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완연한 가을 날씨다.
곧이어 억새가 장관을 이룰 것이다.
가을을 다룬 노랫말이야 무수히 많지만 그 중에서도 이 억새가 나온다는 옛 노래가 있다.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노랫말 가운데 '으악새'의 정체를 두고 여러 얘기가 있다.
우선 아무 생각 없이 노래만 즐기는 사람은 "뭐 그런 새가 있겠지"하고 만다.
조금 관심 있는 사람은 "으악새는 새가 아니라 '억새'를 길게 발음한 거야.가을바람이 억새풀을 스치는 소리를 운치 있게 '슬피 운다'고 한 거지"라며 아는 체를 한다.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 간) 등 국어사전에선 '으악새'를 '억새'(볏과의 여러해살이풀)의 방언으로 풀이한다.
국립국어원에서 주도하고 있는 21세기 세종계획의 '남한방언 검색 프로그램'을 통해 보면 '억새'의 방언은 악새(전북) 어벅새(경북) 억쌀(전남) 억새(경기) 등 십수개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노랫말에 나오는 '으악새'는 실제론 '억새'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주장이 거의 정설로 굳어져 있는 듯하다.
하지만 민간 국어단체인 국어문화운동본부를 이끌고 있는 남영신 회장은 좀 다른 주장을 편다.
'으악새'는 실제로 새라는 것.원래는 '왁새'인데 이를 길게 발음한 것이라는 얘기다.
'왁새'는 '왜가리'의 평안도 사투리다.
이 왜가리는 우리나라에선 흔한 여름 철새인데,봄~초여름에 남쪽에서 날아와 지내다가 가을에 다시 남쪽으로 간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왁새'는 '왜가리'의 북한어로 풀이한다.
아무튼 '으악새'를 억새로 보든 왁새로 보든 노랫말을 두고 시비를 붙을 일은 아니다.
우리네야 다만 그들이 슬피 울 때쯤이면 가을이 깊어감을 느끼는 것으로 족하다.
그런데 이런 창작품에 쓰인 어휘가 표준어냐 아니냐를 두고는 말글에 관여하는 사람들 간에 뿌리 깊은 인식의 차이가 있어온 게 사실이다.
대표적인 게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다.
이 소설은 애초엔 제목이 '모밀꽃 필 무렵'이었다.
'모밀'은 메밀의 고어이기도 하고 지금은 방언으로 남아있기도 한 말이다.
시중에서도 모밀국수니 모밀냉면이니 하는 식으로 여전히 많이 쓰인다.
물론 표준어는 '메밀'이므로 잘잘못을 따지자면 '모밀'은 틀린 말이다.
이는 조선어학회가 1936년 '조선표준말모음'에서 모밀을 버리고 메밀을 표준으로 잡은 이래 계속돼 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결국 표준어란 가치가 문학작품 이름까지 바꾸게 만든 결과다.
지금도 그의 후손은 원제목을 찾아달라고 주장한다고 한다.
방언은 방언대로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문학작품에 쓰인 말까지 표준어의 잣대를 대야 하는지는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부장 hymt4@hankyung.com
곧이어 억새가 장관을 이룰 것이다.
가을을 다룬 노랫말이야 무수히 많지만 그 중에서도 이 억새가 나온다는 옛 노래가 있다.
"아~ 으악새 슬피 우니 가을~인가요…."
노랫말 가운데 '으악새'의 정체를 두고 여러 얘기가 있다.
우선 아무 생각 없이 노래만 즐기는 사람은 "뭐 그런 새가 있겠지"하고 만다.
조금 관심 있는 사람은 "으악새는 새가 아니라 '억새'를 길게 발음한 거야.가을바람이 억새풀을 스치는 소리를 운치 있게 '슬피 운다'고 한 거지"라며 아는 체를 한다.
<표준국어대사전>(국립국어원 간) 등 국어사전에선 '으악새'를 '억새'(볏과의 여러해살이풀)의 방언으로 풀이한다.
국립국어원에서 주도하고 있는 21세기 세종계획의 '남한방언 검색 프로그램'을 통해 보면 '억새'의 방언은 악새(전북) 어벅새(경북) 억쌀(전남) 억새(경기) 등 십수개에 이른다.
그러다 보니 노랫말에 나오는 '으악새'는 실제론 '억새'를 가리키는 것이라는 주장이 거의 정설로 굳어져 있는 듯하다.
하지만 민간 국어단체인 국어문화운동본부를 이끌고 있는 남영신 회장은 좀 다른 주장을 편다.
'으악새'는 실제로 새라는 것.원래는 '왁새'인데 이를 길게 발음한 것이라는 얘기다.
'왁새'는 '왜가리'의 평안도 사투리다.
이 왜가리는 우리나라에선 흔한 여름 철새인데,봄~초여름에 남쪽에서 날아와 지내다가 가을에 다시 남쪽으로 간다.
<표준국어대사전>에서도 '왁새'는 '왜가리'의 북한어로 풀이한다.
아무튼 '으악새'를 억새로 보든 왁새로 보든 노랫말을 두고 시비를 붙을 일은 아니다.
우리네야 다만 그들이 슬피 울 때쯤이면 가을이 깊어감을 느끼는 것으로 족하다.
그런데 이런 창작품에 쓰인 어휘가 표준어냐 아니냐를 두고는 말글에 관여하는 사람들 간에 뿌리 깊은 인식의 차이가 있어온 게 사실이다.
대표적인 게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이다.
이 소설은 애초엔 제목이 '모밀꽃 필 무렵'이었다.
'모밀'은 메밀의 고어이기도 하고 지금은 방언으로 남아있기도 한 말이다.
시중에서도 모밀국수니 모밀냉면이니 하는 식으로 여전히 많이 쓰인다.
물론 표준어는 '메밀'이므로 잘잘못을 따지자면 '모밀'은 틀린 말이다.
이는 조선어학회가 1936년 '조선표준말모음'에서 모밀을 버리고 메밀을 표준으로 잡은 이래 계속돼 왔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은 결국 표준어란 가치가 문학작품 이름까지 바꾸게 만든 결과다.
지금도 그의 후손은 원제목을 찾아달라고 주장한다고 한다.
방언은 방언대로 보존할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문학작품에 쓰인 말까지 표준어의 잣대를 대야 하는지는 한번 생각해 볼 일이다.
한국경제신문 오피니언부 부장 hymt4@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