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문학상은 영국의 극작가 해럴드 핀터에게 돌아갔다.

한국의 원로시인 고은 선생도 유력한 후보로 거론됐으나 아쉽게 다음 기회로 넘기게 됐다.

195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인 어니스트 헤밍웨이는 '쉬운 글'로 영어 산문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고 평가받는 작가다.

과다한 수식을 배제한 채 간결하고 평이하게 서술하는,이른바 '헤밍웨이 문체'는 오랫동안 글쓰기의 본보기가 돼왔다.

특히 신문기자들에게는 수습시절 귀에 못이 박일 정도로 듣는 얘기 중의 하나다.

하지만 미국 리치먼드대학 저널리즘스쿨의 마이클 스피어 교수는 '짧은 문장과 쉬운 단어가 특징인' 헤밍웨이의 문체가 사실은 우리의 어휘력 향상을 가로막아 왔다고 주장하는 사람이다.

적어도 어떤 단어가 문장 속에서 꼭 필요한 것이고 적절한 표현이라면 다소 난해한 말들도 쓸 수 있어야 한다고 그는 강조한다.

신문을 유심히 보는 독자라면 최근 기사문장의 흐름이 '준(準)한글-한자(한자어) 사용의 감소-개념어의 위축-외래어 사용 증가-구어체로의 진행' 등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느낄 것이다.

그 특징은 신문의 글을 '읽기 쉽고 알기 쉽게 만들자'는 명제로 모아진다.

신문에서 볼 수 있는 단어들은 그 흐름 속에서 부침을 겪는다.

가령 요즘 신문에서 '항룡(亢龍) 참칭(僭稱) 불잉걸(불이 이글이글하게 핀 숯덩이) 시나브로(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몽니(심술궂게 욕심 부리는 성질) 갈마들다(새로이 번갈아 나타나다) 산발(산줄기) 드팀없다(조금도 흔들림이 없다)' 같은 말은 여간해서 보기 힘든 단어들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어려운 고급 한자어이거나 지금은 잘 쓰지 않는 고유어라는 것인데,'읽기 쉽고 알기 쉽게'라는 명제 앞에서 점점 설자리가 좁아져 가는 어휘목록에 오를 만하다.

스피어 교수의 말을 빌리면 이들이 바로 '포기할 수 없는,비단처럼 매끄럽게 새어나오는 난해한 단어들의 소리'가 아닐까.

그런 점에서 이들은 지금 사라져 가는 말이기도 하고 동시에 살려 써야 할 말이기도 하다.

놓칠 수 없는 사실은 그 자리를 대신 메우는 외래어(정확히는 외국어)들이 어느새 차고 넘쳐나는 수준이라는 것이다.

글을 쓸 때 흔히 강조하는 '우리말답게 쓴다'는 것은 곧 '말하듯이 자연스럽게 쓴다'는 뜻이다.

'하나의 사과'를 단순히 일본어투라서 쓰지 말자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사과 하나'라고 말하는 게 우리에게는 더 자연스러운,즉 '우리말다운' 어법이기 때문에 기왕이면 우리말투를 살리자는 것이다.

다소 어려운 한자어이든,낯선 외래어이든 그것이 우리말의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 주는 기능을 한다면 우리는 기꺼이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다만 그것은 우리말다운 고유의 틀을 해치지 않는 한에서,우리 언어체계에 녹아 들어올 수 있어야 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홍성호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