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1월18일 신년 대국민 연설에서 兩極化 해소를 위한 재원 마련 차원에서 세금을 인상할 필요성이 있음을 강력히 시사했다.

1주일 만인 지난주 25일에는 "당장의 증세는 없다"고 입장을 바꾸었지만 대통령의 회견을 계기로 '복지를 위한 세금인상이 양극화 해소의 올바른 방법인가'를 놓고 논란은 달아오르고 있다.

경제 전문가들은 세금을 올려 양극화를 해소한다는 데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다.

섣부른 세금인상은 민간소비를 줄이고 기업의욕을 위축시켜 일자리를 오히려 축소시킬 가능성이 크다는 이유에서다.

일자리가 줄어들면 양극화는 더 심화되게 마련이다.

세금인상보다는 정부가 규제완화 등을 통해 민간의 활력을 높임으로써 일자리를 늘리는 게 양극화 해법의 正道라는 목소리가 크다.

◆ 노 대통령 '세금인상' 시사

노 대통령은 대국민 연설에서 "(양극화 해소를 위한) 財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며 "어디선가 재원을 조달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호소했다.

또 "(재원 마련을 위해) 세금을 올리자는 사람은 없다"며 "(그러나 예산을) 아끼는 정책만으로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근본적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도 말했다.

이를 놓고 노 대통령이 '세금 인상'을 강하게 암시한 것이란 해석이 일반적이었다.

'세금을 올리겠다'는 말을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迂廻적으로 국민들의 조세부담 인상을 통해 양극화 해소 재원을 마련하겠다는 의지를 분명히 했다는 것이다.

정부가 어디엔가 쓸 돈을 조달하는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정부의 부담으로 빚을 내는 수단인 國債를 찍어내든가,국민들로부터 세금을 더 걷는 것이다.

그러나 국채를 발행하는 것은 여러모로 쉽지 않다.

국채발행은 재정을 악화시키고 국가채무를 늘려 정부의 건전 재정정책을 무력화시킨다.

국가채무는 이미 올해 280조원에 달해 국내총생산(GDP) 대비 31.9%에 이를 정도로 심각하다.

게다가 국채발행은 시중의 돈을 정부가 빨아들이는 것이므로 그만큼 민간이 쓸 돈을 줄여 경제 활력을 떨어뜨릴 수 있다.

소위 驅逐효과(Crowding out effect)가 나타난다.

이는 대통령이 연설에서 강조한 '일자리 창출'에 역행하는 것이다.

국채발행이 아니라면 남은 대안은 결국 세금인상뿐이다.

정부가 지금 강구할 수 있는 복지재원 조달 방법이 세금인상밖에 없다는 점은 어느 정도 이해가 된다.

◆ 세금인상은 '독약'이 될 수도

노 대통령이 양극화 해소를 위한 방법으로 암시한 세금인상은 결국 중산층 이상과 '잘나가는' 기업들이 빈곤층을 위해 세금을 더 내라는 얘기다.

지금도 개인과 자영업자 중 세금을 제대로 내는 사람은 소득계층상 중간 이상이고,법인세도 이익을 내는 회사만 납부한다.

대통령은 이들에게 '고통 分擔'을 요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이런 접근법은 '위험한 발상'일 수도 있다.

돈 많이 버는 기업과 사람들로부터 많은 세금을 걷어 어려운 기업과 저소득층에 나눠주는 것은 도덕적으로 정당하게 보이고 더구나 당장의 효과를 볼 수는 있다.

국민 정서에도 부합되는 달콤한 방법이기도 하다.

문제는 이런 방법이 근본적인 대책이 될 수는 없다.

또 복지지출에 치중하는 해법은 오히려 양극화를 더 심화시킬 수도 있다.

과중한 세금을 부담해야 하는 사람들은 근로의욕이 떨어지고 혜택을 받는 사람들은 크든 작든 依他心이 생기게 된다.

그러면 경제와 사회전반이 무기력증의 함정에 빠질 수 있다.

무기력증에 빠진 경제와 사회는 양극화를 해소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화시킨다.

세금인상을 통한 복지확대는 대증요법에 그칠 뿐 종국에는 모두에게 '독약'이 될 수 있다는 말이다.

복지 선진국들이 저성장과 고실업의 함정에 빠져 있는 것이 좋은 사례다.

◆ 성장하면 분배는 개선돼

양극화 문제를 해결하는 핵심은 노 대통령도 인정했듯이 결국 '일자리'다.

일자리는 경제가 성장해야만 늘어난다.

양극화 해소의 열쇠는 잠재성장률을 넘어서는 성장률을 달성해야 가능하다.

과거의 예를 봐도 그렇다.

우리나라는 지난 1980년대와 90년대 중반까지 계층 간 소득분배가 지속적으로 개선돼 왔다.

貧富隔差 정도를 보여주는 지니계수(0~1 사이의 값으로 낮을수록 소득분배가 잘된 것)는 지난 1982년 0.31 수준에서 90년대 중반엔 0.28% 정도까지 낮아졌다.

이 기간 중 연간 6~9%의 높은 성장을 지속해 고용이 늘었기 때문이다.

양극화가 심화된 외환위기 이후에도 성장률이 높았던 2000~2002년 중엔 지니계수가 떨어지다 경기가 침체된 2003년부터 다시 올라가기 시작했다.

성장과 소득분배 정도는 밀접한 相關關係를 갖고 움직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양극화 문제의 핵심인 소득분배를 개선하려면 결국 경제성장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점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는 셈이다.

◆'돈 안 드는 고용창출'은 규제완화

양극화 해소를 위해 일자리를 만들려면 규제 완화만 제대로 해도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는 지적이 많다.

전국경제인연합회는 최근 경제부처들의 규제가 1999년 말 2879건에서 2004년 말 3388건으로 늘어 기업의 투자를 가로막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규제만 풀면 정부가 세금으로 공공부문의 일자리를 억지로 만들지 않더라도 더 많은 일자리가 생길 것이라는 주장이다.

예컨대 택배회사들은 최근 몇 년간 연 20%씩 택배 주문이 증가하고 있지만 增車 규제로 화물차를 연 2∼3% 늘리는 데 그쳐 고용 인원을 늘리지 못하고 있다.

또 국토계획 및 이용법상 공장용지에 대한 업종제한으로 중소기업이 활발하게 고용을 창출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기업들의 호소다.

수도권 공장 입지와 출자총액제한 등의 규제를 풀어 기업 투자를 촉진하고 경제성장률을 높이는 게 양극화의 주된 해법이 돼야 한다.

정부가 우선 규제완화와 같이 돈 안 드는 고용창출 해법부터 적용한 뒤 세금인상 얘기를 꺼내는 것이 순서라는 말이다.

또 늘 지적되는 것이지만 낭비성 대형 국책사업과 효과가 檢證되지 않은 복지 예산,선거철을 앞두고 편성되는 선심성 예산,시정되지 않는 중복 예산 등을 해결하지 않고선 어떤 명분으로도 세금인상에 대한 국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없을 것이다.

차병석 한국경제신문 경제부 기자 chab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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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자읽기

ㆍ兩極化 (양극화)
ㆍ正道 (정도)
ㆍ財源 (재원)
ㆍ迂廻 (우회)
ㆍ國債 (국채)
ㆍ驅逐 (구축)
ㆍ分擔 (분담)
ㆍ依他心 (의타심)
ㆍ貧富隔差 (빈부격차)
ㆍ相關關係 (상관관계)
ㆍ增車 (증차)
ㆍ檢證 (검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