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시경제학은 경제 전체의 흐름을 연구하는 것이기 때문에 보는 시각에 따라 다양한 견해가 있을 수 있다.

오늘날 거시경제학의 양대 조류라고 할 수 있는 고전학파와 케인스학파는 경제에 대한 진단 및 처방과 같은 거의 모든 측면에서 이론적으로 대립하고 있다.

거시경제의 구조와 흐름에 관한 이론에서부터 정책의 효과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는 것이다.

경제정책 효과에 대한 두 학파의 견해는 거의 정면충돌 수준이다.

한마디로 요약하면 고전파 학자들은 금융정책이,케인스학파 학자들은 재정정책이 유용하다고 주장한다.

이 가운데 케인스학파가 말하는 금융정책에 대해 알아보자.

정부는 여러 가지 정책을 통해 경제를 바람직한 상태로 유도하고자 한다.

경제가 침체 상태에 있으면 고용이 늘어나고 생산이 증가하도록 하는 정책을 쓰고,과열 상태에 있으면 물가를 안정시키고자 한다.

대표적인 정책으로는 조세수입과 재정 지출을 조정하는 재정정책과 통화량이나 이자율을 조정하는 금융정책이 있다.

그러나 어떤 정책이 효과가 있는지에 관해서는 앞서 언급한 대로 고전학파와 케인스학파 사이에 지난 수십년 동안 논쟁이 이어져 왔다.

케인스학파 경제학자들은 금융정책이 그다지 효과가 없음을 주장하는데,이 같은 주장의 근거로 내세우는 이론이 바로 유동성 함정이다.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조절하더라도 생산이나 국민소득의 변화에 영향을 줄 수 없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정부가 통화 공급의 확대를 통해 국민소득의 증가를 꾀하고자 하는 경우를 살펴보자.이 같은 금융정책이 국민소득 변화에 영향을 주기 위해서는 화폐시장에서 통화 공급이 늘어남으로써 돈의 가격이라고 할 수 있는 이자율이 하락해야 한다.

이렇게 되면 기업들은 값이 싸진 자본을 이용,투자를 늘림으로써 경제 전체의 생산이 늘고 소득이 증가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화폐시장에서 화폐에 대한 수요는 이자율에 따라 달라진다.

이자율이 높아지면 은행에 예금을 늘리려 하기 때문에 화폐에 대한 수요는 감소하고 이자율이 낮아지면 반대로 화폐에 대한 수요가 증가한다.

여기서 만일 이자율이 매우 낮은 상태에 있으면 화폐 수요의 이자율 탄력성이 매우 높아진다.

다시 말해 이자율이 '매우' 낮기 때문에 사람들은 더 이상 은행에 돈을 예치하는 것을 고려하지 않고 모든 돈을 현금으로 가지고 있으려 한다.

즉 화폐에 대한 수요는 이자가 조금만 변해도 큰 폭으로 변하는 상황이 되는 것이다.

이것을 세로축이 이자율이고 가로축이 통화의 수급량인 평면에 그래프로 그리면 아주 낮은 이자율 수준에서 화폐에 대한 수요곡선이 수평선이 되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게 되면 화폐 수요곡선이 수평선인 부분에서는 정부가 통화 공급을 늘려도 이자율이 더 이상 낮아질 수 없는 상황이 된다.

결국 앞서 설명한 금융팽창정책이 이자율을 낮추고 투자를 늘림으로써 소득을 증대시키는 정책적 효과를 내는 데 아무런 소용이 없게 되는 것이다.

마치 정부의 정책이 함정에 빠진 것 같다고 해서 이를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이라고 한다.

유동성 함정은 물론 이자율이 아주 낮아서 정책적 효과가 발생하지 않는 극단적인 경우를 설명하고 있는 것이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이야기는 아니다.

1990년대 일본 경제가 장기 침체에 빠져 있을 때 일본의 이자율은 거의 0에 가까울 정도로 낮았다.

당시 일본 정부는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 여러 가지 정책적 처방을 내놓았지만 경제는 회복되지 못했고,이를 두고 일본 경제가 일종의 유동성 함정에 빠진 것으로 해석한 경제학자들이 있었다.

2003년을 전후한 미국 경제의 침체기에 미국의 금리가 낮아지고,우리나라에서도 저금리 기조가 이어지면서 일본과 같은 수준은 아니었지만,유동성 함정에 대한 우려가 일부에서 제기되기도 했다.

다행히 경기가 회복되면서 금리가 조금씩 회복되고는 있다.

금리가 낮아지면 주로 돈을 빌려 쓰는 기업의 입장에서는 좋겠지만,너무 낮아지면 좋은 것만은 아닌 모양이다.

'너무'라는 말이 들어가서 좋은 것은 없다.

한국외국어대 경제학과 교수 tsroh@hufs.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