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잎이 휘날리는 전선의 달밤~(중략) 정한수 떠놓고서 이 아들의 공 비는~.'

6·25전쟁 때 발표된 '전선야곡'이란 대중가요의 노랫말이다.

나이 지긋한 세대에서는 누구나 즐겨 불렀을 대표적 진중가요다.

이 노래 2절에 '정한수'라는 게 나오는데,이는 사전에는 없는 단어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정한수 또는 정안수로 많이 알려진 이 말은 '정화수(井華水)'가 바른말이기 때문이다.

'희고 붉던 뒤뜰에는 어머니 앞치마 같은…(중략) 대접에 떠놓은 정안수 같이 맑고 깨끗하신 어머니.'('정안수',박기식 시집 <연기꽃>에서)

잘못 알려진 상태에서 시에도 나오고 소설에도 등장한다.

심지어 일부 사전에선 '정안수'를 '정화수의 변한 말'로 처리하기도 했다. 비록 틀린 말일지라도 워낙 많이 쓰이는 현실을 반영한 것이겠지만,악화가 양화를 구축(驅逐)하는 꼴과 다르지 않다.

<표준국어대사전>은 정한수든 정안수든 모두 '정화수의 잘못'임을 분명히 하고 있다.

정화수는 예부터 신에게 바치거나 약을 달이는 물로 쓰는,이른 새벽에 길어 부정을 타지 않은 우물물을 가리킨다.

요즘은 과학이 발달해 육각수니 이온수니 하는 물들을 찾지만 정화수야말로 조상 때부터 으뜸으로 쳐오던 물이다.

우리네 어머니들은 집안에 어려운 일이 있거나 누군가 먼 길을 떠날 때 정화수를 장독 위에 올려놓고 소원을 빌었다.

이런 의식은 지금은 많이 없어졌지만 아직도 입시철이면 절이나 교회를 찾아 치성을 드리는 부모님들 모습에서 '정화수 떠놓고 기도하던' 민간신앙의 흔적을 엿볼 수 있다.

'억지춘향-억지춘양'도 용어의 유래를 두고 여러 설이 있는,틀리기 쉬운 말이다.

주로 '~으로''~이다' 꼴로 쓰이는 이 말은 '일을 순리로 풀어가는 게 아니라 억지로 우겨 겨우 이뤄지는 것'을 이른다.

'억지춘향(이)'은 춘향전을 근거로 한다.

변사또가 춘향으로 하여금 억지로 수청을 들게 하려고 핍박한 데서 나온 말이다.

이에 비해 '억지춘양'은 '영동선을 개설할 때 애초 직선으로 설계된 노선을 경북 봉화군 춘양을 지나도록 억지로 끌어댄 데서 나왔다'는 설을 배경으로 한다.

영동선은 경북 영주와 강릉 경포대 사이를 잇는 산업철도로 1963년에 개통됐다.

실제로 '억지춘양'은 '억지춘향'과 함께 <우리말 어원사전>(김민수 편, 1997,태학사)에 올라 표제어로 다뤄지기도 했다.

하지만 <표준국어대사전>을 비롯해 요즘 나오는 모든 사전은 '억지춘향'만 올림말로 다루고 있다.

물론 '억지춘양'이란 말은 없으므로 이는 틀린 말로 보면 된다.

북한에서 펴낸 <조선말대사전> 역시 '억지춘향'만을 올리고 있음을 볼 때 '억지춘양'은 남쪽에서 와전된 말이 퍼진 것으로 보인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부장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