수 없다.

오늘 우리가 처한 경제적 현실을 제대로 파악해야 올바른 방향으로 미래를 개척할 수 있다.

경제현실을 제대로 파악한다는 것은 우리가 어떤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여기에 바로 경제사의 역할이 있다.

미국의 경제사학자인 매클로스키는 "경제사가 경제학 공부에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경제사에는 풍부한 경제적 사실(economic facts)이 존재하고,이를 근거로 한 경제이론의 형성과 검증은 우수한 경제이론을 만들어낼 수 있다"고 주장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바 있는 경제사학자 노스도 "경제 변화의 속성에 대한 이해를 높이기 위해서는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유일한 실험실을 잘 활용할 필요가 있다.

그 실험실은 바로 과거다"라고 설파했다.

그동안 경제사는 역사적 과정에서 경제와 관련된 부문을 다루는 것으로 인식돼왔다.

실증사학의 전통에 입각해 수집 가능한 통계자료를 이용함으로써 전체 역사의 한 부문으로서 경제적 측면에 대한 분석을 해 왔던 것이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 이른바 신경제사학(new economic history)이라는 방법론이 등장하면서 경제사를 경제학의 한 분야로 인식하게 되었다.

신경제사학은 역사적 과정으로서의 경제 변화를 이론에 입각해 분석하고자 시도하였다.

경제 변화를 그 자체로서 서술하기보다는 이론에 근거하여 변화의 내용을 설명하고 인과관계를 밝히고자 한 것이다.

신경제사학자들은 이렇게 함으로써 그동안 실증주의적 전통에 따른 경제사 연구에서 잘못 해석되어 왔던 것들을 바로잡을 수 있게 되었다고 주장한다.

예를 들어 1833~1836년 미국의 물가는 28% 정도 상승했다.

그때까지 유례가 없을 정도로 큰 폭의 물가 상승을 놓고 경제사학자들은 은행들이 지폐를 남발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당시 미국은 금은본위제를 채택하고 있었고 따라서 은행에 금이나 은을 맡기면 은행은 이를 근거로 지폐를 발행해 화폐로 유통시킨 것이다.

그런데 은행들은 자사가 보유한 금이나 은의 규모에 비해 이전보다 훨씬 높은 비율로 지폐를 유통시켰고,이것이 물가 상승을 초래했다고 보았던 것이다.

이에 대해 신경제사학자들은 '만일 은행들이 지폐를 남발해서 물가가 올랐다면 금은 준비금에 대한 지폐의 비율이 변했어야 한다'고 보고 이를 체크해 보았다.

그러나 실제로 준비금에 대한 지폐의 비율은 일관성 있는 추세적 변화를 보이지 않았고,따라서 물가 상승은 지폐의 남발이라기보다는 통화량 그 자체가 증가한 데 원인이 있었다.

즉 어떤 이유에서건 통화로 쓰이고 있던 금은의 미국 내 규모가 증가했고,이를 근거로 지폐발행액 또한 증가함으로써 물가가 상승했다는 것이다.

이러한 분석은 통화량이 증가하면 물가가 상승한다는 화폐수량설에 의해 명확하게 설명될 수 있는 경제현상인 것이다(이 사례에 대해서는 나중에 자세히 설명한다).이처럼 신경제사학에서는 경제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설명하면서 가능한 한 명확한 이론적 근거를 보여주고자 한다.

이는 거꾸로 말하면 경제사를 통해서도 경제학이론에 대한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말이다.

노스와 함께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포겔은 '미국 경제사의 재해석'이라는 책을 쓰면서 서문에 '경제원론을 공부하려는 사람은 이 책을 이런 순서로 읽어라'라는 설명을 자세히 하고 있을 정도다.

앞으로 경제사에 등장하는 경제분석을 가지고 경제이론이 실제로 경제현상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데 어떻게 활용되는지 살펴보고자 한다.

대체로 중세 이후부터 산업혁명,19세기 국제경제의 등장,대공황,그리고 2차대전 이후의 브레튼 우즈 체제까지 시간의 흐름을 따라갈 것이다.

역사에 나오는 이야기에 경제분석의 옷을 입힌다면 경제학 공부가 조금은 더 재미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