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윤배 전 숭실대 총장이 소천받았다.'(2002년 10월28일) '덕명 스님이 입적했다.'(2003년 12월3일) '교황께서 선종했다.'(2005년 4월3일)

'소천 입적 열반 선종….' 모두 죽음을 가리키는 말이다. 이들 외에도 '사망 별세 타계 서거 운명 비명 붕어 승하' 등 우리말에는 죽음을 나타내는 말이 많다. 고유어로는 '죽다'에서부터 '숨지다,돌아가시다,세상을 뜨다,숨을 거두다' 등 다양하게 표현된다.

뜻은 모두 한가지지만 각각 쓰이는 환경이 다르다. 소천이나 선종 열반 붕어 등은 특정 대상에만 쓰이는 특수한 단어다. 사망 별세 타계 서거 운명 따위도 일반적으로 두루 쓰이는 것 같지만 상황에 따라 크고작은 차이가 있다. 일종의 계급어인 셈이다.

이들은 대개 엄격한 신분질서를 요구했던 지난날 유교문화의 잔재라 할 수 있다. 다같은 '죽음'이지만 평민은 사(死)고 임금은 붕(崩)이었던 게 대표적이다. 붕어(崩御)라는 말은 임금이 세상을 떠나는 것이다. 승하(昇遐)라고도 한다.

사망(死亡)은 말 그대로 '죽는 것'을 가리키는데 특별히 높이거나 낮추는 뜻이 없는,가장 일반적인 단어다. '교통사고로 버스 승객 3명이 사망했다'처럼 쓰인다. 이를 높여 이를 때 별세(別世) 또는 서거(逝去) 타계(他界)라 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귀인(貴人)의 죽음을 나타낼 땐 타계(他界)를 쓴다. '인간계를 떠나 다른 세계로 간다'는 뜻이다.

'서거'는 별세보다 좀 더 의례적인 표현이다. 따라서 박정희 대통령처럼 비명에 간 경우에는 타계보다는 서거가 자연스럽다. 이에 비해 지난해 11월 세상을 떠난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 박사는 타계가 어울린다.

'소천(召天)'은 기독교에서 쓰는 말이다. '하나님의 부름을 받아 소천하셨다'식으로 쓰인다. '선종(善終)'은 가톨릭 용어로 '(사람이) 죽는 것'을 이른다. 이 말이 세상에 부각된 것은 2005년 4월2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타계하면서다. 당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서 교황의 죽음을 나타내는 용어로 천주교의 오랜 관습에 따라 '선종'을 쓰기로 결정했다. 이는 '선생복종(善生福終)'의 줄임말이다. '입적(入寂)'이란 승려가 죽는 것을 말한다. 열반(涅槃)이나 입멸(入滅)이라고도 하는데 같은 말이다.

이 가운데 특이한 단어는 '소천'이다. 이 말은 사전에도 없고 정상적인 조어도 아니라는 점에서 그렇다. 기독교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음'이란 뜻으로 쓰는 이 말은 한자로 하면 '召天'이다. 하지만 '召天'은 '하늘을 부름'이란 뜻은 돼도 '하늘의 부름'은 아니다.

이에 해당하는 한자어를 만들려면 차라리 '天召'가 맞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한글학자 정재도 선생은 "소천이란 말은 '죽음'을 나타내는 전통적인 한자어 '승천(昇天)'을 본떠 기독교식 의미를 억지로 집어넣어 만든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