갱단 출신의 살인범에서 반폭력 운동가로 변신해 노벨 평화상 후보에 5번이나 이름을 올렸던 '사형수' 스탠리 투키 윌리엄스(51)가 끝내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다. 윌리엄스의 사형은 지난 13일 0시35분(한국시간 13일 오후 5시35분) 캘리포니아주 샌프란시스코 인근 샌틴교도소에서 독극물 주사로 집행됐다.

사형 집행이 확정됐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윌리엄스에게 구원의 손길을 뻗칠 수 있었던 사람은 영화 '터미네이터'의 주인공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영화배우 출신의 아널드 슈워제너거 캘리포니아 주지사였다. 그는 윌리엄스의 사형을 면해달라는 5만여명 명의의 청원서를 뒤로 하고 터미네이터 역할에 충실했다. 터미네이터 슈워제너거는 "고심했지만 청원을 받아들일 만한 정당성을 찾지 못했다"며 윌리엄스의 사형을 예정대로 진행시켰다. 미 연방 대법원도 "윌리엄스가 살인 누명을 썼다"며 또 다른 증인을 내세운 윌리엄스 변호인단의 사형 집행 유예 신청을 기각했다.

◆17세 때 갱단 결성해 25세 때 살인

윌리엄스는 한국으로 치면 한참 논술과 수능 공부를 했을 나이인 17세 때 처음으로 '크립파(Crips)'라는 갱단을 공동 결성했다. 주먹에 일찌감치 눈을 떠서인지 자신이 결성한 크립파는 '블러드파'와 함께 로스앤젤레스를 양분하는 갱단의 양대산맥이 됐다. 크립파는 파란 손수건을 넣고 다녔고 블러드파는 이름처럼 빨간 손수건을 넣고 다녔다고 한다.

크립파를 이끌던 윌리엄스는 1979년 편의점 직원 1명과 모텔을 운영하던 대만계 이민부부 및 그 딸 등 모두 4명을 살해한 주범으로 지목받았다. 윌리엄스도 살인을 저지른 직후 공범들에게 살인 사실을 공공연히 떠들고 다녔다고 한다.

하지만 체포된 뒤부터는 계속 결백을 주장했다. 과거 많은 폭력 사건에 연루된 것은 사실이지만 살인은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거짓말을 하느니 차라리 죽겠다(I would rather die than lie)"고 공언했다. 하지만 1981년 살인죄가 인정돼 사형을 선고받았다.

◆24년간의 반성도 사형은 되돌리지 못해

그는 살인혐의는 부인했으나 갱단을 만든 부분에 대해서는 자신의 잘못을 시인했다. 갱단에 대한 생각만은 180도 달라진 셈이다. 그는 "처음 조직을 만들었을 때는 사람을 괴롭히는 갱단을 일소하겠다는 생각이었다. 그건 전적으로 잘못된 생각이었다. 우리 자신이 그런 괴물 같은 갱단으로 변해갔다"고 후회했다.

그는 이때부터 갱단의 폐해를 담은 책을 쓰기 시작했다. 윌리엄스는 '갱과 마약''갱과 폭력''갱과 무기' 등 청소년에게 폭력조직을 멀리할 것을 촉구하는 책과 아동을 위한 동화책 등을 저술했다. 그 같은 노력이 알려지면서 그의 이야기는 제이미 폭스 주연의 '구원'이라는 TV영화로 제작됐다. 급기야 2001년부터 2006년까지 5회 연속 노벨평화상 후보에 이름을 올렸다.

윌리엄스가 끝내 자신의 살인혐의를 인정하지 않은 걸 두고 세상은 반쪽짜리 반성이라고 여겼을까? 젊은 날 저질렀던 순간의 잘못을 24년간 참회하면서 살았지만 끝내 사형이라는 형벌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반폭력 운동가로 변신한 윌리엄스의 사형을 반대하는 여론과 사형 집행 유예를 요구하는 주장이 부담스러웠는지 교정당국은 이례적으로 윌리엄스의 사형 모습을 공개했다. 물론 윌리엄스의 가족과 사형제 폐지 운동가,언론사 기자 등 40여명에 한해서였다. 윌리엄스가 사형 침대 위에 누운 뒤 숨을 거두는 데 걸린 시간은 22분. 독극물 주사를 놓는 간호사가 윌리엄스의 근육질 팔에서 정맥을 잘 찾지 못한 이 시간이 윌리엄스에게는 생애에서 가장 긴 시간이었는지 모르겠다.

◆다시 떠오른 사형제 폐지 논란

윌리엄스의 죽음 때문에 미국에서는 사형제도에 대한 논란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사형제를 폐지했던 미국은 가석방을 받고 풀려난 살인범이 다시 살인을 저지르는 사건이 많아지자 1976년 사형제도를 부활시켰다. 이후 1999년 사형집행건수가 최고에 이르렀고 지난해에만 사형수 59명이 집행됐다. 윌리엄스도 1978년 사형제가 부활된 캘리포니아주에서 12번째로 처형된 사형수가 됐다.

이제 관심사는 이번 윌리엄스의 죽음이 사형제 부활로 돌아섰던 미국 법의 물꼬를 다시 사형제 폐지 쪽으로 돌리느냐에 있다. 사형제 찬성론자들은 사형제를 통해 범죄를 억제하는 효과를 얻을 수 있고,가해자의 인권보다 피해자의 인권이 존중돼야 한다고 역설한다. 반면 사형제 폐지론자들은 사형제의 범죄 예방 효과가 뚜렷이 입증되지 않은 데다 인간에게 인간의 생명을 다스릴 권리가 부여돼 있지 않다는 논리를 내세우고 있다. 사형을 없애는 대신 종신형을 받은 사람의 경우 가석방을 하지 않거나 가석방을 엄격하게 적용하자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정인설 한국경제신문 사회부 기자 surisur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