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경제신문 2005년 10월11일자 A8면

제8차 세계화상대회가 화교 기업인과 국내 기업인 등 3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10일 서울 코엑스에서 사흘간의 일정으로 막을 올렸다.

'화상(華商)과의 동반 성장,지구촌의 평화 번영'을 주제로 열린 이번 행사에는 전 세계 28개국에서 2500여명의 화교 기업인과 500여명의 국내 기업인 등 모두 3000여명이 참가했다.

황멍푸 중국 전국공상업연합회 주석은 축사를 통해 "중국을 비롯한 화교권은 아시아의 핵심 국가 중 하나로 성장한 한국의 경제발전 성과를 배우고 싶어한다"며 "서울에서 열리는 세계화상대회는 한·화상 상호간 우의를 증진하고 공동 번영을 촉진하는 뜻깊은 자리가 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이계주 한국경제신문 벤처중기부 기자 leer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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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상(華商)의 상권에는 해가 지지 않는다''화상이 없으면 동남아 경제도 없다''바닷물 닿는 곳에는 화상이 있다' '화상들은 유대인 못지않는 상술과 기질을 갖고 있다'….

경제분야에서 화상의 위상을 가늠할 수 있게 하는 표현들이다.이처럼 화상들의 파워는 갈수록 그 위세를 더해가고 있다.화상이 급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며,화상 파워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지난 10일부터 12일까지 서울 코엑스에서 열린 제8차 세계화상대회를 계기로 세간의 관심을 끌고 있는 화상과 화교자본,화교경제권 등에 대해 살펴보자.

◆168개국에 6천만여명의 화상들이 활동중

중국 사람들이 동남아로 이민을 떠나기 시작한 것은 당나라 때부터라고 한다.해상무역을 하면서 중국을 떠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그러나 공식적으로 이민이 시작된 것은 1800년대 중반 이후로 추정되고 있다.구미 열강들의 식민지 건설이 본격화하면서 북미 유럽 중남미 아프리카 호주 등으로 대규모 이민이 이뤄졌다는 분석이다.

현재는 중국 본토와 대만 홍콩 등 중화권을 비롯 동남아 미국 유럽 호주 아프리카 등 168개국에 6000만여명의 화교(화상)가 퍼져 있다.

지역 별로는 푸젠성(福建省)과 광둥성(廣東省) 출신이 전체 화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이들 지역은 동남아와 무역을 하기에 유리했을 뿐만 아니라 기질적으로 외부 진출을 좋아했기 때문으로 풀이된다.

◆유동자산 2조달러의 막강한 자금력

이들 화상은 특유의 신용과 단결력을 바탕으로 하는 인적 네트워크를 활용해 세계시장에서 자본을 축적해나갔다.특히 최근에는 세계 최대규모의 전자상거래망인 ‘세계화상네트워크’를 활용해 중국 시장과 세계를 연결하는 블록을 형성하고 있다.정보기술(IT)시대의 주역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개방 이후 최근까지 모두 26개의 법률을 제·개정하면서 투자유치에 발벗고 나선 중국 정부의 지원도 화상의 성장에 큰 보탬이 됐다.예컨대 중국 헌법 제50조에는 ‘중화인민공화국은 화교의 정당한 권리와 이익을 보호하며 귀국한 화교와 그 친족의 합법적인 권리와 이익을 보호한다’고 규정돼 있다.

이를 통해 화상들은 중화권과 동남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동남아 인구의 6% 정도에 불과한 화상들이 이 지역 경제의 70%를 주무르고 있다.대만(233개)을 비롯 홍콩(137개) 싱가포르(63개) 등 3개국에 500대 화상기업의 85%가 몰려있다.2000만명의 화교가 퍼져있는 동남아권을 중심으로 기업 활동이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예컨대 태국의 경우 화교는 전체 인구의 3%에 불과하지만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80%를 넘어서고 있다.최근 들어서는 투자 분야도 금융,부동산 외에 정보통신분야 등으로 다양해지고 있다.

화상의 파워가 어느정도인지는 투자 규모,자산 규모로도 쉽게 가늠해 볼 수 있다.이들이 확보하고 있는 유동자산만도 현금과 채권 1조5000억달러를 포함,무려 2조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또한 지금까지 중국에 투자된 외국인 직접 투자 6000억달러 가운데 4000억달러가 화상자본으로 추정되고 있다.

◆한국 화교는 1970년대 중반 이후 침체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는 화상의 위상이 어떠했을 까.국내 화교 이민의 역사는 120년이 됐지만 세계적인 기업을 거느린 화상은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한국의 화교역사는 19세기말 개항과 함께 청나라 조계가 설정되고,청나라 사람들이 인천 선린동 일대를 중심으로 들어와 집단거주지를 형성한 게 그 출발점이다.

이후 1940년대 말에서 50년대 초 중국 국·공 내전을 피해 산둥성 지역 중국인들이 대거 몰려들었다.70년대 중반까지 국내 화교수는 10만명에 육박할 정도로 커졌다.이들 화교는 서울 충무로 명동 소공동 북창동에서 번창했으며,부산 초량동에는 차이나타운이 형성되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정부는 부동산취득 제한,거주자격심사 강화,세무조사 등을 통해 화교들에게 타격을 줬다.화교들은 한국 경제가 한창 성장하던 70-80년대에 정착 기반을 다질 수 있는 좋은 기회를 결국 놓치고 만 것이다.국내에 거주하고 있는 화교 수도 2만명 정도로 크게 줄어든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현재의 화교는 산둥성 출신이 90%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대만 국적이 대부분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우리 정부가 화교자본 유치를 위해 화교에 대한 법적 규제를 없애고 차이나타운을 복원하는 등 한·화교간 협력 증대에 본격 나서고 있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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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용어풀이 ▒

◆화교

'화'(華)는 중국을 가리키며 '교'(僑)는 교포,즉 중국이외의 나라에 살고 있는 동포를 일컫는다.

따라서 화교란 중국을 떠나 해외로 이주하여 현지에 정착,경제활동을 하면서 본국과 문화적 사회적 법률적 정치적 측면에서 유기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 중국인 또는 그 자손을 말한다.

중국 상인을 뜻하는 '화상'과는 동일한 의미로 쓰인다.

그런 점에서 혈통은 중국이지만 정치적 충성심을 갖고 있지 않은 '화인'(華人)과는 다르다.

◆세계화상대회

세계 화상들간 협력체제를 강화하고 상호이해를 촉진하기 위해 지난 1991년 리콴유(李光耀)전 싱가포르 총리의 제안으로 싱가포르에서 처음 개최됐다.

2년마다 열리며,개최지는 싱가포르 태국 홍콩의 중화총상회로 구성된 선정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결정된다.

최대 규모의 화상모임으로,거물급 화상들이 대거 참여해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이슈를 다룬다.

◆세계화상네트워크(www.wcbn.com.sg)

1995년12월에 선을 보인 세계화상기업 비즈니스 정보사이트.120여개국 12만9000여 화상기업을 실시간으로 연결하는 세계 최대규모의 전자상거래망이다.

기업 이름만 클릭하면 주소는 물론 생산품목과 판매현황 등을 간단하게 확인할 수 있다.

싱가포르 중화총상회가 운영을 맡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