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민환 선생은 '먹거리'를 사전에 올리기 위해 애쓰던 분입니다.

세계식량농업기구 회의에 참석하면서 영어의 '푸드(food)' 같이 종합적이고 추상적인 식량 개념을 나타낼 수 있는 우리말을 찾다가 '먹거리'를 생각한 거죠."

우리말 모임의 한자리에서 어느 참석자가 전한 말이다.

지난 10여년 사이 우리 말글살이에 뿌리내려 익숙해진 말 가운데 대표적인 것 하나를 들라면 '먹거리'를 주저 없이 꼽을 수 있을 것이다.

80년대 대학가의 특징 가운데 하나는 우리말 찾기 운동이다.

그 흐름 속에서 동아리니 새내기니 먹거리니 하는 말들이 대중화됐다.

우리 입에 오르내린 지 이미 20여년이나 됐다는 얘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 단어로 대접받지 못하고 있으니 '먹거리' 입장에서는 억울하다 할 만하다.

일전에 살펴본 '도우미'가 불과 5년 만에 사전에 오른 데 비해 '먹거리'가 아직도 단어의 지위를 얻지 못한 까닭은 이 말이 우리말 조어법을 벗어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아이러니컬하게도 국어학자들의 반격(?)에서 비롯됐다.

90년대 초 '먹거리'가 대중화되면서 '먹을거리'를 밀어낼 기세를 보이자 당시 국어연구소(현 국립국어원)에서 이 말을 표준어심의 대상에 올렸다.

결과는 심의위원 전원일치로 조어법상 말이 안 된다는 판정을 받았다.

이후 먹거리는 지금까지 일부 사전에서 다뤄지더라도 '먹을거리의 잘못'으로 처리돼 왔다.

'먹거리'는 이미 이희승 편 국어대사전(1982년판)에서 경상·전라 방언으로 올라 있던 말이기도 하다.

물론 여기서도 표준어는 '먹을거리'를 취했다.

'먹거리'가 우리 조어법상 잘못됐다는 주장의 요지는 간단하다.

의존명사인 '거리'는 앞말과 어울릴 때 '볼거리,읽을거리,말할거리'처럼 꾸밈을 받으므로 '먹을거리'라 해야 바른 말이라는 것.'먹거리'를 허용하려면 '보거리,읽거리'도 가능해야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반론도 적지 않다.

우리말에는 '덮밥,누비옷,날짐승,접의자,붙장' 등 '먹거리'와 비슷한 형태의 합성어가 꽤 있기 때문이다.

어쨌든 '먹거리'와 '먹을거리'는 경쟁 관계에 있는 말이다.

주목해야 할 것은 먹거리는 일부 의미 분화를 일으켜 영어의 'food'에 해당하는 개념으로,추상성을 담은 말로 많이 쓰인다는 점이다.

그것은 우리가 '먹거리 장터,먹거리 문화,먹거리 산업' 같은 말은 자연스럽지만 이 자리에 '먹을거리'를 넣었을 때는 어색하다는 데서도 확인된다.

반대로 보다 구체적으로 지칭할 때는 여전히 '먹을거리'가 자연스럽다.

가령 식구들과 밥을 먹으면서 "먹거리가 왜 이렇게 없냐"라고는 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먹거리'는 '먹을거리'와는 다소 다른 파생의 길로 들어선 말로 구별할 수 있다.

'먹거리'는 아직 표준어가 아니다.

언젠가 '먹을거리'와 구별되는 단어로 자리잡을 수도 있고 아예 하나는 사라질 수도 있다.

둘 사이의 관계가 보완재가 될지,대체재가 될지는 언중(言衆)의 선택에 달려 있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부장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