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있는 통계] 21. 사람보고 평균에 맞추라고‥

"사람사람이 본시 모두 제가끔 저 생겨먹고 싶은 대로 생겨먹어 그 쌍통 생김새가 하나도 똑같은 놈 없고."


김지하 시인의 '대설(大說)남(南),첫째 판 산수(水山)' 첫머리에 나오는 말이다.


이처럼 우리는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서로 다르다는 것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성장한다.


인종 나이 성별 몸무게 키가 모두 같더라도 취향이나 행동은 전혀 다른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와 거의 모든 면에서(성격이나 식성까지도) 거의 흡사한 내 친구 중의 하나는 나보다 술이 몇 배나 세다.


똑같은 체구에 같은 식사와 안주를 먹는데도 그 친구의 알코올에 대한 인내(?)가 나와 너무 다를 수 있다는 것을 체험할 때마다 나는 앞으로는 두 잔을 잡아 달라고 우긴다.


주택,그 중에서도 아파트는 마찬가지로 평균가정을 대상으로 만들어 진다.


가족 수에 따라 크기가 다르기는 하지만 각 크기의 아파트는 거의 비슷하게 만들어 진다.


물론 몇 개의 신도시를 포함하여 수백만 가구를 건설하려면 똑같은 형태로 대량 생산을 할 수밖에 없겠지만 입주한 가정은 그 가정이 평균적인 가정과 다른 만큼의 불편을 감수해야 한다.


"집합주택이나 주택단지처럼 불특정 다수를 대상으로 하는 건축물 내지 환경의 계획이나 설계에서는 통계학적으로 추출된 추상적인 인간상을 발주자 또는 이용자로 착각한다.


그런 잘못을 자각 없이 저지르게 된다.


같은 대지 위에 김 아무개의 집을 설계하는 경우와 강 아무개의 집을 설계한 결과는 상당히 달라야 마땅하다.


그런데도 집주인이 많아질수록,그리고 집주인이 확정되지 않을수록 집주인 개인의 구체적인 이질성이나 다양성보다 추상적인 동질성과 공통성을 중시한다.


이질성과 다양성도 평균치라는 편리한 대표치로 통계 처리해 버린다.


그 결과 실재할 리도 없고 실재할 수도 없는 평균치적 인간이라는 것을 과학이라는 조작에 의해 탄생시킨다."(강병기,삶의 문화와 도시계획,나남,1993)




평균적인 사람,즉 모든 면을 고려했을 때 중심이 되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사회는 '평균적인 사람'을 표준으로 놓고 획일적으로 그것에 맞추도록 강요하는 경우가 많다.


평균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평균으로부터 떨어져 있음이 인정되고 고려되는 분위기,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은 사회 속에서 모두가 행복하기 위한 필요조건이다.


프랑스 사람이 개성이 강할 수 있는 것은 그런 개성이 존중되는 사회적 분위기 때문이라고 풀이하기도 한다.



"나는 이 얘기에 나오는 프랑스 노신사에게서 프랑스인의 특징을 보았지요.


모든 사람이 다 좋다 해도 "나는 아니야"라고 말할 수 있는 개성을 말이에요.


아마 드골이었을 거예요,치즈의 종류만 300가지를 먹는 프랑스 사람만큼 통치하기 힘든 국민도 없을 거라고 술회했던 사람이,그렇게 개성이 강한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도 그래도 조화를 이루고 있는 것을 보면 신기할 정도지요.


나는 그것이 똘레랑스(tolerance) 때문에 가능하다고 생각했지요.


똘레랑스가 뭐냐고요? 글쎄,한마디로 정의하긴 어려운데,'나와 다른 남을 허용하고 관용하는 것'이라는 정도로 알고 여기선 그냥 넘어가도록 하지요."(홍세화,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창작과 비평사,1995,18쪽)




획일화된 사회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면 빠질 수 없는 것이 일본일 것이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일본주식회사라고 불릴 정도로 집단주의가 체질화된 나라라고 한다.


심지어는 어린 학생이 집단에서 소외되어(공부를 잘 한다든가 튀는 행동을 한다든가 하는 이유로) '이지메(집단학대)'를 당하며 괴로워 하다가 자살하는 사건이 흔하게 일어난다.


물론 경제적인 풍요와 신세대의 개성을 따르는 경향으로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고 하지만 일본에서 개성에 대한 이지메는 여전히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고 개인의 생활을 지배하고 있다.



"좀 우스운 이야기지만,나는 거기(외국인을 위한 일본생활 안내책자)에 쓰고 싶었던 글이 있다.


이름하여 '일본에서 욕 안 먹고 살아가는 방법'이다.


그 내용은 대강 다음의 세 가지이다.


1.가만히 있고,앞서지 마라.언제나 끝까지 기다려라.


2.남이 하는 대로 따라만 하라.어떤 예외도 인정되지 않는다.


3.모든 것이 이미 정해져 있다.


네 스스로 길을 찾으려 하지 마라.


어느 것이 먼저일 것도 없다.


이 세 가지가 두루 섞이면 된다.


…모든 것이 다 정해져 있다.


그러므로 그 길을 따라가면 된다.


그런 수동태로 살아가면 되는 나라가 일본이다.


…예외는 인정되지 않는다.


예외가 없는 생활,이것은 말을 바꾸면 여유가 없다는 뜻도 된다.


그러나 일단 그 약속된 울타리 안에 들어가 있으면 그렇게 편할 수가 없다.


…정해진 대로 그렇게 약속되어 있는 대로 산다는 것은 익숙해질수록 편하기는 하다.


그러나 이것은 또한 얼마나 견딜 수 없는 구속인가."(한수산,벚꽃도 사쿠라도 봄이면 핀다,고려원,1995,172~174쪽)




우리 사회도 단일민족과 동질적인 문화 속에서 긴 역사를 이어 오면서 우리 나름대로의 획일적인 관습을 강요하고 이질적인 것을 인정하는 데 인색해 왔다.


그러나 우리는 프랑스의 치즈 종류보다 훨씬 가짓수가 많은,아니 각 가정마다 다른 김치 맛을 즐길 줄 아는 민족이다.


강 건너마다 장맛이 다르고 큰 산 너머마다 곡조가 다른 아리랑을 그 맛대로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다.


지방에 따라,계절에 따라,버무리는 재료에 따라,넣는 젓갈에 따라,담그는 어머니의 손길에 따라 맛이 다른 것이 김치인데 평균 김치의 맛이 있을 리 없고 평균 아리랑의 곡조가 있을 수 없다.


김치맛과 아리랑의 다양한 곡조를 그 특징대로 음미하듯이 사회 속에서 다양성이 허용되어 지고 개인의 개성이 나름대로의 미덕으로 존중되어 져야 할 것이다.


도공(陶工)에게는 청자(靑瓷)연적(硯滴)의 가지런한 연꽃잎을 하나쯤 꼬부라지게 하는 여유가 있고,그것을 바라보는 우리들에게는 그 꼬부라짐의 미학(美學)을 감상할 줄 아는 깊이가 있지 않은가?



"덕수궁 박물관에 청자 연적이 하나 있었다. 내가 본 그 연적은 연꽃모양을 한 것으로,똑같이 생긴 꽃잎들이 정연(整然)히 달려 있었는데, 다만 그 중에 꽃잎 하나만이 약간 옆으로 꼬부라졌었다.…한 조각 연꽃잎을 옆으로 꼬부라지게 하기에는 마음의 여유를 필요로 한다."(피천득,수필 中에서)


김진호 jhkim@kndu.ac.kr


[ 약력 ]


△서울대 경영대 졸업


△미국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 석·박사


△(전)KBS 선거예측조사 자문위원


△(현)국방대 경영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