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층 고전읽기] 구별짓기, 문화와 취향의 사회학

피에르 부르디외/La Distinction, critique sociale du jugement, Minuit



피에르 부르디외(Pierre Bourdieu)는 '구별짓기(La Distinction,1979년)'에서 취향과 기호(嗜好)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들의 취향이라는 것은 별 의미 없는 개인적 선택의 결과로 보이는 것이 일반적이다.


하지만 부르디외는 개인의 취향이라는 것이 단순히 개인의 우연적인 선택이 아니라 계급적·이데올로기적 의미로 가득 차 있음을 밝히고 있다.



"취향이란 말의 이중적 의미는 통상 '취향은 자연스럽게 타고난다'는 환상을 정당화하는 데 봉사하는데,실제로 문화를 통해 형성됨에도 불구하고 마치 타고난 것처럼 보이기 때문에 이런 환상이 나타난다."



클래식 음악을 즐겨 듣고,고급스러운 칵테일 바에서 술 먹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과 신나는 댄스 음악이나 트로트를 즐겨 듣고,포장마차에서 술 마시는 것을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 것은 단순히 개인적인 선택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이다.


부르디외는 취향을 선천적으로 물려받은 어떤 것이 아니라 행위자들이 스스로의 경험과 생활 속에서 획득한 후천적 성향으로 본다.


취향은 "구분하고 평가하는 획득한 성향"이며 "계급의 표시자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그렇다고 부르디외가 취향을 고정된 것이라고 말하지는 않는다.


취향은 겉보기에 아무리 순수하고 중립적인 현상으로 보인다 할지라도 객관적 계급 위치와 함께 변화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취향은 사회적 위계를 반영하는 문화적 위계로 표현된다.


취향들 상호 간에는 문화적 위계를 둘러싼 갈등이 존재하며,이것은 또 다른 의미의 계급 갈등이다.


부르디외는 취향의 대립을 통해서 사회적 대립의 다양한 양상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취향의 집합으로서의 '아비투스'


"아비투스는 실천과 실천의 지각을 조직하고 구조화하는 구조일 뿐만 아니라 동시에 구조이기도 하다."



취향이 개인적인 것이면서 동시에 사회적인 것이라면,취향 또한 사회적으로도 존재할 것이다.


사회적으로 존재한다는 것은 사회적 구조로서 개인을 규정하기도 한다는 의미다.


부르디외는 개인들의 행위이면서 행위를 규정하기도 하는 성향 체계를 아비투스(habitus)라고 개념화했다.


아비투스는 개인적이며 집단적인 성향과 감각을 의미하는 개념이다.


이것은 단순한 습관이나 습성과는 구별된다.


습관과 습성이 반복적이고 자동적인 데 반해 아비투스는 스스로 변동하면서 스스로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부르디외는 '구별짓기'에서 '진정으로 고전적인' 대학교수,'살아가는 방법을 아는' 젊은 관리직,'매우 검소한' 간호사,'정확하게 중간인' 빵집 부인,'언제나 타인을 위해 일하는' 직공장 등과 같이 구체적인 분석을 통해서 각 계급의 아비투스를 보여주고 있다.


◆취향의 구분과 갈등


"문화자본에서는 기술적 능력보다는 지배계급 문화와의 친밀성이,그리고 다른 사람과는 전혀 다른 훌륭한 취미를 가진 사실을 과시할 수 있는 기호나 표지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는 능력이 훨씬 더 중요하다."



아비투스가 특정한 성향 체계를 의미한다고 할 때,다양한 성향 체계를 분석하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부르디외는 문화적 취향을 세 가지로 구분한다.


차별화의 감각을 주요한 특징으로 하는 지배계급의 취향,문화적 선의(善意)를 표현하는 중간계급,필요한 것을 중심으로 선택하는 민중계급으로 나눈다.


지배계급은 미술 음악 등의 선택에서 일정한 학습과 시간을 투자해야만 향유할 수 있는 것들을 선호한다.


대중적이지 않은 것,남과 구별되는 것을 선택하려는 감각이 지배계급의 중요한 특징이다.


중간계급은 이런 '고급'스러운 문화에 대한 외경을 가지고,지배계급의 문화가 의미 있음을 인정하는 역할을 한다.


이들은 지배계급의 취향을 좇아가려 하지만 충분한 학습과 경제자본의 부족으로 이를 실현하기 어렵다.


민중계급은 필요가 취향 선택의 유일한 기준이다.


이들에게는 실용적이지 않은 것은 의미가 없는 것이다.


이런 세 부류의 사람이 '지루한' 무조음악을 들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일지는 뻔하다.


지배계급은 그 음악성을 어려운 용어를 사용해 장황하게 설명할 것이다.


중간계급은 뭔가 의미 있다고 말은 하지만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없는 난관에 부딪칠 것이다.


민중계급은 그 공연에 불평을 토하며 도중에 나와 집으로 가거나,음악을 자장가 삼아 잠을 잘 것이다.


마찬가지로 크로스-오버 음악에 대한 비난과 옹호 또한 하나의 예시를 이룰 수 있다.


◆부르디외의 '자본'과 '장'


이런 취향의 구분은 구분 자체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취향의 위계에서 상위에 속할수록 사회적으로 특별한 이익을 가지고 있다.


이러한 종류의 이익을 통틀어 부르디외는 '자본'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


부르디외가 말하는 자본은 경제적 차원에만 국한되는 개념이 아니다.


부르디외는 사회적 경쟁에서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도구로 사용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자본이라 부른다.


부르디외가 말하는 자본의 종류에는 경제적 자본 외에도 문화자본,사회관계 자본,그리고 상징자본이 있다.


경제자본은 말 그대로 경제적 능력을 의미한다.


문화자본은 앞의 예에서 본 것처럼 사회화 과정에서 얻은 문화에 대한 특정한 감각과 능력을 말한다.


사회관계 자본은 집단과 사회 연결망 내에서의 위치와 관계이다.


지연·학연 등의 인맥이라고 할 수 있다.


상징자본은 다른 세 가지 유형의 자본들이 정통적으로 승인된 형식,즉 위신 존망 명예 명성 등을 의미한다.


부르디외는 이처럼 자본의 개념을 확장함으로써 단순히 경제적 대립만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다양한 차원의 대립이 존재함을 보여주려고 했다.


이런 자본의 경쟁이 일어나는 다양한 부분을 장(場,champ)이라는 개념으로 설명한다.


장을 쉽게 설명하면,흔한 말로 "이 바닥에서 날 모르는 사람이 없어"라는 표현에 나오는 '바닥'의 의미와 비슷하다.


정치의 장,종교의 장,학문의 장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할 수 있는데,각 장은 각 장에 '고유한 규칙'을 가지고 있다.


결국 각 분야에는 그 분야에 따른 경쟁 방식이 있고,그에 따라서 각자의 자본을 가지고 경쟁한다는 의미다.


◆사회학과 사회학자의 역할


부르디외는 이러한 분석을 통해 기존 사회학에 대한 비판을 시도한다.


기존 사회학이 객관적으로 분석한다는 명분으로 사회적으로 당연하게 여기는 것이나 사회적 상식들을 은연중에 정당화하고 있다고 한다.


하지만 부르디외는 사회적으로 지배적인 담론도 결국은 사회적 장 속에서 벌어진 경쟁의 결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초역사적 현실성'을 가진 사회현상은 아무것도 없으며,모든 것이 장 속에서 벌어지는 권력 관계에 따라 드러날 뿐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지배담론을 정당화하는 것은 대중들에게 지배담론을 암묵적으로 승인하게 하거나,침묵시키는 행위라고 비판한다.


결론적으로 부르디외는 사회학과 사회학자들이 지배담론의 정당화가 아니라 대중이 스스로 말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고,말할 수 있게 해야 한다고 한다.


즉 지배담론의 이면을 대중들이 확인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며,취향을 통한 구별이 그러한 이면을 보여주는 하나의 방법임을 설명하고 있다.


< 김영진 초암논술아카데미 논술강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