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볼짱 다 봤다." "아직 볼 장 다 봤다고 할 수는 없지."

"그럴 바에야 차라리 맞장 뜰까?" "에이~,맞짱 뜰 필요까지야…."

"언제까지 팔장만 끼고 볼 수는 없잖아." "누가 팔짱만 끼고 있겠대?"

우리말을 할 때 불필요하게 된소리 발음을 많이 한다는 지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강소주'를 '깡쏘주'라고 한다거나 '거꾸로'를 '꺼꾸로'라고 말하는 습관이 그런 것들이다.

그러다 보니 종종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게 맞는 표기인 줄 아는 이들도 많다.

표기는 말을 따라가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가령 위에 나오는 '볼 장 다 봤다'라고 할 때 이를 '볼짱'으로 적거나,'눈곱만큼도 잘못이 없다''눈살을 찌푸리다'라고 할 것을 '눈꼽만큼도…''눈쌀을…'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이와 반대로 오히려 된소리로 적어야 할 말을 예삿소리로 적는 잘못도 비일비재하다.

'팔장을 끼다,볼성사납다,혼줄나다'같이 적는 게 그런 경우인데,각각 '팔짱,볼썽,혼쭐'이 바른 표기다.

이런 것들이 우리말 적기를 까다롭게 만드는 부분이다.

이는 우리 맞춤법이 '소리대로 적기'와 '형태 살려 적기'란,상충하는 두 가지 원칙을 토대로 하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다.

'볼 장 다 봤다'란 말은 일상 대화에서 흔히 쓰는 말이지만 글로 적을 때는 간단치 않다.

우선 이를 '볼 장'으로 할 것인지 '볼 짱'으로 적을 것인지가 고민이다.

다른 하나는 어느 쪽으로 쓰든 붙일 것인지 띌 것인지가 문제가 된다.

사전에서는 '볼 장 다 봤다'를 관용구로 제시하고 있다.

여기서 '장'은 '場'으로 해석된다.

직역하면 '물건을 사기 위해 봐야 할 장을 다 보았다',즉 자기가 하고자 했던 모든 일을 마쳤다는 뜻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관용구로 쓰여 '어떤 일이 더 손댈 수 없을 정도로 틀어진 상황'을 나타낸다.

어원이 살아 있고 '볼장'이 한 단어로 인식되지 않으므로 당연히 우리말 적기의 원칙인 '형태 살려 적기'를 취하되 띄어서 '볼 장'으로 쓰는 것이다.

이에 비해 '볼썽사납다'는 출발은 같지만 결과는 대조적이다.

이 말은 '보+ㄹ+상(相)'에서 왔다.

그러나 비록 어원은 확인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한자어란 인식이 흐려지고 발음도 자연스럽게 된소리로 바뀌어 지금은 고유어처럼 받아들여지는 단어가 됐다.

이처럼 어원 의식이 흐려진 단어는 '소리 나는 대로' 적는 게 맞춤법의 또 다른 원칙이다.

'팔짱'이나 '혼쭐'도 이 원칙이 적용된 단어이지만 조금 경우가 다르다.

여기서 '팔'이나 '혼'은 누구나 알 수 있는 말이지만 뒤의 것이 '짱'인지 '장'인지,'쭐'인지 '줄'인지는 알 수 없다.

어디서 온 말인지 확인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이처럼 어원을 찾을 수 없는 말인 경우도 맞춤법에선 소리 나는 대로 적게 했다.

따라서 이들은 '팔짱' '혼쭐'이 바른 표기가 된 것이다.

('맞짱/맞장'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