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년은 해현경장(解弦更張)의 해였으면 하는 소망이다."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날이 며칠 남지 않았다. 올해 마지막 '말짱 글짱'은 시점을 앞당겨 새해 들면 한마디씩 나오는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덕담을 소재로 살펴봤다. 이 말은 모당 원내대표가 지난해 1월3일 열린 당 상임운영위원회의에서 던진 말이다. 그는 "'거문고 줄을 풀어서 다시 맨다'는 뜻인데,개혁이 필요할수록 거문고 줄을 다시 매는 지혜가 필요하다"고 직접 뜻풀이까지 했다.

우리의 관심은 이 말의 문장 구조에 있다. 얼핏 보면 넘어갈 수도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어딘지 어색한 것을 발견하게 된다. 표면적으로는 '금년은'이 주어,'소망이다'가 서술어인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금년은 … 소망이다'는 의미적으로 주술관계를 구성하지 못한다. 각각 주어와 술어로 쓰이긴 했지만 서로 어울리지 않는 따로국밥이다.

이런 형태의 문장을 '명사문의 형태를 취한 비정상적 명사문'이라고 한다. 명사문이란 우리말 구성의 3대 형태 중 하나인 'A가 무엇이다' 꼴로 된 문장을 말한다.

요즘 이런 비정상적 명사문이 신문방송에서 많이 쓰이다 보니 일상 어법에까지 확산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논리적인 글에서는 피해야 할 표현이다.

이런 문장이 자연스럽지 않은 이유는 주어가 드러나 있지 않기 때문이다. '금년은'은 '… 해였으면'까지로 구성되는 내포절(부사절)의 주어일 뿐 전체문장의 주어가 아니다. 의미적으로 '… 해였으면 하는'의 주체는 '화자(話者·원내대표)'다. 또한 '소망'의 주체도 '화자'이므로 이 문장의 기저(基底)형은 '금년은 … 해였으면 하는 게 나의 소망이다' 정도로 잡을 수 있을 것이다. 심층구조에선 이렇게 쓰였을 것으로 보이는 문장 형태가 주체가 사라지면서 맨 앞에서 보인 것처럼 이상한 명사문이 된 것이다.

'교육현장이 혼란의 소용돌이에 휩싸일 수도 있다는 분석이다.''이 회사는 무사히 분양을 마칠 전망이다.''복지부는 출산율이 너무 떨어져 사회 전반에 많은 부작용이 예상된다는 주장이다.' 이런 것들이 모두 같은 유형의 함정에 빠진 비정상적 명사문이다.

이런 문장은 주체를 드러내지 않음으로써 자신의 견해를 분명히 밝히지 않는 효과를 가져온다. 그래서 자신이 없거나 이해관계가 상충하는 얘기를 할 경우 일반화(generalization)에 기대어 슬그머니 넘어가고 싶을 때 많이 사용된다. 정치적 언사에 이 같은 말투가 많은 것은 그런 까닭이다. 논리적인 글이라면 각각 '분석한다/전망한다/주장한다' 식으로 화자의 관점을 명확히 해야 한다. 그 요체는 '주체 살려 쓰기'에 있다.

'과학적인 글쓰기'란 자신의 관점을 정교하고 절도 있는 표현으로 분명히 드러내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자주,그리고 무심코 빠지기 쉬운 오류의 유형을 미리 파악해 숙지해 두는 것도 한 방편이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