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신문 1월17일자 A1면

충남도는 지난해 5월 현대INI스틸이 제출한 충남 당진 송산지방산업단지(96만평) 지정 신청서에 대해 16일 최종 승인 결정을 내렸다.

이로써 포스코의 포항·광양제철소에 이은 국내 세 번째 일관제철소 건설이 본격화된다.

현대INI스틸 관계자는 이날 "최근 호주 광산업체인 BHP빌리턴으로부터 10년간 제철용 철광석과 유연탄을 공급받기로 양해각서(MOU)를 맺은 데 이어 부지까지 확보해 오는 2011년 일관제철소 가동 계획이 실현되게 됐다"고 말했다.

현대INI스틸이 5조원을 투자,연산 700만t 규모의 일관제철소를 건설하면 현대차그룹은 현대하이스코와 BNG스틸 등을 합해 연간 총 2180만t의 철강재 생산량을 확보해 세계 6위의 철강 그룹으로 도약하게 된다.

김홍열 기자 comeon@hankyung.com


현대INI스틸의 일관제철소(一貫製鐵所) 건설 사업은 포스코의 포항,광양제철소에 이어 이번이 국내 세 번째다.

나머지 철강 업체들은 고로 없이 전기로(고철을 녹이는 가마)만 갖고 있거나 아예 가마 없이 핫코일을 원료로 최종 완제품만 생산하고 있다.

현대의 일관제철소가 완공되면 국내 고로제품 시장은 기존의 포스코와 함께 경쟁체제를 갖추게 된다.

한마디로 그동안 유지돼온 포스코의 독점체제가 무너지게 되는 셈이다.

뿐만 아니라 현대INI스틸은 일관제철소에서 생산된 고급 철강재를 계열인 현대·기아차에 공급함으로써 상당한 시너지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현대그룹 '30년 숙원' 용광로의 꿈 실현

지난 1996년 1월3일 정몽구 현대그룹 회장은 신년사에서 제철사업 진출 의지를 강력하게 내비쳤다.

정 회장은 "세계 경쟁력을 갖추고 소비자를 보호하는 것은 자동차 특수강에 달려 있으며 2000년대가 되면 현대그룹은 연간 500만t의 철강이 필요하다"면서 "포스코에 의존할 수만은 없는 것 아니냐"고 강조했다.

부친인 정주영 명예회장의 영향력이 막강했던 당시 정 회장에게 맡겨진 사명은 '제철'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 회장은 1986년 12월 인천제철 대표를 맡으면서 '철'과 인연을 맺었지만 현대그룹을 둘러싼 정치ㆍ사회적 여건은 만만치 않았다.

정 회장은 경남 하동 등지에 부지를 확보해 놓고도 1997년 말 정부 결정에 따라 뜻을 접어야만 했다.

당시 정부는 철강의 공급 과잉이 우려될 뿐 아니라 고로방식은 과거 기술이며 환경 오염도 유발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현대차그룹 출범 후 2001년 벌어진 포스코와의 '핫코일 전쟁'은 제철사업 진출의 또 다른 의지였다.

한마디로 쇳물에서 철강까지 이어지는 일관제철소 건립은 정 명예회장이 1977년 현대제철 건설 계획을 발표한 이후 계속돼온 현대가의 숙원이었다는 얘기다.

정 회장은 현대·기아차를 글로벌 강자로 부상시킨 데 이어 제철사업 참여라는 30년 숙원을 이룩해낸 셈이다.

◆당진제철소 엄청난 경제적 파급효과 기대

당진제철소는 많은 경제적 파급효과를 가져올 전망이다.

우선 현대ㆍ기아차는 철강에서 자동차까지 수직생산 체제를 구축,제때 우수한 품질의 원자재를 확보함으로써 경쟁력을 크게 끌어올릴 수 있게 됐다.

당진제철소가 완공될 경우 철강재 수입대체 효과가 대략 4조원에 이르며 직·간접적인 고용 창출 효과만도 20만명을 넘어설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포스코와 선의의 경쟁을 벌일 경우 국내 철강산업의 질적 발전에도 한몫할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우리 철강업체들은 열연과 슬래브 등 주요 철강재를 연간 700만t이나 수입하고 있다.

조선이나 가전 자동차 기계 등 연관산업과 지역 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 또한 엄청날 것으로 기대된다.

더욱이 자동차 등 철강 다소비 산업분야에서 고부가가치 제품 위주의 신규시장이 창출될 것이란 분석까지 나오고 있다.

포스코와 현대INI스틸의 연구·개발(R&D) 강화로 새로운 철강제품의 수요가 창출되면 국내 철강업계의 기술경쟁력도 제고될 것으로 전망된다.

◆현대 제철사업 넘어야 할 산 많다

그러나 현대가 제철사업에서 성공하기 위해서는 풀어야 할 과제 또한 많은 게 사실이다.

우선 후발 주자로서 기술력을 확보하고 철광석 석탄 등 원자재를 효율적으로 조달하는 것은 물론 날로 높아가는 환경 규제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않으면 안 된다.

세계 철강업계가 인수·합병을 통한 몸집 불리기 등 전쟁을 방불케 하는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에서 당진제철소가 700만t 규모로 과연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느냐 하는 것도 숙제다.

때문에 일부에서는 현대의 제철사업이 자칫하면 현대ㆍ기아차의 경쟁력에 도움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부담이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중국의 저가 물량공세로 인해 철강시장이 소용돌이에 휩싸여있는 실정이고 보면 이 같은 우려가 현실화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뿐만 아니라 현대와 포스코 간 경쟁이 과당ㆍ과열로 치달을 경우 둘 다 치명적인 타격을 입고 이로 인해 국내 철강산업 전체가 곤경에 빠질 수도 있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hankyung.com


■ 용어 풀이

◆일관제철소=철강을 만드는 공정은 제선ㆍ제강ㆍ압연의 세 공정으로 나뉘어진다.

제선이란 원료인 철광석과 유연탄 등을 커다란 가마(고로)에 넣어 액체 상태의 쇳물을 뽑아내는 것이며,제강은 쇳물에서 각종 불순물을 제거하는 작업이다.

압연이란 쇳물을 슬래브(커다란 쇠판) 형태로 뽑아낸 후 높은 압력을 가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공정을 모두 갖춘 곳을 일관제철소라 한다.

◆핫코일(hot coil)=슬래브를 가열해 두께가 얇은 코일로 만드는 과정이 열간압연이며 이를 통해 생산된 것이 중간소재(반제품)인 핫코일(열연코일)이다.

열연코일을 더 얇게 만들고 표면을 매끄럽게 처리한 것이 냉연코일이다.

◆코렉스공법=오스트리아의 배스트 알핀사가 개발한 최신 용융환원제철공법.고로 방식의 경우 철광석을 굵은 덩어리로 만들기 위해 한번 쪄주는 소결 공정과 유연탄을 코크스로 만드는 코크스 공정 등을 거쳐야 하는 데 비해 코렉스공법은 이러한 선공정을 없애고 철광석과 무연탄을 미세가루로 부숴 곧바로 코렉스로에서 태우는 방식이다.

용광로 내에서 쇳물을 흘리는 과정에서 용융과 환원 반응을 유도,고순도 쇳물을 만드는 게 코렉스로의 원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