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문학은 우주의 근본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의 비밀을 파헤치는 작업은 현대의 최첨단 과학기기를 사용하더라도 그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다.하지만 인간은 정밀한 측정 도구가 없었던 고대 때부터 우주에 대한 도전을 시작했다.때로는 농업생산력 확대 등의 필요에 의해,때로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에 의해 천문학은 계속 발전해왔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우리 조상들은 하늘의 해와 달,별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정하고 계절의 변화에 따른 낮 시간과 밤 시간의 간격을 백성들의 생활 리듬에 맞게 조정하는 지혜를 보이기도 했다.일식과 월식을 정확히 예측함으로써 과학의 우수성을 자랑했고,이러한 관측 기록은 오늘날에도 유용한 천문학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별이 반짝이는 것은 공기로 인해 별빛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하늘에 있는 공기는 항상 움직이는데,별빛이 두꺼운 공기층을 뚫고 내려올 때 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기가 없는 달에서는 별빛이 반짝이지 않는다.
이런 해석은 과학이 발달한 근대 이후에 등장했다. 하지만 별이나 달과 같은 천문 현상을 연구하는 천문학은 우리 인류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된 학문이다. 천문학의 역사를 알아보자.
◆점성학에서 우주관측까지
인류 문명 초기의 천문학은 별을 관측해 점을 치는 점성학적인 성격을 띠었다. 태양이나 달 별의 움직임이 인간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예언할 수 있다고 믿었다. 기원전 2000~3000년께 메소포타미아(현재의 중동) 지방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이집트의 나일강,인도의 인더스강,중국의 황하강 등에서 하천 문명의 탄생과 함께 천문학이 시작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천문 관측은 초기 농경 문명에서 계절예보 수단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시리우스 별은 해마다 일어나는 나일강의 범람을 예측하는데 이용됐다. 천문 현상을 연구하는 '역학'이 체계를 잡으면서 일식이나 월식 같은 현상을 예견할 수 있게 됐다. 달과 행성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우주론도 발전됐다.
◆별자리 역사
별자리는 여행자의 길잡이로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 해왔다. 물론 처음부터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이름이나 형태로 정해져 있었던 건 아니다. 나라나 지역마다 다르게 사용되고 있던 것을 하나로 통합해 오늘날의 별자리로 부르게 된 것이다.
오늘날의 별자리는 서구의 별자리를 그 기원으로 한다. 기원전 수천년께 바빌로니아(지금의 서남아시아) 지역에 살던 유목민 칼데아인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가축을 데리고 초목을 따라 이동하는 생할을 하면서 밤하늘의 밝은 별을 동물에 비유,별자리를 만들었다.
기원전 3000년께 만들어진 이 지역의 돌에는 양 황소 쌍둥이 게 사자 처녀 천칭 전갈 궁수 염소 물병 물고기 자리 등 태양과 행성이 지나는 길목을 따라 배치된 12개의 별자리(황도 12궁)를 포함해 20여개가 기록돼 있다.
기원전 2000년께에는 지중해 무역을 하던 페니키아인에 의해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천문학이 그리스로 전해져 별자리 이름에 그리스신화 속 신과 영웅,동물의 이름이 가미됐다.
카시오페이아 안드로메다 페르세우스 등의 별자리가 그것이다.
기원후 150년께에는 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그리스 천문학을 집대성해 '알마게스트'란 책을 냈다. 이 책에는 지구 북반구를 중심으로 48개의 별자리가 실려 있다.
15세기,이른바 대항해시대 이후 서양인들이 남반구로 진출하면서 항해사들은 남쪽 하늘의 새로운 별자리를 발견해 기록했다. 이어 근대 천문학의 태동으로 망원경이 발달하면서 어두운 별들도 관측돼 작은여우 작은사자 방패 남십자 등의 이름이 붙여졌다.
◆별자리의 통합
20세기 초에 이르러 별자리 이름이 지역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다 보니 불편한 일이 많이 생겼다. 이에 따라 1922년 발족된 국제천문연맹은 태양이 움직이는 길(황도)을 따라 12개,북반구 하늘의 28개,남반구 하늘의 48개 등 모두 88개의 별자리를 확정했다. 이 88개의 별자리 중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별자리는 북두칠성 등 67개다.
<도움=한국천문연구원 www.kao.re.kr>
장원락 한국경제신문 과학기술부 기자 wrjang@hankyung.com
끝을 알 수 없는 우주의 비밀을 파헤치는 작업은 현대의 최첨단 과학기기를 사용하더라도 그 한계를 드러낼 수 밖에 없다.하지만 인간은 정밀한 측정 도구가 없었던 고대 때부터 우주에 대한 도전을 시작했다.때로는 농업생산력 확대 등의 필요에 의해,때로는 단순한 지적 호기심에 의해 천문학은 계속 발전해왔다.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우리 조상들은 하늘의 해와 달,별의 움직임으로 시간을 정하고 계절의 변화에 따른 낮 시간과 밤 시간의 간격을 백성들의 생활 리듬에 맞게 조정하는 지혜를 보이기도 했다.일식과 월식을 정확히 예측함으로써 과학의 우수성을 자랑했고,이러한 관측 기록은 오늘날에도 유용한 천문학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별이 반짝이는 것은 공기로 인해 별빛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하늘에 있는 공기는 항상 움직이는데,별빛이 두꺼운 공기층을 뚫고 내려올 때 그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그래서 공기가 없는 달에서는 별빛이 반짝이지 않는다.
이런 해석은 과학이 발달한 근대 이후에 등장했다. 하지만 별이나 달과 같은 천문 현상을 연구하는 천문학은 우리 인류의 역사 만큼이나 오래된 학문이다. 천문학의 역사를 알아보자.
◆점성학에서 우주관측까지
인류 문명 초기의 천문학은 별을 관측해 점을 치는 점성학적인 성격을 띠었다. 태양이나 달 별의 움직임이 인간 생활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미래에 일어날 사건을 예언할 수 있다고 믿었다. 기원전 2000~3000년께 메소포타미아(현재의 중동) 지방의 티그리스·유프라테스강,이집트의 나일강,인도의 인더스강,중국의 황하강 등에서 하천 문명의 탄생과 함께 천문학이 시작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천문 관측은 초기 농경 문명에서 계절예보 수단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시리우스 별은 해마다 일어나는 나일강의 범람을 예측하는데 이용됐다. 천문 현상을 연구하는 '역학'이 체계를 잡으면서 일식이나 월식 같은 현상을 예견할 수 있게 됐다. 달과 행성의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한 우주론도 발전됐다.
◆별자리 역사
별자리는 여행자의 길잡이로 오랜 세월 인류와 함께 해왔다. 물론 처음부터 우리가 현재 알고 있는 이름이나 형태로 정해져 있었던 건 아니다. 나라나 지역마다 다르게 사용되고 있던 것을 하나로 통합해 오늘날의 별자리로 부르게 된 것이다.
오늘날의 별자리는 서구의 별자리를 그 기원으로 한다. 기원전 수천년께 바빌로니아(지금의 서남아시아) 지역에 살던 유목민 칼데아인으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들은 가축을 데리고 초목을 따라 이동하는 생할을 하면서 밤하늘의 밝은 별을 동물에 비유,별자리를 만들었다.
기원전 3000년께 만들어진 이 지역의 돌에는 양 황소 쌍둥이 게 사자 처녀 천칭 전갈 궁수 염소 물병 물고기 자리 등 태양과 행성이 지나는 길목을 따라 배치된 12개의 별자리(황도 12궁)를 포함해 20여개가 기록돼 있다.
기원전 2000년께에는 지중해 무역을 하던 페니키아인에 의해 바빌로니아와 이집트의 천문학이 그리스로 전해져 별자리 이름에 그리스신화 속 신과 영웅,동물의 이름이 가미됐다.
카시오페이아 안드로메다 페르세우스 등의 별자리가 그것이다.
기원후 150년께에는 그리스 천문학자 프톨레마이오스가 그리스 천문학을 집대성해 '알마게스트'란 책을 냈다. 이 책에는 지구 북반구를 중심으로 48개의 별자리가 실려 있다.
15세기,이른바 대항해시대 이후 서양인들이 남반구로 진출하면서 항해사들은 남쪽 하늘의 새로운 별자리를 발견해 기록했다. 이어 근대 천문학의 태동으로 망원경이 발달하면서 어두운 별들도 관측돼 작은여우 작은사자 방패 남십자 등의 이름이 붙여졌다.
◆별자리의 통합
20세기 초에 이르러 별자리 이름이 지역에 따라 다르게 사용되다 보니 불편한 일이 많이 생겼다. 이에 따라 1922년 발족된 국제천문연맹은 태양이 움직이는 길(황도)을 따라 12개,북반구 하늘의 28개,남반구 하늘의 48개 등 모두 88개의 별자리를 확정했다. 이 88개의 별자리 중 우리나라에서 볼 수 있는 별자리는 북두칠성 등 67개다.
<도움=한국천문연구원 www.kao.re.kr>
장원락 한국경제신문 과학기술부 기자 wrjang@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