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고전읽기] 오리엔탈리즘과 배타적 민족주의는 닮은꼴

[가] 저는 우리 사회에 만연한 오리엔탈리즘에 대해 이야기를 좀 더 나눠 보고 싶군요.


제국주의 시기에 서양인들은 자원 착취와 시장의 확보라는 두 가지 목적으로 해외에 진출해야 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역사 문화 지리 사상 등과 관련된 해외 원주민들에 대한 정보를 얻어야 했죠.


이런 식으로 제국주의 시기에 서양인들에 의해 만들어진 동양에 관한 지식의 체계가 '오리엔탈 스터디' 곧 '동양학'입니다.


그들은 세계를 서양 동양으로 나누고 '서양=문명,동양=야만'이라고 주장하면서 동양을 폄하했습니다.


그들은 불상에 대한 경배나 조상에 대한 제사를 우상 숭배나 미신으로 여깁니다.


그러나 서양 종교가 정말로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것이라 할 수 있습니까?


서양의 종교도 기적의 염원과 마술이 팽배했던 전통시대 의례와 관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잖아요.


향을 피우고 물을 뿌리고 하는 것들도 원래는 주술적인 관습들이 종교적으로 의례화된 것 아니겠어요?


그런 것들이 고등 종교로 발전하면서 세련되고 멋있게 보이는 것이지요.


이런 행위만이 문명적인 것이고,동양의 종교에서 향 피우고 절하는 것은 미개하거나 야만적인 우상 숭배라고 할 수 있어요?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이렇게 만들어진 서양의 동양관을 내면화해서 스스로의 문화와 사상을 미신,비합리,비과학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이러한 내면화는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아닙니다.


여기엔 힘의 논리,강자의 억압이라는 엄연한 역사적 현실이 작용했습니다.


우리의 역사를 돌아보건대 서구적인 근대화에 몰입하다 보니 이러한 오리엔탈리즘적 시각마저도 무의식적으로 내면화하고,그것에 근거해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을 구성하게 된 것입니다.


뭐랄까요,우리가 생각하는 '우리'의 모습은 진정한 우리의 모습이 아니라 서구에 의해 재구성된 우리의 모습이겠지요.



[나] 한국 업체에 고용된 동남아 출신 근로자들에게는 인권 유린과 저임금이 당연한 통과의례가 되어 버렸다.


인종차별적인 비아냥과 욕설을 일상어처럼 들어야 하고,상습적으로 구타를 당한다는 게 외국인 노동자들의 하소연이다.


한국인에 비해 턱없이 적은 임금을 받는 이들에게 "그 정도 월급이면 너희 나라에서는 1년을 벌어야 한다"고 이야기하거나,그들이 합숙소에 생활용품을 공급해 달라고 요구하면 "못사는 데서 왔기 때문에 물욕이 많다"고 대응하며,작업 속도가 느리면 "돈 벌러 왔으면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 데도 게으르기만 하다.


그러니 너희 나라는 천상 가난할 수밖에 없다"고 면박을 주기도 한다는 것이다.


산업연수생으로 온 한 미얀마 근로자는 자신의 심정을 다음과 같이 토로하고 있다.


"한국에 있는 동안 저는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처음 한국에 올 때에는 열심히 일을 잘하면 일한 만큼 돈도 벌고 좋은 대우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동남아 사람이라는 이유로 처음부터 월급이 적게 책정되고 생산량이 더 많아도 한국인만큼 대우를 받지 못한다는 게 납득할 수 없었습니다.


또 한국에 있는 동안 유럽인이나 미국인을 대하는 태도와 우리 동남아시아인을 대하는 태도 사이에 차이가 큰 것을 보면서 아쉬움이 많았습니다.


동남아시아인,아프리카인,유럽인,미국인,한국인 모두 붉은 피가 흐르는 같은 사람 아닙니까?"



[다] 식민화는 지난 4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서구 사회의 팽창과 함께 진행돼 온 문화적이고 경제적인 착취의 특수한 형식이다.


서구 제국의 식민지들은 서구의 제도를 받아들였고,그래서 식민화란 서구화를 의미했다.


초기 식민지들은 그들의 식민 유산을 극복하려 하지만 그것은 지극히 어렵다.


그에 더하여 식민지 주민들은 식민 경험으로부터 도출된 어떤 모순을 이제까지 내면화해왔다.


첫 번째로 그들은 식민 제국의 관습과 사고방식들을 받아들임으로써 식민 제국을 모방해야 했거나,혹은 모방하기를 원했다.


식민지 주민들의 모방은 그러한 특징들을 단순히 재생산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어떤 열등의식을 낳게 되었다.


둘째로,식민지 주민들은 사람들을 판단하는 데 있어 두 가지 기준을 가진다.


그 하나는 자신과 같은 식민지 주민들에 대해 적용되는 기준이고,다른 하나는 그들의 식민 제국에 대해 적용되는 기준이다.


이러한 자기 분열은 강요된 식민주의의 직접적인 결과다.


이러한 모순적인 요소들은 세대를 넘어서 이미 독립을 성취한 이후에도,계속해서 식민지 주민들의 감정과 태도의 구조를 구성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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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시문 (가)의 전반부는 '오리엔탈 스터디'라고 하는 것이 제국이 식민지를 보다 잘 경영하기 위해 만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다.


세계를 동양과 서양,야만과 문명이라는 이분법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도 제국주의 시대 서양인들의 지식 체계에서 만들어졌다고 한다.


그래서 서양적인 것은 문명적인 것이고 동양적인 것은 야만적인 것이라는 기만적인 보편적 인식이 출현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후반부에서는 한국의 많은 지식인들이 서양에 의해 만들어진 인식을 무비판적으로 수용하고 있으며,그래서 우리가 서구에 의해 재구성된 것을 우리 스스로의 모습으로 받아들이고 있음을 비판적으로 지적하고 있다.


제시문 (나)는 한국 업체에 고용된 동남아 출신 근로자들이 인권을 유린당하고 터무니없이 부당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사실을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제시문 (다)는 식민화에 대한 정의부터 시작하고 있다.


다음으로 식민지 주민들이 어떤 모순을 내면화하고 있다는 언급이 뒤따르는데,그 모순의 대표적인 양상 두 가지를 그 다음에 소개하고 있다.


첫 번째는 식민지 주민들이 식민 제국의 문화를 모방하려 하지만,그러면서도 어쩔 수 없는 열등의식을 가진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식민지 주민들의 가치 판단 기준이 둘로 분열된다는 것이다.


이런 모순들은 식민지 국가들이 독립한 이후에도,그 문화의 구조에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점을 마지막으로 지적하고 있다.


(가)와 (나)의 성격이 서로 반대라는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반되는 현상을 설명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다)에서 제시되고 있는 이론적 논의들이다.


(다)에서 두 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는 식민지 주민들의 모순적인 요소들을 (가)와 (나)의 현상에 적용시켜 볼 수 있다.


위와 같은 현상들이 일어나는 원인을 우리는 식민화로 파악할 수 있다.


식민화 과정에서 일어나는 일반적인 모순들을 설명하면서 그것이 실제 우리 사회에서 어떠한 현상으로 드러나고 있는지를 (가)와 (나)의 사례들을 통해 분석한다면,그것을 비판적으로 극복하기 위해서는 어떤 노력들이 필요한지도 고민해 볼 수 있다.


다만 문제에서 (나)의 현상을 굳이 언급한 것이,우리의 태도에서 무엇을 반성해야 하는지를 고민하도록 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잊지 말고 성찰적 자세를 끊임없이 견지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오리엔탈리즘이나 배타적인 민족주의가 동일한 의식의 구조에 바탕하고 있다는 것을 간파할 수도 있다.


타자와 자아를 끊임없이 분리하는 이분법적인 사고와 그런 가운데서 타자를 끊임없이 대상화하려는 자아 중심주의다.


서양이 동양을 야만적인 것으로 규정하는 것도,혹은 일본이 대동아 공영권을 주장하며 서구를 적대시하는 것도 모두 그러한 의식의 구조에서 발생한 사례들이 될 수 있다.


그러므로 진정한 식민주의의 극복이란 중심과 주변을 나누고 중심에 기준을 두고 주변을 판단하는 '중심주의'자체에 대한 비판까지 가능할 것이다.


거의 모든 고대 민족은 자기 영역이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사실 지구는 둥글기 때문에 모두가 중심일 수도 있다.


하지만 모두가 중심이라는 것은 사실 모두가 주변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래서 중심과 주변을 따로 나눠놓고 생각하지 않고 중심과 주변의 구조 자체를 해체하는 것이 오리엔탈리즘을 극복하는 길이라고 제시하는 것은 근본적인 방향 제기가 될 수 있다.


< 임경훈 초암논술아카데미 논술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