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한국경제신문 9월13일자 A1면
디지털 컨버전스를 통해 반도체의 집적용량을 매년 두 배씩 늘릴 수 있다는 황창규 삼성전자 반도체총괄 사장의 '황(黃)의 법칙'이 다시 한번 입증됐다.
황 사장은 12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갖고 세계 최초로 50나노(1나노는 10억분의 1m·머리카락 굵기의 2000분의 1)공정기술을 적용한 16기가비트급 낸드플래시메모리를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새로 개발된 플래시메모리는 손톱만한 칩 안에 164억개의 트랜지스터를 집적한 용량으로 이를 32기가바이트급 메모리카드로 제작하면 △영화 20편 이상의 동영상 △MP3 음악파일 기준으로 8000곡 △일간신문 200년치 분량의 정보를 저장할 수 있다.
이로써 삼성은 1999년 256메가를 개발한 데 이어 2000년 512메가,2001년 1기가,2002년 2기가,2003년 4기가,2004년 8기가 등 메모리 반도체의 용량을 매년 두 배씩 늘리는 데 성공했다.
조일훈 한국경제신문 산업부 기자 jih@hankyung.com
반도체의 성능을 가늠하는 잣대인 집적도가 두 배로 늘어나는 데는 과연 얼마나 시간이 걸릴 것인가.
인텔 창업자인 고든 무어(Gordon Moore)가 주장한 대로 1년반(18개월)이 걸릴까,아니면 삼성전자의 황창규 사장이 예측한 대로 1년밖에 걸리지 않을까.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50나노 공정기술을 적용한 16기가비트급 낸드(데이터 저장형) 플래시 메모리를 개발함으로써 또다시 반도체 칩의 발전 속도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번의 기술개발로 삼성전자는 1999년 256메가에서 출발해 2000년 512메가,2001년 1기가,2002년 2기가,2003년 4기가,2004년 8기가,올해 16기가에 이르기까지 매년 반도체의 집적 용량을 두 배씩 늘리는 데 성공했다.
'반도체 집적도는 1년에 두 배씩 증가한다'는 이른바 '황의 법칙'을 다시 한번 입증한 것이다.
'반도체 칩 저장 데이터는 18개월마다 두 배씩 늘어난다'는 '무어의 법칙'을 깨트린 셈이다.
이번 사례를 계기로 '무어의 법칙'과 새로운 '황의 법칙'에 대해 살펴보자.
◆지난 30년간 무어의 법칙 "그대로 맞아떨어져"
무어 회장은 페어차일드의 연구원 시절인 1965년 4월19일 '일렉트로닉스'지(誌)에 실린 특집 기고문에서 "하나의 칩에 집적되는 트랜지스터의 수는 해마다 두 배씩 증가하지만 그에 따르는 비용은 감소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글을 쓴 3년 뒤 인텔을 공동 창업했다.
이후 1970년대 초 그의 친구인 카버 메드에 의해 '무어의 법칙'이란 이름이 붙여졌다.
이 법칙이 유명해지면서 새로운 내용을 추가해 달라는 압력을 받자 그는 1975년 들어 2년마다 집적도가 두 배로 높아질 것이라고 수정했다.
일반적으로 무어의 법칙은 18개월마다 집적 용량이 두 배씩 증가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무어 회장은 이렇게 규정한 적이 없는 것으로 밝혀졌다.
무어의 법칙은 처음 소개될 때까지만 해도 황당한 얘기에 불과했다.
하지만 무어의 법칙은 지난 30여년 동안 그대로 들어맞았다.
실제로 1971년에 인텔이 처음 발표한 프로세서는 모두 2300개의 트랜지스터를 사용하고 있었는데 26년이 지난 1997년에 발표한 펜티엄II에는 750만개의 트랜지스터가 들어갔다.
26년 만에 용량이 무려 3200배나 늘어난 것이다.
무어의 법칙은 컴퓨터의 처리속도와 메모리의 양이 두 배로 증가하고 비용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효과를 유발함으로써 컴퓨터 혁명을 이룩하는 데 한몫을 톡톡히 해냈다.
그러나 무어의 법칙대로 칩의 성능이 앞으로도 계속해서 향상될 수 있을지는 한마디로 의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법칙이 수명을 다했다고 지적하고 있으며,인텔 연구진조차도 트랜지스터 크기를 줄이는 데 한계에 도달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무어의 법칙을 뛰어넘은 '황의 법칙'
황 사장은 지난 2002년 2월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국제반도체회로학술회의(ISSCC) 총회 기조 연설에서 "반도체 집적도는 1년에 두 배씩 증가하며 그 성장을 주도하는 것은 모바일 기기와 디지털 가전 등 이른바 비(非)PC"라고 주장했다.
그 후 반도체 업계에서는 이를 '황의 법칙'이라고 불렀다.
무어의 법칙을 뛰어 넘는 '메모리 신성장론'을 최초로 제시한 것이다.
당시 업계에서는 반도체 불황을 겪고 난 후 PC 시장의 침체가 가속화하면서 'IT 거품론'과 '메모리 시장 사양론' 등 부정적 전망들이 줄을 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 황 사장은 메모리 수요처의 급격한 변화를 예견했다.
IT 산업은 과거 PC를 중심으로 성장했으나 2000년부터는 휴대폰 등 모바일 시장과 디지털 카메라,게임기 등 디지털 컨슈머 시장이 주도할 것이며,메모리 시장 역시 모바일 및 디지털 컨슈머형 D램 및 낸드 플래시가 중심이 될 것으로 내다본 것이다.
낸드 플래시 시장의 경우 오는 2006년까지 17억달러 규모로 성장하는 데 그칠 것이라던 당시의 비관적인 전망과는 달리 올해 이미 100억달러 규모로 성장함으로써 황 사장의 '메모리 성장론'이 그대로 적중한 것이다.
이 같은 메모리 신성장론이 힘을 얻을 수 있는 배경에는 최첨단 나노기술이 자리잡고 있다.
삼성전자는 2001년에 100나노 기술을 세계 최초로 반도체 회로를 설계하는 데 적용했으며 2004년 9월엔 회로 선폭 60나노 공정을 개발했다. 최근에는 그동안 기술의 한계로 여겨져 온 50나노의 벽을 무너뜨리는 데 성공했다.
◆디지털기기 발전에 대한 새 기준 제시
그렇다면 앞으로 '황의 법칙'이 무어의 법칙을 대체하는 업계와 학계의 정설로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인가.
삼성의 기술개발 능력이나 디지털 기술의 발전속도 등을 감안할 때 황의 법칙이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황의 법칙은 디지털 기기의 발전에 대한 새로운 기준을 제시함으로써 앞으로 무어의 법칙을 대체할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김경식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imks5@hankyung.com
< 용어 풀이 >
△플래시 메모리=전기가 끊기면 저장한 데이터가 사라지는 D램과 달리 데이터가 사라지지 않는 메모리 반도체.
속도가 빠르지만 용량을 늘리는 데 한계가 있는 노어(NOR)형과 대용량으로 제작하기 쉬운 낸드(NAND)형이 있다.
노어형과 낸드형은 인텔과 삼성전자가 각각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다.
△낸드 플래시=저장 단위인 셀을 수직으로 배열해 좁은 면적에 많은 셀을 만들 수 있도록 돼 있어 대용량이 가능하다.
디지털 카메라나 MP3 캠코더 등에 주로 쓰인다.
△나노(n)=나노(nano)미터를 줄인 것으로 10억분의 1m.50나노공정은 머리카락 2000분의 1 굵기의 회로를 사용해 메모리 칩을 제작하는 기술이다.
△기가비트(Gb)=비트는 컴퓨터 회로의 최소단위로 0 또는 1을 저장한다.
16기가비트는 한글 10억자를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다.