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우싸움에 고래등 터진다''얌전한 개 부뚜막에 먼저 오른다'….

글쓰기에서 속담이나 격언을 사용하는 것은 일종의 수사적 영역에 속한다.

수사적 기법은 적절히만 사용하면 글의 흐름에 '긴장'을 불어넣음으로써 시적 완성도를 높이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런데 낯익은 속담이나 격언들 가운데 들여다보면 조금씩 변형돼 쓰이는 것들이 있다.

속담은 고정불변의 것이 아니라 지역이나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라는 말이 있는가 하면 '새우싸움에 고래등 터진다'라는 말도 쓰인다.

이럴 때 두 표현은 서로 바꿔 써도 되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는 틀린 말인까?

앞의 것은 '강한 사람끼리 싸우는 통에 상관도 없는 약한 사람이 중간에 끼어 피해를 입게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에 비해 뒤의 표현은 '아랫사람이 저지른 일로 인해 윗사람에게 해가 미치는 경우'를 나타낼 때 쓰인다.(표준국어대사전) 각각 쓰이는 환경이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두 말 사이에는 선후관계가 있다.

조선 중기 홍만종이 쓴 문학평론집인 순오지(旬五志)를 비롯해 옛 문헌들에는 '경전하사(鯨戰鰕死)''경투하사(鯨鬪蝦死)' 등이 나온다.

('고래싸움에 새우 죽는다는 것은 큰 놈들 싸움에 작은 놈이 화를 입는다는 말이다.'旬五志,東言攷略) 또 이희승의 <국어대사전>에선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를 '남의 싸움에 아무 관계가 없는 사람이 공연히 해를 입게 됨을 이르는 말'로 풀이한다.

'새우 싸움에 고래등 터진다'란 말도 올라 있는데 뜻풀이는 <표준국어대사전>과 달리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와 똑같이 해놨다.

하지만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가 잘못 쓰인 것인 듯하다"라는 단서를 달았다.

'고래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가 원래의 말이었음을 짐작케 하는 근거다.

그러던 것이 시간의 흐름에 따라 새로운 의미 부여와 함께 '새우싸움에 고래등 터진다'란 변형된 문장이 나온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얌전한 개 부뚜막에 먼저 올라간다'에서는 사람에 따라 조금씩 어색하게 느끼기도 할 것이다.

이 말은 지역에 따라 또는 언어경험에 따라 '얌전한 고양이/강아지 부뚜막에…'로 더 많이 쓰이는 것 같다.

모두 사전에 올라 있는 표현으로 두루 써도 괜찮다.

속담이란 시대에 따라 그 의미가 중요한 것이지,표현이 강아지가 됐든 고양이가 됐든 그것은 별 상관이 없다는 뜻이다.

말이란 시대에 따라 언중의 필요에 의해 새로 변형돼 쓰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