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걷어붙였다''맨발 벗고 뛰어라' '종아리 걷어!''문 닫고 들어와''민원이 봇물이다.'

우리말 가운데는 일상적으로 흔히 쓰이지만 들여다보면 비논리적인 표현들이 꽤 있다.

"분에 못 이긴 장정 댓 명이 팔을 걷어붙이며 앞으로 내달았다."(현기영,'변방에 우짖는 새')

'팔 걷고 나서다,팔을 걷어붙이다'라고 하면 '어떤 일에 적극적으로 나서다'란 의미다.

그런데 팔이야 걷어붙일 수 있는 대상이 아니다.

본래는 '소매를 걷어붙이다'라고 하는 말이 정확한 표현이다.

하지만 현실적인 쓰임새에서 '소매를 걷어붙였다'라고 하는 이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대개는 '팔을 걷어붙였다'라고 한다.

그래서 사전에선 이 말을 관용구로 처리했다.

함께 쓰이는 말로,틀린 표현이 아니라는 뜻이다.

'맨발 벗고 나서다'도 비슷한 경우다.

맨발은 이미 발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이므로 '맨발을 벗는다'란 표현은 어불성설이다.

하지만 이 역시 관용구로 사전에 올라 있다.

이런 것들은 말의 논리성 여부를 떠나 사람들이 워낙 많이 써서 관용적으로 굳은 말이 된 것이다.

관용구란 2개 이상의 단어가 모여 각각의 의미만으로는 전체의 뜻을 알 수 없는,특수한 뜻을 나타내는 어구를 말한다.

가령 "그 사람은 발이 넓어"라고 하면 발 자체가 넓다는 뜻이 아니라 사교적이어서 아는 사람이 많다는 뜻으로 전이돼 쓰인 것이다.

관용구가 되기 위해서는 본래 의미에서 확장된,새로운 의미를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 요지다.

이에 비해 비슷한 유형이지만 아직 사전에 오르지 못한 표현도 있다.

가령 '종아리 걷어라''문 닫고 들어와라''봇물이다' 같은 말이 그런 것이다.

이들도 일상에서 많이 쓰이는 비논리적 표현이지만 앞의 경우들과는 좀 다르다.

우선 '봇물'이란 '보(洑)에 괸 물,또는 거기서 흘러내리는 물'을 가리킨다.

그래서 이 말을 제대로 쓰려면 '연초부터 공공요금 인상이 봇물 터지듯 한꺼번에 이뤄지고 있다'와 같이 '터지다'란 말과 함께 써야 한다.

하지만 대개는 뒷말은 자르고 '봇물이다''봇물처럼…'식으로 말한다.

'봇물 터지다'란 말은 단어 그대로 '봇물'이 '터지는' 것을 뜻하는 게 아니라 어떤 현상이 크게 나타나는 것을 비유해 하는 말이므로 관용구로 올라설 자격이 있지만 아직 사전엔 오르지 않았다.

다만 비교적 구어체 말을 많이 싣고 있는 <연세한국어사전>에선 이를 연어(連語)로 처리했다.

연어란 '두 개 이상의 단어가 결합해 더 복잡한 관념을 나타내는 말'이다.

따라서 이 말은 관용구가 되기 이전 상태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종아리 걷다'나 '문 닫고 들어와'란 말은 새로운 의미로 쓰이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관용구로 흡수되지 못한다.

엄격히 말하면 이들은 단순히 잘못 쓰는 말임에 불과하다.

'과학적 글쓰기'는 이런 비논리적 표현들을 걸러내는 데서 출발한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