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소 우리말 공부를 열심히 하던 생글이가 사전을 찾다 무언가를 발견했다.

여자친구에게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하던 생글이가 어느 날 말했다.

"너는 언제 봐도 참 칠칠맞은 여자야." 그러자 여자친구의 눈초리가 심상치 않아지더니 생글이 눈앞에 별똥이 보였다.

생글이는 칭찬으로 한 말인데 여자친구는 욕으로 들은 모양이다.

칠칠맞다? 이 말은 '칠칠하다'를 속되게 이르는 것인데,결국은 같은 뜻이다.

'칠칠하다'는 '깔끔하고 단정함 또는 반듯하고 야무짐'을 나타내는 말이지만 요즘은 잘 쓰이지 않는,사라져 가는 단어다.

하지만 '칠칠하다'의 속된 표현인 '칠칠맞다'는 일상적으로 많이 쓴다.

'-맞다'는 접미사로서,주로 사람의 심성이나 기질을 나타내는 일부 명사 뒤에 붙어 '그런 심성이나 기질이 있음'이란 의미를 부여한다.

우리말에 이처럼 결합하는 말이 꽤 많은데 '궁상맞다/능글맞다/방정맞다/빙충맞다/쌀쌀맞다/앙증맞다/익살맞다/징글맞다/청승맞다' 등이 모두 같은 유형의 파생어들이다.

문제는 "칠칠맞게 그게 뭐냐"라고 할 때다.

대개는 입말에서 옷차림이나 행동거지가 깔끔하지 않은 사람을 보고 힐난하는 투로 이렇게 말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때는 "칠칠맞지 않게 그게 뭐냐"라고 해야 바른 표현이다.

'칠칠하다/칠칠맞다'는 단독으로는 잘 쓰이지 않고 주로 '못하다,않다'와 어울려 구를 이룬다.

가령 '일처리가 매사에 칠칠치 않다/칠칠치 못하다/칠칠맞지 못하다/칠칠맞지 않다'와 같이 부정형으로 쓰이는 말이다.

여기서 부정어를 생략하면 당연히 본래의 뜻인 칭찬하는 말이 된다.

따라서 '칠칠맞은 사람'이라고 하면 '깔끔하고 단정한 사람' 또는 '일 처리가 야무진 사람'을 가리키는 것이다.

'칠칠하다'는 이 밖에 '나무,풀,머리털 따위가 잘 자라서 알차고 길다'란 뜻도 있는데,이때는 부정어와 어울리지 않고 단독으로 쓰인다.

가령 '검고 칠칠한 머리' 식으로 지금도 제법 쓰이며 "칠칠하게 많다,칠칠하게 좋다" 따위에서는 '아주,매우'의 뜻을 더하는 말로 쓰이기도 한다.

물론 이때는 '-맞다'꼴로 바뀌지 않는다.

우리말에서 부정표현으로 쓰이는 말에는 이 밖에도 '주책없다,안절부절못하다,아랑곳없다,여의찮다,얼토당토않다,엉터리없다,터무니없다,어처구니없다,어이없다,어쭙잖다,채신없다,걷잡을 수 없다' 등 매우 많다.

여기서 '걷잡을 수 없다'를 빼고는 모두 한 단어가 된 말들이다.

'주책없다'에서 '주책'은 주착(主着)이 변한 말이다.

현실언어에서는 '주책이다'도 많이 쓰이지만 표준어는 '주책없다' 하나뿐이다.

따라서 '주책이다'란 말은 규범적으로는 틀린 말이다.

'안절부절못하다'도 무심코 '안절부절하다'로 쓰기 십상이나 반드시 부정어 '못'이 들어가야 한다.

상대가 무관심한 태도를 보일 때 이를 타박하는 투로 "너 왜 그렇게 아랑곳이냐?"라고 한다면 이 역시 잘못된 말이다.

"…아랑곳없냐?"라고 해야 할 것이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